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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분쟁 4개 섬 이야기 / 러시아 vs 일본 쿠릴열도

풍월 사선암 2012. 9. 6. 09:25

스페셜 리포트 동북아 분쟁 4개 섬 이야기

승자의 전리품 러일전쟁·2차대전 승패 달라지며 양국 간 영유권 변화

 

러시아 vs 일본 쿠릴열도

박영철 차장 / 이장현 인턴기자·서울대 인류학과 4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반도 사이, 오호츠크해와 태평양을 나누고 있는 56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있다. 쿠릴열도다. 그중 홋카이도와 가까운 4개 섬이 있다. 일본 이름으로 에토로후(擇捉), 구나시리(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60여년을 끌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분쟁의 주인공이다.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들 4개 섬을 북방영토라 부르며 영유권 주장을 지속해 왔다. 올해도 일본은 방위백서를 통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했고, 825일부터는 러시아 전함 2척이 정박해 2차대전 소련군 희생장병 추모행사를 가진다.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이 4개의 섬에서 러·일의 영토 갈등이 재현되고 있다.

 

원주민 배제된 쿠릴열도 분쟁사

 

태평양판과 북아메리카판 경계에 위치한 쿠릴열도는 30여개의 활화산이 있고 지진도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다. 기후는 매우 춥고 습해서 살아가기 척박한 땅이다. 원래 이곳에는 15세기부터 아이누라고 불리는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홋카이도를 포함해 쿠릴열도, 사할린 지역에 광범위하게 살았다. 아이누족이 수렵을 하면서 러시아까지 교역을 하며 살던 쿠릴열도 지역에 분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였다. 러시아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에도(江戶)막부는 러시아의 확장에 위기감을 느꼈다.

 

에도막부는 1855년 러·일 통상우호조약을 통해 사할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대신 현재 일본이 북방영토라고 주장하는 4개 섬을 자국 영토로 확정지었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명확한 국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20년 뒤 두 나라는 상트페테르부르크조약을 통해 사할린을 러시아의 영토로, 쿠릴열도의 섬들을 일본의 영토로 확정했다. 이 과정에 원주민이던 아이누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일본과 러시아는 영토 정책에 따라 이들의 이동을 제한하거나 강제로 이주시켰다. 아이누족은 자신들이 살던 땅을 차지한 국가가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이동하며 살아가야 했다.

 

쿠릴열도는 2차대전 후 승자의 전리품이 됐다. 소련은 1945년 쿠릴열도를 점령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과정에서 일본은 소련에 쿠릴열도를 내주는 대신 자국에 가장 가까운 두 섬(시코탄과 하보마이, 하보마이는 1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지만 편의상 섬으로 칭한다)은 홋카이도의 일부이며 쿠릴열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러·일 영토 분쟁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조약 이후에도 집요하게 시코탄과 하보마이의 반환을 요구하던 일본은 1956년 두 섬을 되찾을 기회를 잡게 된다. 그해 10월 모스크바에서의 만남을 통해 두 국가의 국교 회복을 위한 공동선언이 추진된 것이다. 이 공동선언에서 소련은 일본의 요구에 부응하고 일본의 이익을 고려해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공동선언이 인준된 이후 순항이 예상되던 두 섬의 인도 과정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일본 내각이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을 추진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냉전기간 중 일본과의 협력을 모색하던 소련의 의도에 반하게, 일본은 미·일안전보장조약을 통해 미국과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결국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신조약) 체결 이후 소련은 약속했던 두 섬의 반환을 취소했다.

 

이해관계 따라 오락가락

 

그 후로도 쿠릴열도의 4개 섬은 국제 정치·경제의 향방에 따라 일본으로의 인도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곤 했다. 2001년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홋카이도에 가까운 두 섬을 일본에 반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으로서는 4개 섬을 2개씩 나누어 차례대로 돌려받을 심산이었다. 러시아로서도 영토를 내주는 대신 일본의 자본으로 핵발전소 건설 등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양국의 국내 반발과 정치적 계산에 의해 인도 협정은 지지부진했다. 게다가 극우파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게 “4개 섬 일본 귀속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면서 또다시 영토 분쟁의 해결이 묘연해졌다.

 

러시아는 2007년과 올해 6월 쿠릴열도에서 조업하던 일본 어선을 나포하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일본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이 구나시리섬을 방문하기도 했다. 쿠릴열도를 방문한 것은 러시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이에 맞서 일본 외상이 헬기를 타고 쿠릴열도를 시찰했다. 당시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 외상은 홋카이도 상공에서 망원경을 통해 쿠릴열도의 섬들을 관찰(?)했는데 러시아는 일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러시아의 자연을 즐기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하였다.

 

경제지원·에너지개발 놓고 냉온탕

 

지난해 북방영토반환을 요구하는 일본 우익들의 집회

 

4개 섬을 두고 경제적 지원과 에너지 공동개발 등으로 냉온탕을 오가던 쿠릴열도 분쟁은 최근 몇 년 사이 강경해진 러시아의 태도로 인해 다시 급랭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러시아는 현재 3500여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는 구나시리와 에토로후에 군 주둔지 두 곳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또한 쿠릴열도와 멀지 않은 내륙에 S-400 미사일 방어시스템 연대를 배치했는데 400떨어진 곳에 있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포착해 격추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쿠릴열도의 경제 개발에도 대대적 투자를 하고 있다. 2007년부터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쿠릴제도 사회경제 발전계획을 시행 중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이 지역의 도로와 공항, 항구 건설 및 정비에 310억루블(11000억원)이 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정비가 완료되면 쿠릴열도의 인구가 늘어나 러시아의 실효적 지배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 일본 내각에서 독도와 쿠릴열도를 자국의 고유 영토로 주장한 방위백서를 승인함에 따라 러·일 갈등이 해결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이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한 방위백서를 발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작년 방위백서에선 지도에 쿠릴열도 4개 섬을 일본의 영토로 표시하면서도 자국명칭을 달지는 않았었다. 올해는 한층 태도가 강경해졌다. 방위백서가 발표된 이후 러시아는 태평양함대 전함 2척을 쿠릴열도에 파견하기로 했다. 이 전함들은 825일부터 917일까지 쿠릴열도의 섬들을 돌면서 2차대전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숨진 소련군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물론 방위백서에서 일본이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섬들에도 정박한다.

 

노다 내각 영토외교 시험대

 

러시아는 이제 영토를 교환할 만큼 일본의 자본이 필요하진 않은 눈치다. 에너지자원 공동개발과 경제 협력을 영토와 맞바꾸려던 과거와 다르게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면서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오히려 이 지역의 해저에 묻혀 있는 석유와 금, 황 등의 천연자원에 더 관심이 가는 듯하다. 이 지역의 천연자원과 항구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러시아가 일본에 4개 섬을 반환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11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지지(時事)통신이 81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노다 내각은 19.8%의 지지율을 보였다. 노다의 지지율은 끝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 정권 유지가 어려울 정도다. 최근 불거진 한··러와의 영토 분쟁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다. 지난 815일에는 민주당 각료 2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으면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200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위해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던 것은 민주당의 공약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은 영토문제를 가지고 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언론에서도 노다 내각의 영토문제 해결 능력을 문제시하고 있다. 향후 일본 정국의 극우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이 러시아와의 영토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군함 파견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치적으로 영토문제를 이용하려는 일본의 정치인들과 달라진 러시아의 위상 때문에 쿠릴열도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