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1004

[진중권의 오디세이]‘죽고 살기 식’ 게임이 되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 ‘죽고 살기 식’ 게임이 되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입력 2020.06.11 04:30 게임이 된 정치 “아티스 왕의 치세에 리디아 전역에 기근이 들었다. 리디아인들은 한동안 이 고통을 이겨내려 했지만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이 악의 치유책을 찾기 시작한다. 주사위, 허클본, 공놀이 등 여러 사람이 여러 방편을 고안해냈다. 기근에 대항해 그들이 취한 계획은 하루는 완전히 게임에 몰두해 식욕을 잊어버리고, 이튿날은 식사는 하되 게임은 삼가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18년을 버텼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놀이하는 인간 “우리의 문명은 놀이 속에서 탄생하여, 놀이로서 전개됐다.” 요한 하위징아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원래 지혜를 겨루는 현자들의 수..

불륜이 발생하는 이유는 배우자에게… 정말?

"불륜이 발생하는 이유는 배우자에게…" 정말? ‘우리도 사랑이었을까’. 많은 부부가 살면서 고민한다. 낭만과 사랑은 시든 채 일상의 삶만 남은 부부는 결혼 생활의 탈출구로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만여 쌍이 이혼했다. 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가 한국이다. 그러나 이들 이혼 부부 대부분은 제대로 된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갈라서는 게 현실이다. 부부 갈등 ‘이마고 치료법’ 창시자 핸드릭스 박사 이혼과 결혼의 갈림길에 선 한국의 부부들을 돕기 위해 미국의 하빌 핸드릭스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부부 관계를 30년 이상 연구해온 그는 ‘이마고(IMAGO) 치료법’이란 그만의 부부간 갈등 해법을 내놓아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그에 따르면 부부..

본(本)과 말(末)을 뒤집는 사람들

본(本)과 말(末)을 뒤집는 사람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 입력 2020-06-03 03:00 정신분석을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정신(마음)의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정신이 중요할까요, 분석이 중요할까요? 정신이 본(本)이고 분석이 말(末)입니다. 정신이 근본이고 분석은 지엽(枝葉)입니다. 정신분석의 이름을 걸고 본과 말을 뒤집고, 근본과 지엽을 뒤바꾸면 정신분석이 아닙니다. 상투적인 질문과 해석으로 마음을 헤집어 놓으면 분석이 아니고 분열입니다. 분석은 마음을 조각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각난 것들을 연결, 봉합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권운동의 본과 말은 무엇일까요? 인권인가요, 운동인가요? 운동이 인권을 뒤집으면 이미 인권운동이 아닙니다. 분석의 이름으로 정신을 뒤집어버린 사람이 ..

대답하는 者 과거에 갇히고, 질문하는 者 미래로 열린다

대답하는 者 과거에 갇히고, 질문하는 者 미래로 열린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03 03:12 끼리끼리 모여 자신을 가두고 독립적 사유 못하는 小人들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공자가 남긴 말 가운데 군자는 특정한 그릇에 제한되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군자불기(君子不器)'가 있다. 특정한 그릇에 갇히면 군자가 아니다. 군자라고도 불리는 수준 높은 사람은 모든 일에 통하는 근본을 지키지 제한된 범위에서 움직이는 기능에 빠지지 않는다. '논어'의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 의하면, 군자는 '주이불비(周而不比)'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근본을 지켜서 널리 통하기 때문에 태도는 넓고 매우 공적이다. 반대로 소인은 '비이부주(比而不周)'한다. 기능적으로 같은 주장을 공유하는 자..

[진중권의 오디세이] 민주당이 윤미향을 내치지 못하는 이유

[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 민주당이 윤미향을 내치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20.06.04 04:30 오인으로서 정체성 왜 그냥 흘려 보내지를 못할까. 조국도 그렇고, 윤미향도 그렇고, 한명숙의 경우에는 아예 확정된 대법원 판결까지 뒤집으려 한다.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왜 그럴까. 대통령 특유의 ‘내 식구 철학’, 운동권 출신 참모들의 ‘혁명적 의리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정청과 지지층이 한 몸이 되어 보여주는 저 집단적 강박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집착에는 뭔가 다른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거울단계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이 도움이 될까. 이 정신분석학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물은 거울 속에 비친 영상을 자신으로 인지하지 못한단다. 다만 침팬지의 경우 자신을 알..

폼프리포사가 되는 한국인

폼프리포사가 되는 한국인 동화(童話)작가 폼프리포사는 복지 서비스의 보호를 받고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날로 국가의 공공복지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져 가고, 넓어져 가면서 세(稅)수입이 필요하게 되니까 세금 부담이 점점 무거워져 갑니다. 작가 폼프리포사가 쓰는 작품 수입의 절반이 세금으로 나가자 글을 쓸 의욕이 점점 쇠퇴해 가는데, 게다가 누진 소득세율까지 적용돼 수입의 1백2 퍼센트를 세금으로 뜯기게 됩니다. “이런 나라는 열심히 소설을 써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절망으로 그는 글 쓰는 걸 그만두고 생활보호금만을 받고 삽니다. 식물(植物)처럼 사는 인간이 된 것이죠. 어느 날 자기의 장례(葬禮)를 위해 아껴두었던 5천 크로네마저 세금으로 거둬가자, 그는 호주머니에 남은 돈을 털어 쇠망치 하나를..

왜들 이러십니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왜들 이러십니까 등록 2020.06.02 21:50 이용수 할머니가 광복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딸을 못 알아봤습니다. 열일곱 살 딸의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사람이냐 귀신이냐" 묻고는 그대로 실신했습니다. 딸은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49년이 지나서야 부모님 묘소에서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할머니는 한없이 통곡하다 부모님께 이렇게 고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대한의 형제자매가 한을 풀어줍니다.” 하지만 한풀이는 오랜 세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지금의 집권 주체와 지지세력이 할머니를 떠받들었고 그 앞줄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2017년 대선 전날 대구 유세 연단에 모셔 이렇게 끌어안았고, 아베..

‘위안부 문제’ 몰염치병…이념 앞세운 정의는 정의로운가

‘위안부 문제’ 몰염치병…이념 앞세운 정의는 정의로운가 [중앙선데이] 입력 2020.05.30 00:21 지난 16일자 중앙SUNDAY 칼럼에서 이훈범 선생이 우리 사회에 ‘몰염치 병’이 퍼져가고 있다고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이훈범 선생이 지적하는 바로는 몰염치 병자는 ‘중대한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고개를 뻣뻣이 내세우고…, 사죄는커녕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욕한다’. 그리고 관계없는 사실들을 들어 비판자를 ‘몰아세운다’. 이 병은 코로나바이러스만큼 사회 도처에 퍼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위안부 문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관계된 문제, 검찰에 대한 전 고위 공직자의 협박 등이다. 이러한 또 그에 유사한 ‘몰염치’에 대한 비판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적..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 아니다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 못 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 아니다 국가보훈처가 6·25 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 측에 "장군이 돌아가시면 서울 현충원에는 자리가 없어 대전 현충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면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한다. 지금 여권 일각은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파를 이장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친일파 낙인은 자신들이 찍는다. 이들이 친일파로 매도하는 백 장군이 사후(死後) 현충원에 안장되더라도 뽑혀나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보훈처 측은 "단순히 법 개정 상황을 공유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현충원은 안 된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백 장군 측도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100세 호국 원로가 목..

[진중권 오디세이] ‘노무현의 시대’가 왔으나 노무현은 없다

[진중권 트루스오디세이] ‘노무현의 시대’가 왔으나 노무현은 없다 입력 2020.05.28 04:30 브레히트를 다시 읽다 이제는 부르주아 속물이 됐지만 우리도 한때는 순수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술자리에서 종종 브레히트의 시를 낭송했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가/ 체르노비치에서 예심판사 앞에 섰을 때 / 그녀는 요구 받았다 / 왜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는지 / 이유를 대라고 / 이에 답한 후 그녀는 일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 인터내셔널을 / 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하자 / 그녀는 매섭게 외쳤다 / 기립하시오! 당신도 /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 시의 낭송은 늘 인터내셔널가 합창으로 이어지곤 했다. 속물의 심장도 여전히 왼쪽에서 뛰는지, 아직도 이 노래는 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