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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한수] 담배에 얽힌 이야기 둘

풍월 사선암 2006. 6. 7. 23:40

[바둑 한수] 담배에 얽힌 이야기 둘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아니다. 한 때가 아니라 얼마 전까지 그랬다. 바둑 하면 담배,바둑 하면 술,그런 익숙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해도 참 많이도 변했다. 모든 대국장은 금연실이 되었다.

 

두 가지 일화를 던져볼까. 하나는 나와 관계된 것이다. 어느 겨울 아침 대국장이 안개로 쌓이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날은 내가 대단히 민감한 때라 대국 중에 마음이 변했다. 나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는 사람. 한 수 두고 대국장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다가 다시 들어와서 대국하고. 다시 나가고. 그렇게 대국한 적이 있었다. 누가 그것을 모르랴. 눈치를 챈 상대 K 7단이 미안해하면서 다른 방으로 가서 두자고 했다. 심보가 고약해진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사정은 역전되었다. K 7단이 대국실을 나가곤 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기사실에서 연습바둑 둘 때다. 내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러자 마침 옆에 있던 K 7단이 그 대국 얘기를 꺼내던 거 아닌가. “아니,그 때 그렇게 담배를 배척하던 네가 담배를 피우다니?” 하하. ,어찌나 미안하던지!

 

다른 일화 하나. K 9단 얘기다. 이 분이 담배 때문에 반칙패 당한 적이 있었다. 사연인즉,담배를 대국실에서 못 피우고 밖에 나가서 한 대 피우던 흡연과 금연의 경계선에 있던 시대라 한 대 피우고 들어와 보니 상대가 여유있게 몸을 뒤로 젖혀 앉아있더라는 것이다. 그래,한 수를 더 두었다는 것이다. 상대가 착점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러나 상대는 잠시 쉬고 싶어 몸을 뒤로 젖힌 것이었다. 당연히 연속해서 두 번 둔 K 9단의 반칙패.

 

참 대단했다. 관철동에 한국기원이 있을 때는 정말이지 대국 하나에 담배 서너 갑이 소모될 정도였으니 대국장인들 견뎌내랴. 그 대국실,실로 고생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해 모든 대국장은 금연이다. 대국 중 담배를 피우고 싶은 기사들은 휴게실로 들어가는데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다.

 

담배라. 고장난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인가. 담배가 기사들의 애완품이 되던 때의 기보 하나 볼까. A 단점을 외면하고 반상을 크게 안은 흑4가 시원한 감각으로,그 직후 대국자는 담배 한 대 맛있게 피워 물었으리. 앞서 K 9단의 1990년 바둑이니 내 짐작 틀리지 않으리.

 

문용직<프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