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제록스' 베꼈던 잡스가 남긴 한마디
제록스 GUI 기술 베낀 잡스, 빌 게이츠에 "(훔쳤지만) 너무 똑같게 만들진마"
IT 업계의 기술 진화와 관련 '모방'과 '창조'의 과정은 그 어느 기업도 피해갈 수 없는 여정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이미 나와 있는 일반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조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적자생존'의 치열함과 그 과정에서의 기술쟁탈전을 표현한 말이다.
1999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공개된 마틴 버크의 텔레비전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에서나 지난해 잡스 사망 후 출간된 타임지 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기술 절도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 운영체제(OS) 맥의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훔쳐갔다'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당시 사장에게 격노하는 장면이 있다.
전기에 따르면 빌 게이츠를 애플 본사로 부른 잡스는 "당신을 믿었는데, 이제 우리 걸 도둑질하다니!"라고 분개했다. 하지만 기술을 훔쳐갔다는 빌 게이츠는 위축되지 않고 의외로 차분하게 반응했다.게이츠는 "글쎄, 스티브. 이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그 집에 침입했다가 당신이 이미 훔쳐갔단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지"라고 답했다.
애플이 제록스의 GUI 기술을 훔쳐 모방했고, 그 훔친 기술을 다시 마이크로소프트가 훔친 게 뭐가 문제냐는 게이츠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잡스는 게이츠에게 "좋아.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거랑 너무 똑같이 만들진 마"라고 했다고 전기는 전한다. 제록스의 GUI는 획기적인 기술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것으로 이를 훔쳐서 성공한 기업이 애플과 MS다.
'모서리가 약간 둥근 직사각형인 화면'이라는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청난(?) 창의력의 산물에 비하면 별 것 아닌(?) 제록스의 GUI를 베꼈다는 잡스의 고백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배심원들은 삼성이 수천억의 기술 개발비를 들여 만든 통신특허는 '껌 값'의 보상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고,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은 엄청난 창의력의 산물이라고 판단해 전세계 '직사각형'의 소유자를 애플로 만들어버린 이번 판결은 힘의 논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애플의 이 같은 형태를 제록스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입력 : 201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