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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詩人)과 바둑 [주도유단(酒道有段)]

풍월 사선암 2006. 6. 8. 01:09

시인(詩人)과 바둑 [주도유단(酒道有段)]

 

술과 바둑을 엮은 시인, 조지훈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던 1930년대 말부터 45년 까지, 이 땅의 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친일 부역의 강요를 받았다. 그리고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많은 우리의 대표적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일제(日帝)의 정치적인 목적에 자신들의 문학적, 예술적 재능을 쓰는 것을 허용했으며, 일제의 제국주의적인 의도에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어쩔 수 없이 부역했었다.

 

많은 문인과 지식인들은 해방 후 일제에 협조했던 과거로 인해, 정신적인 자괴감과 부담감을 안고 있었으나, 다행히 우리 시문학에 있어 자연중심의 서정을 노래한 청록파는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행보를 보이며, 우리 문학사의 한 시대를 풍요롭게 장식했다.

 

그들 청록파(=靑綠派, 박두진, 박목월,조지훈)는 요동치는 역사 앞에서 너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 것이 아니냐는 약간의 비판도 받았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휩싸이지 않고 전통 서정시의 계통을 전승한 것과,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는 서정적인 詩語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시문학의 한 장르를 마련한 것은 역시 그들의 위대한 공로일 것이다.

 

청록파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시와 그들의 여러가지 글들이 그들의 죽음 후에도 남았다. 청록파들도 말년에는 때때로 현실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때로는 꽤 적극적인 글로도 표현되었는데, 역시 그것은 청록파가 일제에 복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정신적인 채무감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록파의 시인 조지훈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청록파 중에서도 특히 고전적인 취향에 밝고, 한학에 조예가 깊은 조지훈은 지조론(志操論)으로 대표되는 다소 현실지향적인 명문을 남겼다. 주도유단도 그 중 하나인데, 현실의 취미이자 낙인 음주를 바둑의 단위와 급수(혹은 위기구품)에 비유하여 익살스럽게 그리고 다소 현학적인 상징으로 표현한 탁월한 글이다.

 

시인 조지훈은 결코 탁월한 바둑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둑에 대해서 교양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옛 사대부들이 교양으로 바둑을 배웠듯이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재능으로 바둑과 음주를 한편의 수필로 버무렸으니, 그것이 주도유단(酒道有段)이다.

 

술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중 들은풍월이 있는 주객들은 주도유단을 이야기 할 줄 안다. 그리고 술을 좋아했던 한국 바둑계의 많은 사람들도 조지훈의 시()보다 이 수필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조지훈의 주도유단 전문을 아래에 옮긴다.

 

[ badukdol / drago@baduk.or.kr ]

 

주도유단(酒道有段)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현사(偉人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酒格)은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에도 엄연히 단()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 마신 기회가 문제며,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수 있다.

   

음주에는 무릇18의 계단이 있다.

 

01. 부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9

02.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8

03. 민주(憫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7

04. 은주(隱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6

05. 상주(商酒)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때만 술을 내는 사람 -- 5

06.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4

07. 반주(飯酒)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3

08. 학주(學酒)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酒卒) --2

09. 수주(睡酒) 잠이 안와서 술을 먹는 사람 --1

10. 애주(愛酒)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 --

11. 기주(嗜酒)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

12. 탐주(耽酒) 술의 진경(眞境)을 체득한 사람(酒境) --

13. 폭주(暴酒) 주도(酒道)를 수련(修練)하는 사람 --

14. 장주(長酒) 주도 삼매(三昧)에 든 사람(酒仙) --

15. 석주(惜酒)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 --

16. 낙주(樂酒)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 --

17. 관주(觀酒) 술을 보고 즐거워 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酒宗) --

18. 폐주(廢酒) 열반주(涅槃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

 

부주, 외주, 민주, 은주는 술의 진경,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부주가 9급이니 그 이하는 척주(斥酒), ()주당들이다. 대주, 기주, 탐주, 폭주는 술의 진미, 진경을 통달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관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임운목적(任運目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주고, 주도(酒徒)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주도의 단은 때와 곳에 따라,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하다. 다만 이 대강령만은 확고한 것이니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금이 들것이요, 수행연한(修行年限)이 또한 기십 년이 필요할 것이다.(단 천재는 차한에 부재(不在)이다.)

 

요즘 바둑열이 왕성하여 도처에 기원(棋院)이다. 주도열(酒道熱)은 그 보담 훨씬 먼저인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쇠미(衰微)한 적이 없지만 난세(亂世)는 사도(斯道)마저 타락케 하여 질적 저하가 심하다. 내 비록 학주(學酒)의 소졸(小卒)이지만 아마투어 주원(酒院)의 사절(師節)쯤은 능히 감당할 수 있건만 20정진에 겨우 초급으로 이미 몸은 관주(觀酒)의 경()에 있으니 돌돌 인생사(人生事) ()도 많음이여!

 

술 이야기를 써서 생기는 고료는 술 마시기 위한 주전(酒錢)을 삼는 것이 제격이다. 글쓰기보다는 술 마시는 것이 훨씬 쉽고 글 쓰는 재미보다도 술 마시는 재미가 더 깊은 것을 깨달은 사람은 글이고 무엇이고 만사휴의(萬事休矣).

 

술 좋아하는 사람 쳐놓고 악인이 없다는 것은 그만치 술꾼이란 만사에 악착같이 달라붙지 않고 흔들거리기 때문이요, 그 때문에 모든 일에 야무지지 못하다. 음주유단(飮酒有段)! 고단(高段)도 많지만 학주(學酒)의 경()이 최고경지(最高境地)라고 보는 나의 졸견(拙見)은 내가 아직 세속의 망념을 다 씻어 버리지 못한 탓이다. 주도(酒道)의 정견(正見)에서 보면 공리론적(功利論的) 경향이라 하리라, 천하의 호주(好酒) 동호자(同好者) 제씨의 의견은 약하(若何).

 

1956東卓 趙芝薰 (19563"신태양" 에 기고한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