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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組 왕국’ 현대차] [1] 울산 공장 근로자들, 30분 전부터 일손 놓고 퇴근 준비

풍월 사선암 2013. 9. 13. 16:55

[‘勞組 왕국현대차] [1]

울산 공장 근로자들, 30분 전부터 일손 놓고 퇴근 준비 

 

[현대차 울산공장 가보니]

기계 도는데 주식·영화감상, 1시간에 스패너 1번 들기도휴게실엔 3~4명 소파서 휴식

쉬엄쉬엄하다 퇴근속도전2분 만에 10대 부품 장착도

 

울산, 퇴근 시간 전부터 대기 행렬지난달 19일 오후 320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인 명촌문. 작업 종료 시각이 10분 남았지만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탄 수십 명의 근로자가 출입이 허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일은 제대로 안 하고 파업을 일삼으며 임금만 올리는 노조 때문에 점점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8월 미국 시장에서 닛산에 밀려 7위로 밀려나고, 국내에서도 올 들어 8월까지 승용차 시장점유율이 6년 만에 최저 수준인 60%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노조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현대차 노조는 올해도 임금 인상·정년 연장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하며 연례행사처럼 부분파업을 벌이며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귀족 노조'라고 불리는 현대차 노조를 집중 해부한다.

 

현대차 노조가 부분 파업에 돌입하기 전, 정상 조업을 하던 지난달 19일 오전 840.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중 아반떼와 i30 차량을 만드는 제3공장 의장공장에서는 차체가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천천히 움직이는데도 곳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3~4명씩 모여 앉아 쉬는 근로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근로자는 휴식시간이 끝나는 벨소리가 울렸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는 벨이 울린 지 5분이 지나서야 장갑을 꼈다. 5분이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차량 13대가 지나갈 시간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 요구로 공장에 와이파이를 설치한 이후 근무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56명이 하면 될 일을 100명이 하다 보니 쉬엄쉬엄 일하는 인력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 2층에 마련된 '서클룸'이란 휴게실엔 근무 시간인 데도 서너 명이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오후 330분 정각, 경주하듯 퇴근19일 오후 330분 현대차 울산 공장 명촌문. 보안요원들이 호루라기를 불어 출입을 허용하자 명촌문 근처에 모여 있던 근로자 600여명이 경주하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업 종료 시각을 30분 앞둔 오후 3. 울산공장 곳곳에서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은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구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오후 328분 울산공장의 정문인 명촌문엔 오토바이와 자전거 600여대가 5개 차로를 가득 메웠다. 오토바이가 부르릉거리는 소리 때문에 사람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오후 330, 보안 요원이 호루라기를 불자 직원들은 마치 경주라도 하듯 정문을 튀어나갔다. 이는 울산공장의 출입문 10여곳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자전거를 탄 40대 직원은 "내 일 다 하고 나왔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정상 퇴근하는 직원들을 태운 통근버스는 오후 350분쯤 공장을 나섰다.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노동 강도가 높다"며 매년 파업을 벌이는 현대차 울산공장 근로자들의 일하는 광경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문제가 뻔히 보이지만 회사에선 말도 못 꺼낸다""직원들에게 뭐라고 하면 노조 대의원이 달려와 '현장 탄압'이라며 라인을 세우겠다고 큰소리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보다 떨어지는 현대차 국내공장 생산성 그래프

 

회사 측은 휴식·점심·퇴근 시간 등 기초적인 근무 규칙을 지키자는 캠페인도 포기했다. 노조의 반대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엔 '쳐올리기' 또는 '올려치기'란 관행도 있다. 라인을 거슬러 올라가 빨리 자기 일을 끝낸 뒤 일찍 퇴근하거나 쉬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느슨하던 공장은 퇴근 시간을 앞둔 오후 3시가 되니 갑자기 분주해졌다. 근로자 한 명이 부품을 담은 노란 플라스틱 박스를 한쪽 팔에 끼고 자기 자리를 벗어나 라인 전체를 쭉 거슬러 올라갔다. 담담한 표정으로 2분도 안 돼 차량 10대에 부품을 장착했다. 평소보다 2배는 빠른 작업 속도였다.

 

울산 공장에서 만난 전직 노조 간부 A씨는 "50대 노조원들끼리 모이면 '작업 모럴(도덕)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20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고 한탄한다"면서 "우리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답이 없다. 정말 계속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느슨하게 일하는 바람에 현대·기아차의 생산성은 경쟁 업체들에 비해 크게 뒤진다. 자동차 업체의 생산성을 조사하는 '하버 리포트'에 따르면 GM·포드·크라이슬러 미국 공장에서 차량 1대를 생산하는 데 평균 21시간(2011년 기준) 걸렸다. 현대차 울산 공장은 30.3시간 걸린다. GM보다 1.4배 더 걸리는 셈이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200720.6시간에서 올해 14.4시간으로 생산성이 더 높아졌지만 울산 공장은 답보 상태다. 현대차노조는 "공장별 생산 차종과 자동화 정도가 달라 수평 비교를 하기 힘들다"고 주장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는 점에 대해선 설명을 못하고 있다.

 

 

울산 i30 라인 근로자 160명중 59명이 스마트폰 보거나 잡담

 

[현대차 울산·앨라배마 공장 가보니 하늘과 땅차이] 

앨라배마선 네 번 걸리면 해고

 

현대자동차 경영진과 노조는 12일 울산 공장에서 임·단협 조인식을 갖는다. 노조는 임·단협 과정에서 10일간 부분파업을 벌였고, 두 차례 주말 특근을 거부하면서 노조 요구 사항을 관철했다. 그 결과 지난해 9400만원이었던 근로자 평균 임금은 이제 1억원에 육박할 정도가 됐다.

 

1987년 설립된 현대차 노조는 지난 27년 중에 1994, 2009~2011년을 제외하고 23년간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파업 때마다 노조는 "근로자들이 높은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두둑한 선물 보따리를 회사로부터 받아냈다.

 

하지만 본지 기자들이 지난달 19일과 20일 현대차 울산 공장과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각각 취재한 결과 "같은 회사 공장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작업이 한창이어야 할 오전 10. 울산 공장 조립 라인의 근로자는 스마트폰을 아예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주식 시세를 보고 있었다. 차량 3대가 지나갔는데도 그의 시선은 줄곧 스마트폰 화면에 꽂혀 있었다. 작업 시간 1시간 동안 그가 스패너를 들고 일을 한 건 5분도 채 안 됐다.

 

이날 오후 5, 기자가 i30 라인을 따라 걸으면서 직접 세어본 결과 공장 안에 있던 근로자 160명 중 라인을 벗어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직원이 59, 일하는 사람은 101명이었다. 일하는 시간에 3명 중 1명꼴로 공개적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다.

 

앨라배마 공장의 작업 태도는 전혀 딴판이었다. 미국인 근로자들은 휴식 시간이 끝나는 벨이 울리기도 전에 전부 라인으로 돌아왔다. 휴식 시간에 통화를 하다가도 벨이 울리자 후다닥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앨라배마 공장은 근무 중 휴대전화를 쓰다가 네 번 적발되면 바로 해고된다. 앨라배마 공장 직원은 "그게 우리 규정"이라고 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의 몰락을 연구한 마이클 무어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본지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국자동차노조(UAW)는 회사가 항상 부유할 것으로 착각하고 회사를 공격해서 뭔가를 얻어내는 데만 집중하다가 결국 미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자 동반 몰락했다"면서 "현대차 노조도 지금 이대로라면 UAW의 실패를 답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앨라배마 공장, 반장 거쳐야 근무중 통화가능직원들 휴식 종료 1분 전부터 생산라인 대기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가보니]

휴대폰 꺼내놓은 사람도 없어

휴식종료 3분전 음료수도 버려 "생산 제품에 묻으면 안되니까"

 

앨라배마, 퇴근시각 2분 지나서야 주차장으로지난달 20일 오후 247. 한산한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출입문. 오후 245분 근무 교대 벨이 울리고 2분쯤 지난 뒤에야 근로자들은 하나둘 출입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난달 20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현대자동차 조립 공장. 오전 근무조의 작업은 오전 645분 시작해 오후 245분에 끝난다. 오전 630분이 되기 전에 속속 출근한 현대차 미국 근로자들은 오전 630분이 되니 반장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간단한 인수인계 사항과 휴가 일정 등을 전달받았고, 맨손체조로 몸을 풀었다.

 

오전 642. 근무 교대 준비를 알리는 예비 벨이 울리자 일제히 라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인에서 약 1~2분간 야간 근무조와 오전 근무조가 뒤섞였다. 하지만 라인을 먼저 빠져나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645분 근무 교대 벨이 울렸다. 그때에야 야간 근무조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라인은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공장에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잡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도 없었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사람조차 없었다. 21조 또는 31조로 작업하는 라인을 제외하면 이웃 라인 근로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없었다.

 

차량 하부를 점검하는 라인 옆에 있던 휴게실에 가봤다. 외부에서 안쪽이 훤히 보였다. 좌석 24개가 텅 빈 가운데 반장 세드릭 보먼(Bowman) 혼자 책상 위 PC에 근무일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휴게실에 왜 아무도 없느냐"고 묻자 보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금은 라인 가동 시간이다. 휴게실을 쓰는 경우는 단 세 가지다. 식사 시간, 휴식 시간, 근무 투입 전"이라고 답했다.

 

오전 1030. 휴식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섰다. 라인에서 빠져나오면서 근로자 대부분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얼굴에 갖다 대며 걸어 나왔다. 마치 참았던 욕구를 분출하는 듯했다.

 

현대차 주요 공장 생산성 비교 표

 

휴식 시간은 15. 하지만 휴식 종료 3분 전인 오전 1042분에 예비 벨이 울리자 근로자들은 일제히 마시던 음료수를 버리거나 휴게실 내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한 근로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생산 라인이나 제품에 튀면 곤란하니까" 하고 말했다. 작업 재개 벨이 울리기 1분 전에는 근로자 모두가 이미 라인에 서 있었다.

 

인사 담당자 스웨그먼(Swegman)"근무 중 휴대전화 사용, 음식 먹기, 보안경 미착용 등은 경고 대상이다. 경고가 4회 쌓이면 해고되고, 우리 공장은 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고 말했다. "근로자 집에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연락하느냐"고 묻자 스웨그먼은 "경비실로 전화하면 총무팀, 작업반장 등의 순서를 거쳐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진짜 급한 일이면 그 사이에 사람 죽겠다"고 농담 조로 말을 건넸지만 "그게 규정"이라는 대답이 단호하게 돌아왔다.

 

오전 근무조의 작업이 끝나는 오후 245분을 앞두고, 조립 라인 앞 주차장에서 이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작업 종료 시각 전에 라인을 빠져나오는 근로자를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오전 근무조 가운데 공장 회전문을 빠져나와 자기 차로 걸어가는 직원을 맨 처음 본 건 작업 종료 2분여가 지난 뒤였다.

 

이곳 앨라배마 공장은 자동차 산업 전문 분석 보고서인 하버리포트의 생산성 조사에서 미국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앨라배마 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64000달러(7000만원)로 울산 공장 근로자의 임금(1억원)보다 적다.

 

앨라배마 현대차의 노무 관계자는 "매년 우수 직원 100명을 선발해 한국을 일주일간 견학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울산 공장 생산 라인을 견학하는 코스는 첫해만 했다가 아예 일정에서 빼버렸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입력 : 2013.09.12 03:04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