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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영화 '국가 부도의 날', 한은이 IMF행 막았다고?

풍월 사선암 2018. 12. 4. 11:23

[팩트체크] 영화 '국가 부도의 날', 한은이 IMF행 막았다고?


영화 속 재정국, 한은 반대에도 IMF 구제금융 찬성실제는 반대

재정국 아이디어, 한은 것으로 둔갑하기도모피아불신 탓인듯

"IMF 뒤에 미국" 당연한 얘기를 음모론으로미국은 IMF 최대주주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개봉 첫 주에 15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 전후 상황을 긴장감 있게 잘 풀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당시 정부의 무능과 재벌의 탐욕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불과 21년 전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치고는 영화 속 이야기와 장면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많다. IMF 외환위기 당시 실무를 맡았던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원)와 한국은행 관계자들은 영화를 보고 난 뒤 하나 같이 "그냥 허구의 산물"이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영화의 어떤 부분이 팩트에 기반했는지, 혹은 팩트와 다른지 정리해봤다.

 

IMF는 누가 가자고 했나

 

영화에는 재정국(재정경제원)IMF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한시현(김혜수)을 비롯한 한은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는 장면이 여러 차례에 걸쳐 나온다. 한은 통화정책팀장으로 나오는 한시현은 IMF만은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재정국 차관으로 나오는 조우진은 그런 한시현에게 다른 대안이 있느냐며 면박을 주고 IMF와의 협상을 강행한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정반대였다. 당시 재경원 관료들은 IMF 행을 최대한 미루려고 했다. 다른 대안들을 모두 써보고 난 뒤에 가자는 게 재경원의 입장이었다. IMF 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건 오히려 한은의 주장이었다. 당시 한은을 이끌던 이경식 전 총재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IMF에 서둘러 가야 한다고 재촉했고, IMF에서 돈을 꾸는 게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외환을 직접 관리하는 한은 총재 입장에서는 외환위기가 더 다급하게 느껴졌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의 한 장면. 정부 대표단과 IMF 협상단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반면 외환뿐 아니라 국가 전체 전반을 관리하는 재경원 입장에서는 IMF 구제금융 이후의 후폭풍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피하려 했다. 당시 김석동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은 IMF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끝까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당시 재경원 관료들의 대체적인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왜 굳이 실제와 정반대로 상황을 묘사한 걸까.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건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에 대한 오래된 불신 탓으로 보인다. 비주류 경제학계, 또는 진보진영에서는 모피아-재벌-미국으로 이어지는 악의 세력이 한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을 종종 펼친다. 우석훈이 쓴 모피아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다. 모피아에서도 한국은행은 모피아와 재벌의 결탁을 막는 정의의 사도로 등장하는데, 이 영화도 그런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느라 실제 있었던 것과 반대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ABS 발행은 누가 추진했나

 

영화에서 재정국이 IMF 협상을 강행하려 하자 한은 직원들은 대안을 마련한다. 국가 차원에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급한 불을 끄고 일본 정부에서 달러를 빌려오자는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에 둘다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들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한은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재경원의 아이디어였다는 점이다.

 

IMF 구제금융 가능성을 정부 고위 관료들이 검토하기 시작한 199711월초에 재경원 실무진에서는 100억달러 규모의 ABS를 발행하자는 의견을 냈다. ABS는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해외시장에 발행하는 건데, 실제로 ABS 발행이 이뤄지면 IMF의 도움 없이도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 재경원에 있었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이 방안을 강하게 추진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무산됐다.

 

IMF협상단이 1997112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정부 협의단과 상견례를 갖고 있다. /조선DB


일본에서 달러를 빌려오자는 아이디어도 재경원이 추진한 것이다. 사실 이건 애초에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 금융시장이 어려워지기 전에 홍콩 주식시장이 대폭락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일본 정부와 은행들도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한국에 달러를 빌려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말하는 등 당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재경원 관료들은 아는 연줄을 모두 동원해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당시 재경원 차관보로 IMF 협상 수석대표를 지낸 정덕구는 "일본 정부로부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남은 방법은 IMF밖에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미국 차관은 IMF 협상장에 있었나

 

영화에서 한시현은 미국 재무부 차관이 IMF 협상이 진행 중인 호텔을 방문한 사실을 찾아내고 IMF 총재를 압박한다. 미국이 뒤에서 IMF 협상을 조정하는 게 아니냐며 큰소리친다. 이 장면에서 기획재정부, 한은을 비롯해 경제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를 음모로 몰아가는 뻔뻔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IMF는 전 세계 모두를 위한 국제기구가 아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을 통해 만들어진 IMF는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들이 의사결정을 주도한다. 미국의 IMF 지분율이 17.4%로 가장 많고 일본·중국(6.4%), 독일(5.6%), 영국·프랑스(4.2%), 러시아(2.7%)의 지분율도 높은 편이다. 이들 국가는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국가의 채권국이 된다. 자신들의 돈을 쓰는 만큼 어디에 얼마나 쓸지에 대해 늘 의견을 제시한다.

 

1997년 아시아 전역을 휩쓴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구제금융은 미국이 주요 채권국으로 주도했고,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은 일본이 주요 채권국으로 주도했다. 이들 채권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과도하게 챙기려 한 부분은 분명 문제였지만, 미국 정부 관료가 협상장에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협상에 참여한 건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부 차관보와 테드 트루먼 FRB 국장이었다.

 

국가 부도의 날의 한 장면. 정부 관계자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여담이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걸 깨달은 아시아 국가들은 이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외환위기를 겪는 국가가 생기면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한 통화스왑계약을 아시아 국가들끼리 체결한 것이다.

 

199711월에 대우그룹이 위험했나

 

IMF 구제금융을 앞두고 한국의 중견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IMF 전후로 한국에서 2만여 개의 기업이 사라졌고 6개 은행과 22개 종합금융회사가 결국 문을 닫았다. 영화에서는 외환위기 TF팀의 사무실에 놓인 100대 기업 리스트에서 도산한 기업에 빨간 줄을 긋는 식으로 위기 상황을 묘사했다. 이때 특기할 만한 건 한은 직원이 전화를 받고 나서 대우도 위험하다고 하는 장면이다. 대우그룹은 당시 재계 5위에 드는 굴지의 재벌이었다. 대우가 위험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 대단한 파급력이 있다.

 

문제는 이 장면 자체가 허구라는 점이다. 1997IMF 외환위기 당시 대우그룹은 위기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몸집을 불렸다. 위기에 빠져 있던 기아차를 대우그룹이 가져가는 방안이 논의될 정도였다. 대우그룹이 위기에 빠진 건 1999년의 일이다. 분식회계, 과대부채, 횡령 같은 문제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터져나오면서 흔들렸고 결국 부도에 이르게 됐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대우그룹의 재무구조는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여기에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이 함부로 거액 대출을 해주지 않고 꼼꼼하게 대출 심사에 임하면서 대우그룹의 부실이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199711월에 대우도 위험하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한은 직원이 예언가는 아닐테니 말이다.

 

한국은행 비밀보고서는 있었나

 

영화는 국가 부도 가능성을 언급한 한은 비밀보고서에서 시작한다. 한시현이 쓴 보고서를 읽고 한은 총재가 청와대 경제수석을 찾아가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식이다. 과연 국가 부도 가능성을 언급한 한은 비밀보고서가 실제로 있었을까.

 

1997117일 오후 4시에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외환위기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긴급 회의가 실제로 있었다. 당시 김인호 경제수석이 재경원과 한은의 실무진을 불러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 논의된 자료 중 하나가 한은의 보고서였다. ‘외환유동성 사정과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19971130일 힐튼호텔에서 IMF 구제금융 협상 타결 소식을 알리고 있다. /조선DB



이 보고서는 환율 방어를 위해 1030일부터 116일까지 233000만달러를 쓰면서 외환보유고가 285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보고서는 11월말까지 외환보유고는 275억달러로 감소할 전망이고, 특히 가용 외환보유고는 140억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야말로 외채를 갚지 못해 국가가 부도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해외에서 더 이상 돈을 빌려오기 어려워지면 은행들은 크레디트 라인(대출한도)을 축소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종금사들이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이 보고서는 IMF 외환위기와 국가 부도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첫 보고서로 여겨진다. 다만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등은 이전에도 켜져 있었다. 재경원 경제정책국은 19977월에 '바트화와 기아: 상이한 문제인가'라는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한국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를 만든 당시 재경원 정책조정과장이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이다. 변 전 과장은 7월 보고서 이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한 보고서를 냈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강 부총리는 19982월 변양균 당시 재경원 국장의 상가에서 기자들을 만나 "부임 때부터 한국은 국가 부도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강 부총리는 19973월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 외환보유액이 280억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은의 비밀보고서가 나왔던 시점과 비슷하다. 이후 정부는 여러 방안을 내놓으며 외환보유액을 300억달러 이상으로 늘렸는데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IMF 협상장에 등장한 한은 통화정책팀장?

 

영화에서 김혜수가 분한 한시현 한은 통화정책팀장은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하고 위기 대응 과정에서 재경원 차관과 각을 세우며 논쟁하는가 하면 한은 총재(영화에서는 한은 총장이라고 나오지만 한은 수장은 총재라고 한다)와 부총재, 부총재보, 부장(현재 국장) 등을 제치고 IMF와 정부 간 협상장에 등장한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으로 나오는 김혜수. /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는 영화의 극적 요소를 살리기 위한 허구다. 총재를 중심으로 비교적 엄격한 직급제로 운영되는 한은의 특성상 한은을 대표하는 회의나 협상에는 총재가 참석한다. 실제로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과 위기 대응을 위해 여러 차례 회의에 나선 것은 이경식 한은 총재였다.

 

외환위기 당시 한은 금융시장부에서 재직해 김혜수의 모델로 거론되는 한 전직 한은 인사는 "영화 개봉 후 관심이 커지면서 한시현 팀장의 실제 인물이 누구냐는 의문이 나오지만 실제로 한은 팀장급 인사가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영화로만 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당시는 한은이 재경원의 산하기관, 남대문 출장소라는 인식이 존재하던 시기라 한은의 정책 주도권이나 독립성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시기라고 관계자들은 회상한다. 한은 팀장급 인사가 차관과 카운터 파트로 나서 논쟁하거나, 국내 굴지 그룹 총수를 만나 "정신 차려라"라고 경고하는 부분은 한은 내에서도 과도한 설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는 왜 위기를 맞았나

 

한국은 199612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되면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젖었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며 한국 경제의 격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OECD 가입 1년도 되지 않아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1997123일 구제금융 합의안에 서명하는 당시 임창열(가운데)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시(왼쪽) IMF 총재.조선일보 DB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부분은 영화가 비교적 이야기를 잘 풀어낸 부분으로 평가된다. 당시 외환위기는 악화되는 실물 경제 상황에 눈 감은 경제 당국의 정책 운용 실패, 대기업의 방만한 차입 경영, 과도한 경상수지 적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무분별한 신용을 제공하며 거액의 부실 채권을 떠안은 잘못된 금융 시스템이 위기를 부추겼다. 결국 한국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해외 투자자들이 대거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본격적인 위기가 촉발됐다.

 

외국인 투자 자금의 엑소더스가 이어지면서 환율은 급등했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것은 물론, 자재를 수입해 물건을 만들던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제대로 된 신용 평가 없이 무조건 대출을 내주던 금융기관들이 부실 채권을 떠안고 쓰러지면서 기업 간 자금 경색이 심화됐다. 가계와 기업 경제가 지속적으로 취약해지는 정부는 위기 원인과 처방에 무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IMF 구제금융 합의안에 어떤 내용이 포함됐나

 

영화에서 IMF는 한국에 고통스러운 구제금융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그려진다. IMF와 정부가 합의한 정책 프로그램은 영화에 나온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실업이라는 고통을 수반한 기업 구조조정과 외국인 투자 제한 완화 등 자본시장 자유화, 통화와 재정 긴축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경험하던 한국에는 구제금융 조건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명시된 구체적인 정책 대응에는 금리의 급격한 인상과 재정 긴축이 담겼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정부가 곳간을 열고 중앙은행이 통화를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하지만 우리 정부와 IMF가 합의한 내용은 이와 반대였던 셈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IMF 총재 역할로 나온 뱅상 카셀. /CJ엔터테인먼트


정부는 금융 시스템 구조조정도 약속했다. 특히 영화에 나온 것처럼 정부는 9개의 부실 종금사 업무정지라는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시 IMF12개 종금사를 즉각 폐쇄하라고 요구한 데 따른 조치였다. 재경원은 청솔종금’ 1개만 폐쇄하고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정리하겠다고 설득했으나 IMF가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재경원은 결국 종금사들에 영업정지를 통보했다.


급진적인 무역, 자본시장 자유화 조항도 포함됐다. 우리 정부는 국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무역관련 보조금, 수입선 다변화제도, 규제적인 수입허가제 폐지에 관한 일정표를 제시해야 했다. 자본 자유화 프로그램도 추진됐다. 외국인 주식매입한도가 종목당 26%에서 50%(1997년 말), 55%(1998)로 확대됐고, 외국인 1인당 주식소유한도도 기존 7%에서 50%로 확대됐다. 각종 승인절차도 간소화돼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규제도 완화됐다.

 

대거 실업자를 양성한 노동시장 구조조정도 명시됐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이전까지만 해도 법원이 결정하던 기업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 제한 규정을 완화한 것이다. 기업의 해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용보험제도를 강화하고 개인 직업소개소와 고용알선기관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도 합의안에 담겼다.

 

구조조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일각에서는 IMF의 권고가 한국 정부가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했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업과 은행 간 유착 고리를 끊게 된 것도 IMF 합의가 계기가 됐다. 위기 이전에는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고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 정부가 임명한 은행 책임자의 심사만 거쳤다. 하지만 IMF 이후 은행은 상업적인 관점에서 평가를 거쳐 대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은행 대출 과정에서 정부 개입을 줄이도록 한 것도 IMF 권고 사항이었다.

 

한편 영화에서는 IMF 총재(뱅상 카셀분)가 직접 한국에 방문해 협상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스탠리 피셔 당시 IMF 수석 부총재가 한국 구제금융 과정을 주도했다.

 

위기를 기회 삼은 투자의 귀재 유아인실제로 있었나

 

영화에서 한국 경제가 부도 직전에 몰렸다는 신호를 감지한 종금사 직원 윤정학(유아인 분)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로 결심하고 투자자 모집에 나선다. 위기가 닥치면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하락)할 것으로 예상해 달러를 사 모으는가 하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헐값에 쏟아진 부동산을 사들여 엄청난 투자 수익을 얻는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는 위기를 기회 삼아 돈을 버는 윤정학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CJ엔터테인먼트


실제로 자산가격이 폭락하는 위기 상황을 투자 기회로 활용한 사례는 드물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 등으로 지금도 투자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IMF 이후였다. 이들은 위기 당시 자산 가격이 급락한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부동산 등 투자 자산을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남겼다.

 

하지만 위기 속 자산을 불린 이들의 말로가 좋지 않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 전 대표는 주가조작으로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역외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도 받고 있다. 권 전 회장은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가계부채, 정말 제2의 외환위기 도화선 되나

 

영화는 IMF 21년 후인 현재를 비추며 새로운 위기의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1500조원으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새로운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영화가 지적한 대로 1500조원을 넘은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금리 인상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 가계가 감당해야 할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고, 급증한 가계부채가 가계의 소비 여력을 축소시키면 소비가 감소하고 기업의 투자도 저하돼 경제 활력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이 경기 침체 우려에도 지난 11월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잠재 위험 요소인 가계부채 급증세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1997년 같은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당시 외환위기는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 외채를 갚지 못해 IMF에 외화를 빌리는 상황까지 간 것이었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가계부채는 외화 부족과는 큰 관련이 없다. 게다가 당시 금융사들은 적정한 평가 없이 기업에 돈을 빌려줘 자금 경색을 야기했으나 지금 늘어난 가계부채는 담보와 신용 평가가 비교적 깐깐하게 이뤄진 대출로 부실 위험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1997년 같은 외환위기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우리 경제 성장 활력을 떨어뜨려 경기 침체 상황을 가속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게 바로 가계부채 문제다.

 

조선일보 입력 2018.12.0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