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고전음악

한국인의 애청 클래식 베스트 60 - [19] 쇼팽 : 즉흥 환상곡

풍월 사선암 2006. 2. 4. 16:19

한국인의 애청 클래식 베스트 60 - [19] 즉흥 환상곡

Fantaisie Impromptu 

 C# minor, Op.66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
폴란드 태생


임동혁, Piano

 

쇼팽 즉흥 환상곡
(Fantaisie-Impromptu in C sharp minor Op.66)

1834년 Chopin이 파리에서 작곡한 매우 감미롭고 매력적인 곡이며, 생전에 그 자신이 애지중지하기로 유명했던 곡이다. Chopin은 이 곡을 항상 악보 사이에 끼우고 다녔을 뿐 아니라 출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에스테 부인에게 헌정하려고 착수한 곡이라 추측하고 있으며, Chopin의 사후 유작으로 출판되었다. 곡의 흐름이 매우 감미롭고 아름답다.  쇼팽이 24세 무렵에 쓴 작품으로 추측되는데 최종 원고로 여겨지는 자필 악보(데스테 부인의 악보철에 들어있던 것으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소유하고 있었음)에는 "파리에서 1835년 금요일"이라고 적혀있다. '환상'이라는 제목은 그 때 붙여진 것이다.  쇼팽이 출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서 헤들리는, 모셸레스가 1834년에 낸 즉흥곡이 이 곡의 주제와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이 곡이 데스테 남작 부인에게 팔린 것(자필 악보에는 "데스테 부인을 위해 작곡"이라고 적혀있다) 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폰타나 판은 초고의 필사보에 바탕을 두면서 폰타나가 직접 개정을 했기 때문에 최종 원고와는 상당한 차이를 낳고 있다.  작곡은 1834년 경, 최종 원고는 1835(?)년, 데스테 부인에게 헌정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출판은 1855년. 센티멘털하다는 평도 있지만 복잡한 리듬에 신선한 요소도 들어있다.

곡은 3부형식으로 구성되어 주부는 처음 네 마디의 서주다음에 왼손의 여섯잇단음표에 대해 바른손, 즉 고음부의 16분음표의 음상으로 조화되는 화려한 악장으로 시작된다. 리듬이 서로다른 바른손과 왼손의 음형이 교차하는 가운데 생기는 일종의 환각이 주부의 주상이라 하겠다. 이 주부는 알레그로 아지타토의 2분의2박자입니다만 중간부는 d플랫장조의 4분의4박자로 모데라토 칸타빌레라고 표시되어 있다. 중간부는 극히 감상적이며 아름답고 애수적인 선율이 여러차례 되풀이 되어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이 중간부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부가 복귀되어 재현된다. 코오다는 중간부의 선율이 저음부에 회상되어 여운이 오래오래 남는 인상적인 효과를 낸다.

즉흥곡이란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악곡을 진행하는 형태를 말한다. 쇼팽이 쓴 즉흥곡은 4곡이 있으며 <제1번, 4번>이 유명하다.
특히 제 4번 환상 즉흥곡은 1834년의 작품으로 ‘환상’이란 제목은 그가 죽은 후 붙여졌다. 그는 생전에 이 곡을 무척 아꼈으며 죽은 후에 파기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지금에 와서는 4곡의 즉흥곡 중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다. 화려한 기교, 감미로운 선율이 매혹적이다.  작품 28의 프렐류드와는 달리 네개의 즉흥곡들은 세트로 출판이 되지 않았다.  가장 처음 작곡이 되었던 것은 흔히 환상즉흥곡이라고 불리는 곡으로 25살이던 1835년에 작곡이 되었지만 죽은 후에야 출판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작품번호는 가장 늦은 66번으로 되어 있다.
C sharp minor의 이 곡은 네 Impromptus중 가장 첫눈에 반하게 되는 곡으로 turbulent한 처음과 끝부분이 가운데의 쇼팽음악중 가장 서정적이고 우아한 멜로디의 가운데 부분을 앞뒤로 감싸는 3부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두 부분의 강렬한 대비는 쇼팽이 즐겨 사용한 기법으로 발라드 2번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쇼팽이 왜 이 C sharp minor Impromptu의 출판을 미뤘는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의견이 있다.  일부 쇼팽학자들은 빠르고 격정적인 처음과 끝부분이 Ignaz Moscheles의 E flat Impromptu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학자들은 쇼팽 자신은 이 곡을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았고 감추고 싶어했었다고 한다.



쇼팽 (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 3. 1 - 1849. 10. 17)
폴란드 태생


쇼팽은 폴란드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회적인 불안을 피해 북쪽 나라 폴란드로 이주했는데, 처음에는 연초 공장에서 회계 일을 하던 그는 공장이 폐쇄된 후 스카르벡 백작의 집에 프랑스어 가정 교사로 머물렀다. 그리고 옛 귀족 출신 가정부 유스티나와 결혼, 1남 3녀를 얻었다. 그 가운데 둘째가 쇼 팽이었다.   4세 때 피아노 기초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12세 때 바르샤바 음악 학교 교장인 엘스너에게 정식으로 작곡 교육을 받았다. 엘스너는 쇼팽의 독창성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했는데, 이것이 그로 하여금 피아노 작곡가로서 독보적인 인물이 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15세 때 그는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출판했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다. 다음해는 유럽 음악의 중심지 빈으로 가서 독주회를 열었다. 이때 슈만으로부터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라는 극찬을 받음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쇼팽의 마음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바르샤바 음악원 성악과 여학생인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를 남몰래 사모하면서도 도저히 사랑 고백을 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그는 차라리 그녀 곁을 영원히 떠나리라 마음먹고 정처 없는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살아있는 동안 두 번 다시 고국땅을 밟지 못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전전한 끝에 파리에 정착, 음악가로서 지휘를 굳혀 갔다. 26세 때 리스트의 소개로 쇼팽은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진취적인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를 만났다. 그때 이미 그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섬세하고 내성적인 기질의 쇼팽은 남장을 하고 엽연초를 피우는 6세 연상의 상드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으며 작곡에 전념했다. 이들은 마요르카 섬에서 사랑의 공동 생활을 즐겼는데, 이곳에서 쇼팽의 병세는 악화되었지만 주옥같은 명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하지만 화려한 사교 생활을 좋아하는 상드와 내성적이고 고독을 즐기는 쇼팽이 언제까지나 이러한 생활을 견딜 수는 없었나 보다. 그들의 공동 생활은 1846년 그의 나이 36세 때 끝이 났다.  그후 그는 생계를 위해 한때 그의 문하생이었던 스털링의 초청으로 스코틀랜드에 갔다가 기후가 몹시 나쁜 그곳에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었고, 급기야는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병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결국 39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그의 유해는 피에르 라세즈 묘지에 묻혔고, 그의 유언에 따라 심장은 모국 폴란드의 바르샤바 성십자 교회에 안치되었다.  쇼팽은 일생을 거의 피아노곡 작곡에 전념했다. 그러나 예외로 만든 6개의 관현악곡, 3개의 소나타 역시 빛을 발하고 있고, 즉흥곡, 녹턴, 마주르카, 왈츠, 폴로네이즈 등은 쇼팽이 개척한 피아노곡 형식이었다. 새로움이 가득한 그의 곡들을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정교함과 치밀한 악상을 독창적으로 사용한 쇼팽은 선배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자의 세계를 열고 음악의 세계에 군림하기 시작한 인물이다. 쇼팽에게 있어 가장 밝은 태양이었던 상드도 1876년 열정의 불꽃을 모두 다 사르고 여기에 묻힌다. 프랑스 중부 노앙 지방에 눈부시던 태양도 그녀의 주검 위에서는 슬며시 그 빛을 감추고 만다.  쇼팽은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작곡가입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낭만파 피아니스트이며 또 주로 피아노만을 위해 작곡했기 때문이다. 더욱 이 매력적인 일은 쇼팽의 선율이 언제나 쉽게 이어지면서도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연주자들한테는 그의 피아노 곡이 아주 사랑받는 곡이다. 마치 바이얼 인이나 첼로같은 악기를 다루거나 또는 노래를 부르듯이 연주할 수 있다.  쇼팽은 피아노를 위해서 많은 곡을 썼으나 연주를 하는 데에는 많은 기교적인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면 24개의 연습곡은 각각 기술적 난점이 있죠. 물론 모두 아름답지만. 결국 훌륭한 연주자라면 기교의 어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쇼팽의 녹턴이라든가 또 세계적으로 이름난 왈츠곡들을 남긴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모두가 연주하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다.  한 마디로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쇼팽을 말하자면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사랑하고 선호하면서도 연주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음악가 중에 한 사람이다.

 

판타지 (fantasy)

보통은 환상곡이란 표현보다 판타지라는 표현을 쓰다보니 백과사전에도 나오는 것이 쉽게 접근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이 작곡한 작품.  보통 환상곡으로 번역 된다. 이는 시대 ·작곡가 ·곡풍(曲風) 등에 따라 종류가 많으나 일반적으로는 다음의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