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이 되려 하오 (出家削髮)
선비 김효성(金孝誠)은 많은 첩을 두었는데
부인은 질투가 매우 심한 편이었다.
하루는 김효성이 외출했다 돌아오니,
부인이 검정 색으로 곱게 물들인
모시를 한 필 준비해 놓고
대청마루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아니 여보,
왜 이러고 있소?
무슨 일이 있었소?"
김효성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부인 곁으로 가서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부인은 엄숙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보, 당신이 여러 첩에만 빠져
아내를 전혀 돌아보지 않으니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지금 머리를 깎고 저 검정 모시로
승복을 지어 입은 다음에 절을 찾아 떠날 테니,
당신은 첩들과 행복하게 잘사시오."
이와 같은 아내의 불평을 들은 김효성은 깜짝 놀라면서,
"여보! 나는 본래 여색을 좋아하여,
지금까지 기생들과 의녀(醫女),
그리고 양갓집 처자와 미천한 신분의 여자들,
여종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부류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면서 놀아 보았소.
하지만 아직까지 검정 모시옷 입은
고운 여자 스님의 벗은 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한스러워하고 있었소.
그래서 여승의 몸을 껴안고
잠자리를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늘 마침 당신이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된다고 하니,
내 이제 소원을 풀 기회가 왔는가보오.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하며 웃고는
부인의 팔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남편의 이 천연스러운 행동에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준비했던 검정 모시를 마당으로 집어던져 버리고는
힘없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김효성(1585∼1665)은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행원(行源)이다. 1613년(광해군 5)에 생원(生員)이 되고, 1615년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정조, 윤인, 이위경 등이 인목대비를 해치려고 하자 이를 탄핵하다가 길주에 유배, 이어 진도에 이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발탁, 상경 도중 청안현감(淸安懸監)으로 피임, 후에 청주 목사까지 지냈다. 강직한 성품으로 선정을 베풀어, 청빈한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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