엄마는 거짓말쟁이 / 김은희 엄마는 거짓말쟁이 / 김은희 우리 엄마는 식성이 참 특이하다 하얀 쌀밥보다 새까맣게 탄 밥이 맛있단다. 김치조각 빼고 김치 국물만 드신다. 한 귀퉁이 곪은 귤만 골라 드신다. 뜨신 밥보다 식은 밥이 좋단다. 명태 살보다 머리가 더 맛나단다. 밥이 부족하면 입맛이 없다며 슬그머니 뒤..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3.05.09
여인 / 김은희 여인 / 김은희 여인이란 말은 여자란 말보다 신비롭다. 女, 봉긋 솟아오른 가슴과 잘록한 허리 女人, 수세기 동안 계집으로 천대받던 여자들이, 제대로 사람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女人이라 써놓고 내 오늘 찬찬히 들여다보니 저자에 널린 투박한 옹기가 아닌 백자처럼 매끈하게 기인 목..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2.06.29
10월 / 김은희 10월 / 김은희 그 가을의 강둑엔 은빛 물비늘 반짝이고 작은 물새 한마리 포르르 기척을 내며 새털 구름처럼 드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갈대숲은 쏴아아 바람에 몸을 부비며 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수근대는데 잡으려 잡으려 해도 바람은, 움켜쥔 손아귀를 용케도 빠져나가곤 하는 것이었..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10.28
팜므파탈 / 김은희 팜므파탈 / 김은희 하얀 피부에 쭉 뻗은 몸매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용기 내어 한 번 입 맞추었지 첨엔 어색했으나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고 횟수가 늘수록 그녀와의 데이트는 엄마 젖꼭지 물고 잠든 아가마냥 편안하고 행복했어 이제는 그녀 없이 하루, 아니 한 시간도 견딜 수 없게 됐..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6.13
인연 / 김은희 인연 / 김은희 당신은 나를 순간을 스쳐 지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만남이 단지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광활한 우주의 무수한 별 중에 먼지보다 작은 별 그 속의 작은 땅에 모래알만큼이나 숱한 사람들 그 중에 당신을 사랑하..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5.26
직각 / 김은희 직각 / 김은희 햇살도 지쳐 누운 비탈진 길 허리가 90도로 꺾인 할머니 납작하게 눕힌 종이 박스를 차곡차곡 수직으로 쌓아올리고 뉘엿뉘엿 힘겹게 올라가신다. 보이는 건 아스팔트 하늘 본지 언제던가 부피보다 값없는 박스 녀석들 직각으로 휜 허리 끝내 수평으로 짓누르려나 보다. 달팽이집 이고 가..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5.13
목포역에 닿으면 / 김은희 목포역에 닿으면 / 김은희 서울발 목포행 완행열차에 밥풀같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졸고 있다. 덜컹덜컹 달리는 열차 안 한 때는 수줍은 들국화마냥 풋풋했을 할머니들 마른 꽃잎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 "아따. 고놈이 목매달아 죽어부렀다 안허요잉"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이력이 퍼석한 단풍..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5.13
성묘 / 詩 김은희 성묘 / 詩 김은희 아기의 머리털 같은 힘없는 풀 듬성듬성 초라한 흙더미 아무런 말이 없다. "저희들 왔어요!" 인사말을 건네 봐도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만 차갑게 돌아올 뿐 애꿎은 바람이 솔가지를 흔들고 지나가고 흐르는 구름은 무언의 말을 건넨다. '인생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다가 허..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2.08
山 寺 / 김은희 山 寺 / 김은희 맑은 바람 한자락 대나무숲을 훑고 지나가는 고즈넉한 산사 젊은 스님 혼자 작은 연못가에 앉아 비단 잉어떼에게 먹이를 준다. 가을 소슬바람에 빨간 단풍잎 하나 팔랑팔랑 한적한 공간을 날아 연못 위에 앉을 때 내리뜬 짙은 속눈썹 사이로 일순간 스치우는 번뇌의 빛 속세의 삶은 찰..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2.01
너에게로 가는 길 - 김은희 ▒ 너에게로 가는 길 / 김은희 너에게로 가는 길은 내 생애 가장 설레고 아름다운 길. 산과 나무, 들판과 집들이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 지나며, 너에게로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리에 비례해 내 심장 박동수도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겠지. 널 만나면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까? 악수부터 건넬까? 미.. 행복의 정원/애송시 2011.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