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눈꽃산행] 덕유산 르포

풍월 사선암 2008. 1. 7. 17:22

[눈꽃산행] 덕유산 르포

눈꽃과 겨울 산의 정수를 맛보다

구천동계곡~향적봉~백암봉~신풍령 종주산행

 

봄꽃인들 이보다 화사할 수 있을까. 여름 꽃인들 이보다 탐스러울 수 있을까. 가을꽃인들 이보다 가냘플 수 있을까. 향적봉 눈꽃은 하나 하나 달랐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주목에 켜켜이 달라붙은 눈은 천 년의 눈이었다. 이제 12월 초인데도 구상나무는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를 마친 상태이고, 철쭉나무는 초여름의 화려함 대신 순백의 세계를 펼쳐놓고 있었다. 감탄케 하고, 들뜨게 하고, 혹 떨어뜨릴세라 조심스럽게 했다.

화려한 눈꽃 세상은 구름안개가 한바탕 몰아치자 일순 괴이해졌다. 싸늘해졌다. 모든 것, 세상이 얼어붙은 듯했다. 마음도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러다 먹장구름 사이로 한줄기 빛이 쏟아져 내리자 또다시 보석처럼 빛났다. 동시에 우리의 얼굴도 꽃처럼 환해졌다. 또다시 바람이 분다. 그러자 눈가루가 얼굴로 퍼부었다. 눈꽃비였다.

 

▲ 동화속 분위기를 연출하는 덕유산 설경.

향적봉~중봉 구간은 겨우내 이렇듯 환상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강추위 속에서도 동화 같은 풍경


구천동계곡은 이미 깊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골짜기 바위도 흰 눈옷 입고, 계곡 물은 얼음 옷을 입고 있다. 그래도 물소리는 변함없다. 크고 작은 바윗덩이 사이를 비집고 높고 낮은 턱을 넘고 넘어 깊고 얕은 소로 떨어진다. 사흘 전, 그리고 엊저녁 내린 눈이 제법 두텁다. 뽀드득 소리내며 걷는 눈길은 언제나 새롭고 싱그럽다. 그래서 등산인들이 특히 겨울 산을 좋아하는가 보다.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도착했을 때는 찬 바람이 쌩 불어대어 어깨를 움츠리게 하더니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살짝 누그러진 날씨에 힘이 솟는다. 늘 어둑할 즈음 지나치는 바람에 지루하게 느껴졌던 구천동 길이 호젓하기 그지없다. 인월담, 청류동, 비파담, 다연대, 구월담 등으로 이어지는 골짜기 절경지 대부분이 얼어붙거나 눈이 덮여 제 모습은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나 청초함으로 마음을 휘어잡는다.


호젓하고 멋스런 눈길을 두어 시간 따르자 백련사 일주문이 앞에 우뚝 서 있다. 문 안에 들어서서 뒤돌아서는 순간 딴 세상이 펼쳐진다. 또 한 해가 저렇게 문밖으로 사라지는구나 싶다. 백련사 절집에 올라서자 마음이 편히 가라앉는다. 돌계단 밟고 천지문을 지나 대웅전을 마주보니 부처의 너그러움이 느껴지면서 얼굴이 펴지고, 돌아서자 품 넓고 부드러운 덕유산 산자락이 마음에 와닿는 듯해 넉넉해진다.

 

▲ 눈 덮인 덕유 주능선을 따른다.

흰눈은 모든 것을 정화시켜주었다.

 

휑하니 불어대는 찬 바람에 발길을 옮겨 산길로 접어든다. 백련사 계단(戒壇)을 지나자 나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야트막한 나무들은 가지마다 고운 눈꽃을 피우고, 파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자란 참나무들은 가지마다 겨우살이들이 파릇한 꽃을 피운 채 겨울을 구가하고 있다. 눈 덮인 능선을 걷는 우리는 한 명 한 명 꽃송이 같다. 하얀 도화지에 오색 물감 묻힌 붓으로 터치한 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허사는 아닌가 보다.


오후 4시, 향적봉대피소를 1.5km나 남겨 놓았는데 벌써 어두워진다. 겨울해는 노루꽁지보다 짧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그러나 산릉이 빛나고 있다. 우리는 반짝이는 눈꽃 숲으로 빠져들었다.


설화터널을 지나 눈꽃이 도열한 눈길을 가로질러 향적봉 기슭에 도착하자 동화 속 난쟁이 오두막 같은 향적봉 대피소가 반겨준다. 흰 눈으로 곱게 장식한 산장 안에는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산사진 하는 이들이다. 어젯밤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올라왔단다. 곤돌라 타고 쉽게 올라올 수 있고,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겨울이면 향적봉 산장은 평일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모두 들떠 있다. 일출, 아침햇살에 천상의 보석처럼 반짝일 눈꽃과 상고대를 기대하며. 그래서일까, 새벽 2시 넘 시각에도 두런대는 이들 때문에 잠 못 이루며 투덜대는 소리도 들린다.

 

▲ 눈과 바람이 빚어낸 덕유산 설경. 중봉 일원.

 

▲ 설천봉 설경. 밑에 보이는 곤돌라 종점에서 향적봉 정상까지 약 20분 거리다.<사진=박봉진>

 

이튿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산장 밖을 기웃거려보지만 짙은 안개는 벗겨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7시가 조금 넘어 염탐 삼아 향적봉을 오른다. 계단 양옆의 철쭉들은 모두 눈옷을 입고 아침을 맞지만 아쉽게도 무광에 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정상 돌탑도 그냥 하얀 게 아니다.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분위기다. 등산로 안내판은 ‘남덕유 14.8, 백련사 3.5, 리프트 0.6’ 거리표시와 함께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나 강한 바람과 추위는 모든 이들의 발목을 꽉 잡아 버린다.

 

 

▲1, 백암봉 삼거리. 덕유산 주릉과 백두대간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2, 눈꽃 핀 주목을 스쳐 지나가는 취재팀.

3,대봉 정상. 덕유산으로 향해 뻗은 대간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으로 돌아가자 눈꽃을 기대하던 산사진가들 역시 맥 빠진 표정을 짓더니 이내 포기하고 일상적인 얘기에 열을 올린다. 사뭇 허황되기도 하고 솔깃하게도 하는 얘기를 들으며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고,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보내는데도 안개는 벗겨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늘 정도면 최고의 상고대랍니다.”


오전 9시40분, 향적봉대피소 관리인인 박봉진씨의 말에 용기를 내어 산장 문을 나선다. 산장 뒤로 올라서자 모두들 입이 쫙 벌어진다. 산장은 눈꽃 숲의 정점에 있었고, 우리는 그 눈꽃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산행 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눈이 겨우 쌓여 있으면 다행이라는 예상과 달리 덕유산은 깊은 눈에 덮여 있다. 나뭇가지는 사슴뿔을 보듯 굵고 아름답고, 구상나무는 벌써 크리스마스를 맞은 듯 무겁게 눈을 이고 있다.


눈꽃 숲은 아늑하지만 눈꽃 밭을 벗어나자 강풍이 기다리고 있다. 손끝이 금세 얼어오고 얼굴이 깨져나갈 듯 강하고 매서운 바람이 분다. 콧구멍 속의 코털도 쩍쩍 달라붙는다. 그런데도 향적봉 일원은 시끌벅적하다. 곤돌라 타고 올라온 이들의 감탄 어린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숲터널 빠져나가는 우리 얼굴에도 함박꽃이 피어난다. 그러다 천 년의 눈이 켜켜이 달라붙은 주목을 보면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눈꽃 좀 따먹어볼까.”


60이 훨씬 넘은 이들에게도 눈은 낭만을 주는가 보다. 눈꽃 터널을 지나며 눈꽃 따먹겠다고 나뭇가지에 손을 뻗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연분홍 꽃으로 화려한 철쭉나무가 눈꽃으로 오히려 더욱 찬란히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춥다. 너무 춥다. 산은 온 세상을 얼어 붙일 강추위 속에서도 화려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중봉을 지나면서 족적이 사라진다. 이제 눈길을 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행 5명 모두 환한 동심 어린 표정은 사라지고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서로 “네가 앞장서라”며 꼬리를 내린다. 어제 뒤처져 걷더니 저녁밥 먹기도 전에 잠이 들어 “젊은 사람이 왜 그 모양이냐?”고 타박을 받은 이영석씨는 어제의 열세를 극복하려고 앞장서 눈길을 뚫어보지만 백암봉 삼거리(향적봉 2.1km, 남덕유 12.7km, 송계삼거리 6.4km, 신풍령 11km 푯말)에 닿기도 전에 헉헉대고 만다.


“어휴, 11km나 된단 말이야.”


이영석씨는 오늘 아침 1월에 어머니, 아내와 함께 덕유산을 찾겠다며 즐거워했건만


“겨울 산행은 너무 힘들고 춥다”며 180도 달라진 표정을 짓는다. 이제부터 백두대간 타기다. 육십령에서 남덕유를 거쳐 향적봉을 향해 뻗은 백대두간은 백암봉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신풍령(빼재)으로 향한다.


▲ 대봉 정상을 지나 신풍령으로 향하는 취재팀. 깊은 눈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다.

 

이번에는 정정현 선배가 앞장선다. 그러나 20분도 안 돼 포기다. 눈이 내린 이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인지라 눈이 제법 깊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곳도 나타나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덕유 주능선을 벗어나면서 능선은 좁아지고 산길도 좁아진다. 이제 나뭇가지를 툭툭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때마다 조금이라도  눈가루가 떨어지면 죄스럽기까지 하다. 청초함, 순결함을 깨뜨리는 기분이랄까.


아침녘 대피소 바깥 기온이 영하 7도. 지금은 오히려 기온이 더 떨어진 듯싶다. 정오를 조금 못 미처 눈밭에 쪼그리고 앉아 빵을 먹는 사이 손이 시리고 등에 한기가 스며든다. 12월 초 나뭇가지에 살짝 달라붙은 눈꽃 정도 기대하고 나선 산행에서 한겨울 적설기 산행의 얼얼한 맛을 본다.


12시10분,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다시 출발한다. 이젠 바람이다. 차고 매섭다. 눈은 발목을 붙잡고 바람은 몸을 뒤로 젖힌다. 입김은 안경에 서려 수시로 앞을 가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깊은 눈을 헤치고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와~, 해다.”


거창쪽 하늘이 뚫리면서 햇살이 쏟아지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눈꽃이 멋들어지게 반짝인다. 그러나 덕유 주능선은 여전히 먹구름 속에 갇혀 있다. 향적봉 대피소 관리인 박봉진씨의 말에 의하면 오늘이 사흘째다. 추위와 바람은 이내 구름을 몰고와 거창쪽 하늘도 잿빛으로 돌려놓는다. 순백의 세계가 샘이 나서 구름이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 것일까.


“꼭 끝까지 가야해? 이러다 도중에 눈구덩이 파고 비박하는 거 아냐?”


오후 1시경, 횡경재 삼거리(송계삼거리 3.2km, 향적봉 5.3km, 신풍령 7.8km, 송계통제소 3.2km, 삿갓재 11.6km 푯말)에 닿자 모두들 눈치를 살핀다. 예서 송계사로 내려서면 1시간 남짓이면 산행을 마친다. 신풍령은 깊은 눈 때문에 언제 도착할는지 가늠할 수 없다.


“어차피 갈 거면 망설이지 말고 빨리 뽑죠.”


이영석씨가 “무조건 고(go)!”라며 앞장서 나가보지만 깊은 눈은 이내 기세를 꺾고 만다. 얼마 뒤 황원선씨는 “이렇게 해서 해지기 전까지 산행을 마치겠냐?” 걱정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횡경재를 1.2km쯤 지나면서 허리까지 눈에 빠져들더니 지봉 오르막에서는 진을 쭉쭉 짜낸다. 어이구, 어휴, 죽겠다 등 온갖 엄살이 다 나온다.


그런데 지봉 전위봉격인 헬기장에서 양효용씨가 지봉 정상에 사람이 서 있다며 반가워한다. 이 엄동설한에 누가? 안내푯말이었다. 십자형 팻말을 사람으로 잘못 본 것. 그래도 오후 2시경 ‘못봉 1,342.7m’란 표시가 돼 있는 지봉 정상에 올라서자 비록 덕유 주능선은 먹구름을 그대로 덮어쓰고 있지만 대간이 눈에 들며 뿌듯해지며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지봉 내리막에서 능선을 잘못 들어 한 차례 맥이 빠지고 다시 주능선을 찾아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월음령으로 내려선다(14:55). 이 고갯마루에서 북으로 향하면 구천동의 송어양식장 앞으로 내려서고, 남쪽으로 향하면 송계 매표소 밑으로 내려선다.

황원선씨는 “여기서 내려가면 어떻겠느냐?” 하고, 양효용씨는 “무릎이 아파온다”고 하지만, 산길이 없을 뿐더러 지금은 깊은 눈이 덮여 있으니 어느 쪽으로든 탈출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예서 눌러앉을 수도 없는 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로지 신풍령만이 우리가 갈 길이다.


▲1,향적봉 대피소 앞마당에서 조망을 즐기는 등산인들.<사진=박봉진>

,2얼어붙은 듯 냉랭한 기운이 흐르는 향적봉 정상.

3,겨울이면 산사진 동호인들의 인기를 모으는 향적봉 대피소.

 

 

이제 등 뒤로 오후 햇살이 먹구름을 뚫고 부챗살처럼 산야를 비춘다. 그런데도 덕유 주능선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주리조트 스키리프트만 하얀 설사면을 드러낼 뿐이다. 기합 소리가 들려온다. 일행이 오르막을 오르며 힘을 모으기 위해 지르는 소리다. 그 소리마저도 바람이 금세 집어삼킨다.

 

▲ 흰눈은 처음에는 낭만을 불어1, 넣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리를 무겁게 한다. 지봉 오르막.

2,흰눈 덮인 중봉 계단길. 3,심설 산행에 야간산행까지 마치고 신풍령으로 내려서는 취재팀.

 

북쪽 투구봉 능선과 갈라지는 대봉에 도착하자 오후 3시40분. 안내판 표시대로라면 여기서 신풍령까지 3.6km다. 4.2km인 황경재 삼거리에서 2시간 반쯤 왔고, 남은 능선이 완만하거나 내리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시간, 즉 어둡기 전까지 신풍재에 내려설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선다.


이영석씨는 “아직도 3.6km나 남았냐? 내일 산행은 포기”라며 울상을 짓는다. 오후 해가 환한 빛을 대봉에 쏟아붓는다. 해가 웃나 보다. 산길이 한층 좁아진다. 4시 반경 완경사 능선 상에 팻말이 붙어 있는 갈미봉(1,210m)을 지나고 또 1시간이 지나서도 ‘신풍령 1km’란 안내판에 닿는다.

오후 5시30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신풍령 도로(37번 국도)와 산아래 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데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봉이려니 하면 또다시 봉우리가 나타나고, 이제 내리막이 끝나려니 하면 또다시 오르막이 나타난다.


“이영석~, 이영석~.”


어둠이 몰려오자 헤드랜턴 불빛이 비치는 눈길 외에는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랜턴도 밝히지 않은 채 뒤처져 걷다 혹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을까 소리쳐 불러보곤 하지만 대답이 없거나 있더라도 짜증 섞인 목소리다. 하기야 걸어도 걸어도 신풍령이 나타나지 않으니 짜증날 수밖에-.


신풍령 고갯마루 절개지 옆쪽 산길을 내려설 때는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총총할 때였다. 신풍령 고갯마루로 내려서기 위해 나뭇가지를 건드리는 순간 눈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자동차 불빛은 놓치지 않고 우리 얼굴로 떨어지는 눈꽃을 비춰 주었다. 그러자 이영석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돌아왔다.


“겨울 산은 역시 눈이 있어야 되겠지요?”



미니인터뷰


향적봉대피소 관리인 박봉진씨 “준비 철저히 하고 눈꽃 촬영 나서세요”


향적봉 대피소는 겨울이면 바빠진다. 한낮에는 눈꽃 구경하겠다고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타고 올라오는 이들로 북적이고, 밤이면 새벽 일출이나 눈꽃 촬영을 위해 찾는 이들로 가득 차곤 한다.


“사진을 너무 인위적으로 ‘포샵’하는 사람들을 보면 못마땅하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촬영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향적봉대피소 관리인 박봉진씨(朴鳳振·50·남원산악회)도 산사진에 조예가 깊다. 산사진가 장국현 선생에게 한동안 사사받은 박씨의 사진 가운데는 아무래도 덕유산 게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름카메라 대신 디지틀카메라가 대세를 이루고, 사진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포토샵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사진을 인위적으로 만지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한다. 그는 지금도 필름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카메라를 고집한다.

 

박봉진씨는 간혹 장비도 경험도 없이 눈꽃 촬영에 나섰다 곤욕을 치르는 이들이 많다고 주의를 준다. 영하 20~30℃로 떨어지는 날씨에 장갑을 끼지도 않은 채 쇳덩어리나 다름없는 카메라를 만지다가 동상에 걸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산사진 촬영으로 병을 고친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떤 분은 동상에 걸려 하산했는데도 다음 주에 또 올라온답니다. 눈꽃이 눈에 어른거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요. 칠순 노인 한 분은 뇌졸중을 지니고 있었는데, 산사진 찍겠다고 산을 오르내리다 지병을 고쳤답니다.”


고향인 남원을 떠나 구천동 입구에서 식당과 여관업을 하던 2000년 우연한 기회에 대피소 관리를 맡게 된 박씨는 “산 아래로 내려섰다가 누가 돈을 얼마만큼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자신이 초라해지면서 갈등을 느끼기는 하지만 다시 향적봉에 올라서면 산속에서 이렇게 생활한다는 게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2003년 아콩카구아(6,959m)를 등정하고, 2006년에는 에베레스트(8,848m) 원정에도 참가할 만큼 전문산악인으로도 알려져 있는 박봉진씨는 “5년 전부터 산사진 촬영에 빠진 이후 촬영해온 작품 가운데 2003년 여름 장마철에 촬영한 ‘여명’과 2005년 12월 촬영한 ‘일출’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눈꽃 촬영적기를 1월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