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산책/고전음악

한국인의 애청 클래식 베스트 60 - [7] 베토벤 : 월광소나타

풍월 사선암 2006. 2. 4. 15:57

한국인의 애청 클래식 베스트 60 - [7] 월광소나타

MoonLight 

Piano sonata No.14

OP.27-2 1Mov. Adagio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1827)

독일 빈 태생 

피아노 소나타 14번, C sharp단조, op.27-2 "월광"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을 모르는 사람도 제목만은 들어본 적이 있을정도로 잘 알려진 곡이다. '월광(달빛)'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죽고 난 뒤인 1832년, 시인이었던 H.F.L.Rellstab가 이 곡의 1악장을 두고 '달빛에 물든 루체른 호반위를 지나는 조각배를 떠오르게 한다'는 발언을 한 데에서 연유된 것이므로 굳이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곡의 이미지를 연관시킬 필요는 없으며, 그렇다고 애써 거부할 필요도 없다. 1악장의 음악적 이미지를 시인이 이야기한 회화적 이미지와 연관시키는 것은 분명 이 곡의 감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펴서 2악장과 3악장까지 연관시켜 보아도 재미있다.

이 곡 역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악장과 3악장이 소나타형식이며 2악장이 짧은 미뉴엣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지만 1악장의 템포가 'Adagio sostenuto'라는 사실, 보통 활기찬 느낌의 1악장과는 달리 꿈꾸는 듯이 느껴지는 나른한 선율이 지속된다는 점이 대단히 특이한 첫악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모차르트는 첫악장을 주제와 변주로 구성한 전례도 있었다). 또한 소나타형식의 화성전개도 매우 비전형적인 것이지만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악장전체가 숨막힐 것 같은 고요로 가득 차 있으며 선율은 마음이 아플정도로 감상적이고 아름답다. 악장 전체를 통해 한 번도 감정의 기복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  2악장은 활기찬 미뉴엣이다. 완전한 악장의 기능을 한다기에는 앞 뒤의 악장이 너무 대규모적이어서 고요한 첫 악장과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종악장 사이를 이어주는 간주곡같은 인상이다. 멜로디는 우아하고 리듬은 재미있다. 두 가지의 미뉴엣, 그리고 첫 번째 미뉴엣의 반복이라는 매우 고전적인 형식이며 미뉴엣의 반복이 끝나는 순간 단절없이 3악장으로 돌입한다.  3악장은 'Presto agitato(매우 빠르고 격하게)'라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속도기호가 붙어있다. 대규모의 소나타형식이며, 기존에 존재했던 어떤 음악보다도 격렬하고 열정적인 음악이다. 서두의 격한 16분음표들의 돌진은 1악장의 서두주제와 분명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분위기는 완전히 반대이다. 숨막힐 듯 긴박한 1주제에 이어 선율선이 제법 살아있는 제 2주제가 등장하는데 관계장조를 취한다는 원칙은 여기서도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1주제의 급박한 분위기는 2주제에 와서 더욱 고조되고 비극적인 느낌까지 준다. 1악장이 가지고 있던 팽팽한 긴장을 3악장에서 분노의 표출에 가까운 형태로 무너트리고 있는 것 같다. 발전부 역시 긴박한 선율의 연속이며 이 급속한 진행은 단 한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다가 곡이 가장 크게 요동치며 현란 오른손의 아르페지오, 트릴이 나타나는 순간에 갑작스레 adagio로 돌변하면서 한 숨을 돌리게 된다. 이어 다시 presto의 템포가 돌아오고, 2주제를 소재로 한 짤막한 코다로 들어간다. 코다는 두 개의 동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2주제를 소재로 전반부를, 1주제를 소재로 후반부의 종결을 짓고 있다. 역시 두 주제 사이의 타협은 조성적인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음악양식으로서의 소나타
서양음악의 작곡기법과 형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소나타(Sonata)'가 될 것이다. 이는 성악곡에 반대되는 기악곡을 통칭하는 말로 우리가 접하는 고전음악의 적어도 절반 이상이 독주악기나 관현악이나, 실내악을 위한 기악곡들이며, 이것들은 모두 큰 의미의 '소나타'다. 이것이 피아노와 같은 독주악기를 위한 경우에 우리는 그대로 '소나타'라고 부르지만 그외의 경우에 '교향곡'이라고도 부르며 '현악 사중주'라고도 하며 '협주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컨데 '소나타'라는 것은 빠르고 느린 몇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작품을 일컫는 것이다. 작품으로서의 소나타 이외에 악장의 작곡양식으로서의 '소나타'가 있다. 어떤 음악에 대해 설명할 때 '1악장, Allegro, 소나타형식'과 같은 말을 자주 하게 되는데 소나타들의 첫 악장은 거의 예외없이 소나타형식을 취하고 있다.
피아노와 같은 독주악기를 위한 소나타는 3악장의 구성이 흔하지만, 실내악이나 관현악을 위한 소나타 (현악사중주곡, 교향곡)는 4악장의 구조가 많은데 이 경우 세 번째 악장은 짧은 무곡이 삽입된다. 위에서도 언급됐듯이 소나타의 첫 악장은 소나타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소나타형식이란


소나타 형식은 비교적 빠른 템포를 취하여 크게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혹은 도입부, 발전부, 재현부)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제시부에서는 제 1주제가 으뜸조로 나타나며 이 주제의 조성을 곡의 조성으로 본다. 제 1주제는 조성에 관계없이 활기차고 생기있는 느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주제가 제시되면 그 선율과 화성을 소재로 하여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경과구가 나타나게 되고 이어서 2주제가 시작된다. 2주제의 조성은 1주제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1주제의 으뜸조에 대한 딸림조나 관계장조(1주제가 a단조였다면 2주제는 C장조가 된다는 식으로)로 나타나게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활기있는 제1주제에 비해 2주제는 서정적이고 '한 숨 돌리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전파시대의 소나타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러한 특징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개부는 제시부에 포함된 소재들을 음악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부분이다. 1주제의 화성, 2주제의 화성, 경과부의 선율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다양한 조성이 등장한다. 대위법적인 기술이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현부는 제시부가 다시 등장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 2주제의 조성이 제 1주제와 동일하다. 음악의 오묘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서로 대조적인 분위기와 상이한 - 실제로는 종속적인 - 조성을 가지는 두 가지의 주제가 발전부에서의 복잡한 전조를 거듭하여 그 음악적인 갈등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 동일한 조성을 가지는 두 가지의 주제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는 분위기마저 흡사하다. 대립하는 두 가지 사상이 갈등을 겪은 후에 융화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주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섭리가 아닐까? 음악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깊이있고 도덕적이며 건전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 작곡양식을 통해 증명할 수 있지만 소나타형식은 가장 쉽고도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악장은 통상적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가지는 느린 악장이다. 조성은 소나타형식의 1,2주제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1악장의 딸림조 혹은 관계장조이며, A-B-A의 세 도막형식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다. A부분은 아름다운 선율이 가요풍으로 노래되고, B부분은 딸림조로 전조되어 다소 폴리포닉 (몇 개의 선율선이 겹쳐져서 진행되는 양식)하게 진행된다. 되돌아오는 A부분은 첫 머리보다 화성적인 구조가 약간 복잡하다. 소나타형식의 2주제와 마찬가지로 '한 박자 쉰다'는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 악장에는 론도형식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템포는 첫 악장보다 훨씬 빠르고 주제의 동기는 짧고 간결하다. 론도(Rondo)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끼고 몇 가지의 다른 경과부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경과부와 경과부사이에는 반드시 주제가 삽입되며 직접 다음의 경과부로 넘어가는 일은 없다.  소나타를 구성하는 악장들은 전체적으로 변증법적인 구조를 지닌다. 대립되는 성격의 악장이 2개 연속하여 등장하고 종악장에서 갈등은 해소된다. 요컨데 정-반-합이다. 악장을 구성하는 소나타형식과 같은 원리이다. 이처럼 합리적인 곡의 구성은 가장 많은 작곡가들의 공감을 일으켰고 서양음악의 '주류'로 자리하게 하였다.

할아버지 루트비히와 아버지 요한도 음악가였으며 악재(樂才)를 인정한 아버지는 아들의 천재적 소질을 과시하려고 4세 때부터 과중한 연습을 시켰으며, 7세 때에는 피아노 연주회까지 열었다.  베토벤은 몇몇 선생의 지도를 받았는데 1779년에 그를 가르친 크리스찬 고트로프 네페로부터는 음악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인 영향까지 받았다. 1782년 궁정예배당 오르간 연주자로 출발, 2년 만에 정식 멤버로 임명되고 1787년에는 빈에 가서 흠모하던 모차르트를 만났으나, 어머니의 위독으로 곧 본으로 돌아와 이 해에 끝내 홀아비가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떠맡았다.그러다가 1792년 바르트슈타인백작을 비롯한 친구들의 원조로 빈에 유학, 결국 그 곳이 그의 영주의 땅이 되었다. 빈에 자리 잡은 베토벤은 귀족들의 보호를 받았으며, 셴크 ·알브레히트베르거 ·하이든 ·살리에리 등에게 사사하여 음악가로서의 지식과 능력을 키워 나갔다.1795년 피아노 연주자로서 데뷔하고 이 시기에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피아노 3중주곡》을 발표하여 착실한 첫발을 내디뎠다. 1796년 프라하 ·드레스덴 ·베를린을 여행하고, 1800년에는 《제1교향곡》과 6곡의 현악4중주곡을 발표했다.그러나 이 무렵부터 귓병이 나서 점차 악화하였다. 절망한 그는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포기, 작곡에만 전념했으며 두문불출로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제2교향곡》(1802), 오라토리오 《감람산상(橄欖山上)의 그리스도》(1803), 그리고 1804년에는 《제3교향곡(영웅교향곡)》을 작곡하여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개성적인 스타일을 확립하였다.1805년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연에 실패하고, 이듬해 이를 손질하여 재연하였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이 최종적인 형태로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1814년의 일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빈을 비롯하여 유럽 각지의 출판사가 앞을 다투어 간행하였다. 출판에서의 보수와 귀족들의 지원으로 모차르트와는 달리 안정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후원자로서 특히 유명한 귀족은 루돌프대공(大公), 롭코비츠공작, 킨스키공작 등이었다. 1810년에는 괴테의 극시(劇詩)로 《에그몬트》를 작곡하였다. 그 후에 유명한 《영원한 연인》에 부치는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에 대한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러한 여성에의 동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영웅교향곡》이 작곡된 이후의 약 10년간은 창작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으며, 교향곡 ·서곡 ·협주곡 ·피아노소나타 ·바이올린소나타 ·기타 실내악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다. 특히 《제5교향곡(운명교향곡)》(1808) 《제6교향곡(전원교향곡)》(1808) 《피아노협주곡 제5번(황제)》(1809) 《바이올린협주곡》 (3곡, 1806), 피아노곡 《아파시오나토 소나타》(1805) 등이 유명하다.1815년 이후의 12년간은 베토벤의 창작기 중에서 후기에 속한다. 이 무렵에는 정치와 사회 정세의 변화도 있었고, 친지(親知)도 적어졌으며, 또 귓병의 악화로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필담(筆談)을 통해서만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다.그 자신의 연주회 횟수도 줄었고, 빈에서는 보다 가벼운 음악이 애호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일련의 창작활동은 1817년에 가장 저조했으나, 그 이후 다시 힘찬 작곡활동을 계속하여 뛰어난 대작들을 내놓았으며, 루돌프대공에게 바친 《장엄미사곡》(1823)과 합창을 포함한 《제9교향곡》(1824)이 그 정점을 이루었다.장례는 29일에 거행되었는데, 2만을 넘는 시민들이 참가, 애도하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빈고전파(古典派)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확립한 고전파의 형식이나 양식은 베토벤에 의하여 더 개성적으로 다듬어졌으며, 또한 그의 손으로 낭만파에의 이행(移行)도 준비되었다.본 시절에는 만하임악파의 영향 아래 습작적인 작품을 썼으나, 벌써 이때부터 개성적인 특징이 엿보였다. 1800년 전후에는 특히 하이든에게 받은 영향을 나타내면서도 개성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을 거쳐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이를테면 정적(靜的)인 고전성(古典性)에 비하여 베토벤의 작품은 동적인 다이내믹한 힘을 특징으로 하는데 형식적으로는 강고한 형식감(形式感)으로 일관되어, 곡마다 독자적인 스타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후기의 창작활동은 중기에 비하여 다이내믹한 힘은 부족하지만, 보다 깊은 마음의 세계가 표현되어 신비스러울 정도의 감동적인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는 낭만파의 초기의 대표자들인 베버나 슈베르트의 활동과도 겹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베토벤의 작품들은 그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지금도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음악가이면서도 청각을 잃었지만, 이를 극복한 정신력은, 인간의 집념과 생활태도의 귀감으로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은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다. 이것은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음악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위대한 유산이다. 비록 최만년에 소나타를 작곡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의 전생애에 걸친 작곡양식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32곡의 소나타 중 어느 한 곡도 그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곡은 없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세 곡은 '3대 소나타'라고 불리는 8번과 14번, 그리고 23번이다. 이들은 각각 '비창', '월광', '열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8번을 제외하고는 작곡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붙여진 이름이며 상업적인 냄새도 풍기고 있지만 이렇게 훌륭한 곡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베토벤을 진정한 낭만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근거는 평생동안 끊임없이 추구한 새로운 양식에의 시도에 있다. 교향곡에 스케르초를 도입한 것이라든가, 5번 교향곡에서 같은 리듬의 주제를 전곡에 걸쳐 집요하게 다루는 모습과, 주제를 전개시키고 발전시키는 천재적인 솜씨, 피날레에 느닷없이 끼어드는 스케르쪼의 동기, 합창을 도입한 교향곡, 3번 교향곡의 피날레에 등장한 대규모의 변주, 독주악기의 카덴짜로 시작하는 협주곡등등, 그가 시도한 새로운 양식은 수도 없을 정도이다. 피아노 소나타도 예외가 아니어서 '3대 소나타'라고 불리는 소나타들 중 정형적인 소나타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23번 하나 뿐이며, 8번과 14번에는 당시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