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제9번 교향곡 신세계(Znového sveta)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 9 번. op95. E단조 제1악장 : Adagio Allegro molto, 마 단조, 4/8→2/4박자, 소나타 형식 ○ 제1악장 : Adagio Allegro molto, 마 단조, 4/8→2/4박자, 소나타 형식
드보르작(Dvorak Antonin 1841∼1904) 프라하 근교 넬라호제베스 출생. 여관과 푸줏간을 경영하는 집의 장남으로 태어나 1857년부터 오르간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하였는데, 극장이나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베를리오즈·리스트·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기회도 가졌다. 졸업 후 레스토랑 등에서 비올라연주자로서 생활하다가 60년대 초 체코슬로바키아 가설극장 관현악단에 입단, 62년부터 10년 동안 비올라연주를 담당했다. 이때에 그는 많은 오페라작품을 접할 수 있었으며, 또한 66년 그곳의 지휘자로 부임한 B. 스메타나의 영향을 받아 당시 고조되던 체코 민족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드보르자크의 이름이 비평가의 주목을 끌게 된 최초의 작품은 민족적인 제재를 다룬 애국시 《백산(白山)의 후계자들》에 의한 합창찬가로서, 이것은 73년에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74년 성 아다르베르트교회의 오르간주자가 되었고, 단막 오페라 《완고한 자들》로 가설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생활은 여전히 궁핍하여 이 해부터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마다 작품을 제출하였다. 그러던 중 77년 심사위원인 J. 브람스에게 높이 평가되어 베를린출판사에서 작품이 출판되고 그의 이름도 국내외로 퍼지게 되어 이 때부터 지휘활동도 시작하였다. 84년부터 9회에 걸친 영국 방문에서 대환영을 받았으며, 91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92년 뉴욕내셔널음악원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원 원장 및 작곡교수로 있었으며 이때 아메리카대륙에서 받은 강한 인상은 교향곡 제 9 번 《신세계》와 첼로협주곡 등의 걸작을 낳았다. 95년 귀국하여 프라하음악원 작곡교수가 되었으며, 그 뒤 교향시와 오페라 작곡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1901년 오스트리아 종신 상원의원으로 추대되었으며, 프라하음악원 원장에 취임하는 등 많은 영예를 얻었으나 1904년 5월 1일 신장병으로 사망하였다. 드보르자크는 슈베르트와 비견되는 다작(多作)의 천재로서 샘솟는 듯한 악상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작곡가였다. 그의 초기의 작품에서는 베토벤·슈베르트의 영향을 볼 수 있으며, 바그너와 리스트에 열중했던 시기에는 민족적인 것을 상실한 듯한 경향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1866년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에 패배한 오스트리아가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압력을 완화시키자,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족운동에 대한 열망도 높아지게 되는데 따라서 드보르자크의 그 뒤의 작품에서도 일관적으로 흐르는 체코적인, 혹은 슬라브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그는 생애 후반기에 표제음악에 몰두하여 걸작을 남겼는데, 협주곡·교향곡·교향시·피아노곡·오라토리오·칸타타·합창곡·가곡 등 여러 분야에서 작품을 썼으며, 특히 시적인 《루살카》는 그의 오페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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