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쿨~하게 일본 다루기

풍월 사선암 2012. 9. 12. 23:27

~하게 일본 다루기

 

재일 언론인 유재순이 말하는 일본인 다루기

흥분하면 진다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건 한국인의 냉정

유재순 JP뉴스 대표

 

최근 연일 대한(對韓)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본 지도자들. 왼쪽부터 노다 요시히코 총리,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 겐바 고이치로 외무장관.  

 

지난 8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시작된 일본 정부와의 갈등은 이제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독도 영토문제,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부인, 일왕의 선()사과 후()방문 등 최근에 벌어진 양국 간의 첨예한 대립 요소다. 특히 일본은 작심한 듯, 정부 차원에서 내각까지 동원해 역사적 사실을 빙자한 한국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왜 한·일 양국이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됐을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단히 민감한 한·일군사정보협정까지 맺을 관계였던 양국이, 왜 하루아침에 적국 아닌 적국이 되어 서로 으르렁거리게 됐을까.

 

물론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 정부가 갈등 요소의 진위에 관계없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형국이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본인들은 웬만해서는 자신의 감정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가령 발이 밟혔다 해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왜 밟았어?”라는 항의가 아니라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이라는 사과의 말이다. 당신에게 내 발을 밟히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후환이 두려워 먼저 스미마센하고 사과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의식문화가 복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온가에시(恩返)’라고 해서, 자기가 한 번이라도 신세를 졌거나 큰 은혜를 입었으면 어떤 형태로든 그 은혜에 답한다. 이것은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의무와도 상통한다. 가령 내가 어떤 이에게 선물을 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예의가 없는 사람,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며, 지인의 리스트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일본인은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받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선물을 상대방에게 보낸다.

 

바꾸어 말하면, 한번 자신에게 행해진 것에 대한 보답은 반드시 한다는 것이다. 복수도 마찬가지다. 내가 발이 밟혀 항의를 하면, 물론 그 앞에서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후가 두려운 것이다. 일본인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복수를 해오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이 먼저 사과를 하고 그 후환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복수의 문화, 기록의 문화

 

최근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야기된 일본 정부와의 전면전도 마찬가지다. 사실 독도는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자국 내에서도 가장 예민한 일왕(천황)을 건드렸다. 그것도 먼저 초청한 한국이 일본의 절대자에게 시비를 건 꼴(아사히신문 보도)이 됐다. 바로 여기서 일본 정부가 폭발했다.

 

일본인에게는 당연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일왕(천황)제도가 바로 그렇다.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을 가리켜 왕이 아닌 하늘의 신, 천황(天皇)이라고 부른다. 물론 일부 일본인들은 이 제도를 반대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일왕에 대해 비판을 할 때는 상황은 180도 확 달라진다. 외국인이 일왕에 대해 비판을 하는 그 순간부터 보수우익과 입장이 같아진다. 바로 현 노다 요시히코 정부가 그렇다. 애당초 민주당은 진보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실제로 일부 정치인 중에는 일왕제도를 반대하는 등 국수적 정책을 가지고 있는 자민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평소 우익 성향의 자민당이 한국을 향해 주장하던 그 내용들을 그대로 민주당의 노다 정권이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아킬레스건인 바로 일왕(천황)’을 이 대통령이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때

 

실례로 일본에서 가장 진보적인 언론으로 알려진 아사히신문이 간이 사설인 덴세이진고(天聲人語)’를 통해 폭주’ ‘제정신이 아닌 사양길의 위정자’ ‘이제 반년이면 사라질 몸이라는 등의 상당히 거친 언어로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또한 일왕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사히신문이 이처럼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나온 적은 일찍이 없었다. 독도문제만 해도 드러내놓고 한국 영토라고 말은 못 했지만, 논조는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일왕문제에 이르자 그만 아사히신문도 이성을 잃고만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들 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인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일본에서 20년 이상 살면서,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인을 만나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한국인들의 특징은 일본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아는데, 정작 일본인에 대해서는 너무 피상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인과 비즈니스 혹은 인간관계를 가질 때 자주 낭패를 보기도 한다.

 

일본은 기록 문화다. 사람을 만나도, 사건 사고가 터져도 일본인들은 분초를 나누어 메모를 하고 기록한다. 기록안에는 대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기록을 하는 데 있어 철두철미하다. 반면 우리는 ()의 문화라고 해서 대단히 감정적이다. 이 점에 대해 일본인들은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낸다.

 

실례로 역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어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일본인들이 반응하는 것은 ? 했잖아이다. 일본인의 주장은 이렇다. 과거 전두환 정권 때, 히로히토 일왕이 과거 식민통치 역사에 대해 유감이란 말로 간접적인 사과를 했고, 또한 1998년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 그것에 대한 깊은 슬픔은 항상 본인의 슬픔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과거 역사를 시인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다음과 같은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한국 국민에 대한 식민지배로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

 

진심 어린 반성 기록으로 남겨야

 

더 이상 어떻게 사과를 하라는 말이냐가 일본인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말이다. 그 당시 일본 정부와 일왕의 사과를 받고 앞으로 잘해보자고 손을 내밀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또 사과를 요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사과를 요구하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의 주장대로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중요시하는 기록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라는 말은 과거에 그런 사과를 했다는 확인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사과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을 재확인시켜 주면 된다.

 

하지만 반성은 다르다. 사과는 얼마든지 수십 번이라도 말로 할 수 있지만, ‘반성은 의식의 문제다. 바로 일본인의 혼네(本音·진심)’가 되는 것이다. 반성도 말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우리가 유도를 해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이,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유족협회와 일본 시민단체들의 일제강점기 시절의 강제연행, 강제징용, 학도병,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손해배상 소송들이다. 일본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같은 소송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MB 발언 더 정중했어야

 

강제 연행, 징용돼 끌려갔다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재판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 야노씨는 물론 패소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잘 압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증언이나 자료들은 그대로 공적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사자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하나라도 채증하고 기록하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나마 우리 일본이 행했던 과거 역사에 대한 진실이 그대로 묻혀버립니다. 왜냐하면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과거에 행한 만행을 절대로 공개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말로 사과를 외칠 게 아니라 혹여 나중에라도 일본 정부가 반론을 할 수 없도록 그 증거를 채집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 나와 있는 증거도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디엔가 묻혀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많다. 그것은 식민지 시절을 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있을 수도 있고, 야노씨의 말대로 일본 정부가 꼭꼭 숨겨둔 자료일 수도 있다. 바로 우리는 이것을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우리는 너무 감정만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들의 강한 논리에는 너무 약하다. 의식 있는 일본 시민단체 멤버들이 늘 투덜대는 말이 있다. “한국인들은 항상 입으로만 애국한다. 실제로 그들은 재판 자료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올 때마다 인력 부족, 자금 부족, 협력 부족을 겪으며 늘 시달린다. 그 많던 애국자들은 온데간데없고, 대부분 시간 없다는 핑계로 비협조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떤 이슈가 터지면 또 제일 먼저 앞장서서 큰소리로 일본에 사과하라고 외친다는 것.

 

분명 한국의 국력은 커졌는데, 일본을 대하는 의식 수준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신흥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는 저자세이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늘 고자세로 나온다. 얼마 전에도 독도문제로 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그 내용을 먼저 언론에 흘리는 무례함을 저질렀다. 반면 중국에는 똑같은 성격의 서한을 보내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외교적 관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 외교적 관례를 한국 정부에는 지키지 않았다.

 

문제는 이 같은 외교적 무례를 우리가 유도했다는 것이다. 일왕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 내용이 좀 더 정중했어야 했다. 일본과 단절을 각오하지 않을 바에야 구태여 아무 이득도 없는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정치력이 필요하고 외교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진짜 애국하는 방법은

 

일본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한국인이 감정적이 되지 않고 냉정해지는 것이다. 일본인이 한국 정부를 비롯, 한국인을 무시해 온 것은 매번 한국인들이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레퍼토리도 늘 똑같았다.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라는 것. 그럴 때마다 일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 시작됐구나.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지겠지. 그때 그때 정권이 끝나면 이슈도 금방 사그라질 것이고, 자연히 한국인들의 흥분도 가라앉을 것이다라고 치부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다행히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워낙 이 대통령의 발언이 타이밍이 안 좋아서인지 의외로 차분하다. 이 같은 기조를 우리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 흥분해 있는 것은 바로 일본 쪽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 단계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방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정 우선해야 할 것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논리적 재무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정연하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과거 역사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가장 시급하다. 말로 애국하는 것보다도 냉정함과 논리적 재무장이야말로 바로 일본이 도망치려고 하는 과거 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