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무주 남대천 반딧불이 서식지를 찾아서

풍월 사선암 2006. 6. 17. 08:43

 

 

린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더러 이런 추억이 있을 것이다. 여러 마리 반딧불이를 잡아 호박꽃 속에 넣고 등불처럼 가지고 놀던 일. 그러다 호박등불을 열어 한꺼번에 반딧불이를 날려 보내며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구경하던 일. 이제 이런 풍경은 외딴 시골에 가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추억 속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우리 땅 곳곳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없는 오염된 환경이 되었을 뿐더러 혹여 반딧불이를 볼 수 있더라도 옛날만큼 가지고 놀 정도로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딧불이는 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환경 지표종으로 통한다. 따라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지역은 당연히 말이 필요 없는 청정지역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어린시절만 해도 그렇게 많았던 반딧불이가 최근 20~30년 새 급격하게 개체수가 사라진 데에는 농약과 생활 오폐수, 공장 폐수 등으로 인한 수질오염이 가장 커다란 원인이며, 도시의 팽창과 도로건설 등의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온 서식처 파괴가 두 번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는 도시와 농촌을 거미줄 같은 도로로 연결해 놓았으며, 집집마다 거리마다 켜진 대낮처럼 밝은 불빛과 가로등이 어두운 밤을 좋아하는 반딧불이를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반딧불이 하나쯤 사라진다고 해서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는 반딧불이가 살 수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살기에도 결코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토록 소중한 환경 지표종이 반딧불이지만 점점 그 개체수가 사라지고 있어, 반딧불이를 현재 장수하늘소와 더불어 곤충으로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제322호)로 지정, 서식지를 보호하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딧불이 서식지는 무주군 설천면 남대천 일대 세 곳으로, 설천면 청량리 마을 앞 용화다리를 기점으로 소천리 평지마을까지 이어진 남대천 중류와 여기서 다시 나림 마을까지 올라가는 대불천 하류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당초 1982년 지정되었던 반딧불이 서식지는 23만 평 정도에서 2002년에는 14만 평 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천 개발로 인해 반딧불이 개체수가 줄어들자 일부 구간의 보호구역이 해제된 것이다. 서식지에서조차 반딧불이는 점차 서식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보통 여름철에 반딧불이가 많이 발견되는 까닭은 이 때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시기이기 때문이며, 꽁무니에서 빛을 내는 것은 짝짓기를 위해 암수가 서로 부르는 신호이다. 즉 암컷이 발광을 통해 수컷을 유혹하는 것이며, 수컷 또한 발광을 통해 구애와 과시의 몸짓을 보내는 것이다. 수컷이 더 강렬한 빛으로 과시를 해야 하는 까닭은 자연계에서 반딧불이의 수컷이 50마리인 반면, 암컷은 고작 1마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반딧불이를 제외하고는 암컷 반딧불이가 모두 날개가 퇴화한 것도 바로 가만 앉아만 있어도 수컷들이 경쟁적으로 찾아와 구애를 하기 때문이다. 자연계에서 반딧불이 암컷은 인간계처럼 얼굴과 몸매가 굳이 예쁘고 날씬하지 않아도 영화배우 권상우 같은 수컷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암컷은 그냥 콧대를 높이고 가만 앉아서 가장 멋진 녀석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반딧불이가 꽁무니에서 빛을 내는 것은 몸속의 루시페린과 루시페라제라는 발광물질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물질이 산소와 만나 산화하면서 생기는 에너지가 바로 황록색 반딧불이의 빛이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 하여 반딧불이의 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고사성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반딧불이 빛으로 책을 읽을 정도가 되려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가 필요하다고 하며, 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 일시에 발광을 해야 옛날 호롱불 정도의 밝기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기도 없이 꽁무니에서 자연적인 불빛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반딧불이는 경이로운 생물체임에 틀림없다.


현재 반딧불이는 전 세계에 걸쳐 모두 1,900여 종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애반딧불이와 늦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를 비롯해 모두 6종의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이 중 무주에서는 초여름(6~7월)에 애반딧불이와 파파리반딧불이, 한여름(8~9월)에 늦반딧불이 등이 발견되고 있다. 무주에서는 반딧불이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서식지 내의 사유지를 매입한 뒤 무농약 농사를 짓는 농가에게만 재임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무주에서는 반딧불이의 출현 시기에 맞춰 해마다 반딧불축제도 열고 있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8월에 개최하던 것을 올해는 6월로 축제를 앞당겨 열었다. 군내의 예체문화관에는 반딧불이 일생과 수서곤충 등을 전시, 관찰할 수 있는 반딧불이 생태관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반딧불축제를 위해 테마공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몇 년 전까지 남대천 인근에 있던 소박한 반딧불 자연학교는 아쉽게도 폐쇄되고 말았다. 대규모 반딧불축제가 반딧불이 보호를 위한 것인지, 사람을 불러 모아 관광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인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글 · 이용한 시인 | 사진 · 심병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