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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죄의식 없는 애프터 단카이 세대의 출현 갈등의 서곡이 울렸다

풍월 사선암 2012. 9. 4. 09:54

과거사 죄의식 없는 애프터 단카이 세대의 출현 갈등의 서곡이 울렸다

마쓰시타정경숙 출신 정치인이 바꾼 일본 

 

지난 820일 도쿄 긴자거리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 개선 축하 퍼레이드에 몰린 50만 인파.

 

“(한국에 대한 보복) 대책을 올 재팬(All Japan) 차원에서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 지난 821일 각료회의에서 밝힌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발언이다. 독도와 일왕 사과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노다 총리의 발언 중에 주목할 부분은 올 재팬이란 말이다. 한국 미디어에서는 민관(民官)이라는 식으로 의미를 축소해석했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말에는 민관과 더불어 군()을 포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금 예민하게 받아들이자면, 사이판섬의 반자이클리프(만세절벽), 16살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를 만들어낸 태평양전쟁 당시의 ‘1억 국민 총동원령의 부활이라고 볼 수 있다. 전후(戰後) 일본 외교사를 통틀어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경한 자세이다.

 

곧 닥칠 총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포석, 일왕의 권위를 지키려는 우익을 대변한 목소리,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국민적 불만과 반발을 희석하기 위한 정치쇼. 한국 미디어가 분석하는 올 재팬의 배경이나 원인들이다. 부분적으로 맞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부족한 설명들로 판단된다. 정치가나 극우집단을 넘어서는 뭔가 근본적 변화가 올 재팬의 토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필자가 판단하건대 단카이(團塊)세대의 종언(終焉)’은 이러한 큰 변화 중 하나이다.

 

단카이는 1945년 종전 직후 태어난 사람들로, 한국의 광복세대나 미국의 베이비붐세대에 해당한다. 대략 1946년부터 1954년에 걸쳐 출생한 세대로, 현재 60대 중반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전후 일본은 임신중절을 불법시했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3년간 무려 800만명이 태어났다. 단카이는 양적인 면에서 일본의 허리에 해당하는 세대이다. 이들은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중 보여준 군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알게 된다. 일본교직원조합(日敎組)을 결성해 11(一人一才)를 슬로건으로 내건 유도리(ゆとり)교육과 과거사 반성에 관한 교육을 실행한다. 기미가요()와 일장기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보고 거부한다. 일왕의 존재와 필요성도 부정한다.

 

단카이세대의 종언

 

흥미로운 것은 반미 감정이다.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나라지만, 일본을 패전국으로 만들고 아버지를 패졸(敗卒)로 추락시킨 미국에 대한 반감은 남달랐다. 미국을 과거 일본 군국주의와 비슷한 제국주의의 원흉으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일본의 친구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의 희생자이자 같은 아시아권인 한국과 중국이라고 역설한다. 1970년대부터 일본 지식인 사회의 거의 대부분은 단카이로 채워진다. 일본을 대표하는 리버럴의 상징인 아사히(朝日)신문은 단카이의 구심점에 해당한다.

 

1957년생 노다 총리의 등장은 단카이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이다. 1년에 적어도 100여만명의 단카이가 정년퇴직 등으로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지난해 9월 노다 총리가 등장한다. 노다 총리 휘하의 각료들 대부분도 단카이와 무관하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언론·문화·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단카이의 목소리와 주장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애프터(After) 단카이세대가 공유하는 세계관과 역사관이다. 현재 40대 중반부터 50대에 걸친 애프터 단카이 세대의 핵심은 우연히도마쓰시타(松下)정경숙 출신 정치가들로 집약되고 있다. 1기인 노다 총리를 비롯해 8기인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郎) 외상, 2기인 나가하마 히로유키(長浜博行) 관방부 장관, 집권당인 민주당 정조회장인 8기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3기의 다루토코 신지(樽床伸二) 간사장대행을 비롯해 38명의 현직 국회의원을 거느린 일본 정치 최대의 파벌이 마쓰시타정경숙이다. 시장·지사·지방의원을 포함할 경우 120명에 이르는 현역 정치가가 마쓰시타정경숙 출신이다. 이변이 없는 한 노다 총리를 잇는 총리도 당분간 마쓰시타정경숙 출신자들로 메워질 전망이다.

 

한국에 대한 빚 모두 갚았다

 

필자는 15기 숙생으로 1994년부터 5년간 마쓰시타정경숙 선후배들을 가까이할 기회가 있었다. 정경숙에서의 선후배 관계는 남다르다. 토론이나 대화를 통해 일본의 4050세대가 기존의 단카이와 얼마나 다른지 충분히 체험할 수 있었다. 마쓰시타정경숙 선후배를 통해 본 애프터 단카이의 세계관은 이하 4개로 집약할 수 있다.

 

1. 역사관: 한국과 중국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는 이미 해결됐고, 사과 문제도 더 이상 내세울 것이 없다.

 

2. 미국관: 미국이 세계를 컨트롤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군사동맹국으로 협력해 나간다. 미국의 힘이 약화될 경우 결코 미·일동맹에 매달릴 수만은 없다. 일본 독자의 군사능력이 필요하다.

 

3. 중국관: 중국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중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4. 평화헌법: 필요하다면 자위대를 국군으로 확대하고, 작전 범위도 전 세계로 확산해야 한다. 비핵3원칙 문제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더 이상 과거사로 인해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이며, 사과나 보상으로 대처하지 않겠다는 것이 애프터 단카이의 역사관이다. 이미 끝난 일이고, 출생 전에 벌어진 일이기에 책임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과 중국에 대한 빚이 더 이상 없다라는 세계관이다. 역사 문제를 거론할 경우 외교적 수사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대응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다.

 

50만명의 열기

 

주목할 점은 극우집단들이 주장하는 과거사 찬미, 식민지배 정당화에 관한 애프터 단카이의 입장이다. 이들은 과거 자민당 원로 정치가들이 주장하던 적극적 의미의 역사 왜곡에 나설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국수주의자로서가 아닌 이성적 토론과 물적 증거를 기초로 정면대응하겠다는 것이 애프터 단카이의 자세이다.

 

공교롭게도 노다 총리가 올 재팬방침을 지시할 때 일본인 50여만명이 도쿄(東京)의 긴자(銀座)대로에 몰려들었다.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환영하기 위한 퍼레이드였다. 한국 미디어에도 보도됐듯이 갑자기 마련된 이벤트로, 당초 10만명 정도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 이상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이번 퍼레이드 환영사에서는 그 어떤 올림픽 때보다 많은 메달을 따냈다며 한국보다 앞선 메달 전체 숫자(한국 28, 일본 38)에 무게중심을 뒀다. 한국과 중국에 기죽지 말라, 일본은 한국을 누른 체육강국이라는 메시지다.

 

일본 열도 전체를 깜짝 놀라게 한 50만 인파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공기론(空氣論)이다. 1983년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가 저술한 공기의 연구를 통해 일반화된 일본인 분석틀이다. 특별한 주의 주장이나 지도자 없이도 집단 속에 흐르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행동이나 역학관계가 공기론의 실체이다. 카리스마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공감대를 통해 개개인이 집단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행동화한다는 것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에 따르면 만주침략이나 미국과의 전쟁도 공기론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영어로 ‘KY’로 통칭되는 공기론은 다테마에(建前)’혼내(本音)’로 이분화된 일본인의 복잡한 캐릭터를 집단적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분석틀이라 볼 수 있다.

 

긴자거리에 50만명이 몰린 것은 바로 공기론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그렇다면 올림픽 퍼레이드라는 이벤트로 몰아세운 공기는 과연 무엇일까?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올림픽 유치 노력에 대한 지지가 공기의 주범은 아닐 것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버블경제 붕괴 이후 추락한 국민적 자신감, 반일로 무장한 대국 중국의 부상,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치닫는 인구구조, 종신고용제 붕괴와 청년실업 증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요인들이 50만 인파를 만들어낸 공기의 실체라고 볼 수 있다. 뿔뿔이 흩어진 개인형 사회를, 하나로 뭉쳐진 집단형 사회로 변신시켜 주는 공기가 마침내일본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개인이 아닌 집단차원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일본 특유의 아이덴티티가 메달리스트 퍼레이드를 통해 재등장한 것이다. 노다 총리의 올 재팬은 바로 이 같은 공기 속에서 탄생한 극단적 처방이다.

 

60년 주기로 집단 히스테리

 

50만 인파와 노다 총리의 올 재팬발상은 일본 역사를 통해 나타난 특유의 사회현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60년 주기 일본국민 발광설(發狂說)’이다. 일본인은 60년을 주기로 집단 히스테리에 빠진다는 속설이다. 고이즈미(小泉) 총리의 극장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반()고이즈미 세력이 주장한 것으로, 보통 일본에서는 에에자나이카(ええじゃないか)’라는 말로 연결돼 설명된다. ‘에에자나이카그거 아주 좋지 않은가?”라는 의미이다. 18677월부터 10개월간 계속된 에에자나이카현상은 ‘60년 주기 일본국민 발광설을 설명하는 대표적 예이다. 이는 에도(江戸)막부 말기이자 메이지(明治)유신이 단행되기 직전, 일본 전역에서 유행한 집단 히스테리를 가리킨다. 어느날 갑자기 일본 전역이 춤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로 뒤덮인다. 이들은 하늘에서 몸과 마음을 지켜줄 수호신(부적)이 내려온다.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말끝마다 에에자나이카라는 후렴구를 붙여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일본 전역은 하늘이 내리는 부적을 받기 위해 일왕의 신사인 이세신궁(伊勢神宮)’을 향하는 순례 열풍에 빠진다. 불과 7개월 동안 모두 450만명이 순례에 나섰다고 한다. 당시 3000만명 선이던 인구의 15%가 춤과 더불어 에에자나이카라는 노래를 열창하면서 미에(三重) 현 일왕의 신사로 몰려들었다.

 

60년 주기 일본국민 발광설은 이른바 오카게마이리(陰笱)’라 불리는 이세신궁 순례로 직결된다. 누가 앞장서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략 60년을 주기로 일왕 신사에 대한 전국적 순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617, 1650, 1705, 1771, 1830년에 대대적인 순례가 이뤄졌다. 1830년에는 2500만 인구의 20%500만이 3개월에 걸쳐 몰려들어 이세신궁 주변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집단 히스테리로서의 순례는 20세기로 들어와 절대신천황에 대한 맹신으로 진화한다. 만주침략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면서 1억 총동원령이 명문화된다. 과거의 역사를 근거로 할 때 21세기 초반은 일본 국민이 집단 히스테리에 빠질 시기라고 볼 수 있다. 50만 인파가 도쿄 한복판에 일시에 쏟아진 것이 오카게마이리의 21세기 버전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의 추억

 

올 재팬’ ‘공기론’ ‘60년 주기 발광설로 특징지어지는 일본의 오늘은 최후 결전을 외치던 태평양전쟁 당시 상황의 재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당시와 전혀 다른 변수가 하나 있다. 군사동맹국인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유지이다. 중국과 한국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질수록 미국과의 관계를 한층 중시한다. 지난 84일 워싱턴을 방문한 방위성 장관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의 행적을 보면 일본의 미국에 대한 남다른 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모리모토 장관의 워싱턴 방문 목적은 수직이착륙 수송헬리콥터인 ‘MV-22오스프레이반입을 위한 것이었다. MV-22 오스프레이는 미 해병대 감축에 따른 전력보강무기이다.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비행기지에 배치될, 일반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장점을 합친 수송기이다. 문제는 MV-22 오스프레이가 잦은 사고로 안전성에 의문이 간다는 점에 있다.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MV-22 오스프레이 배치에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모리모토 장관은 오키나와 주민의 반발을 의식해 MV-22 오스프레이에 직접 시승해 안전성을 증명해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는 마치 MV-22 오스프레이 세일즈맨처럼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오키나와 주민의 불안감을 풀어주기보다 미 해병대의 요구에 발 맞추는 데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확고한 미·일 군사동맹을 통해 한국·중국과의 갈등과 이견을 극복하겠다는 의도가 확연히 느껴지는 행보였다.

 

독도와 일왕 사과 문제에서 촉발된 한·일 양국 간의 긴장은 앞으로 시작될 또 다른 갈등의 서곡에 불과하다. 애프터 단카이의 강경노선과 공기론에 기초한 일본인의 집단 히스테리는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19세기식 전쟁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명분과 역사에 주목하는 20세기 외교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군사력, 경제력, 논리, 외교력을 총동원한 21세기 스타일의 전방위 외교가 절실히 요구된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2221호]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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