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유모어

방랑시인 김삿갓(金笠)의 해학 詩

풍월 사선암 2011. 11. 2. 08:08

방랑시인 김삿갓(金笠)의 해학

 

-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

 

조선 순조 11(1811)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OO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순조 32),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

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본명은 김병연(18071863, 향년 56) 조선 25대 철종 때의 방랑시인. 본은 안동.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삿갓에 죽장을 짚고 조선 팔도를 방랑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개탄, 조롱하는 시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뛰어난 시편들이 수없이 많지만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소개합니다.

 

1. 금강산 입구의 한 절에서,

 

김삿갓의 거지 행색에 박대를 하는 그 절의 못된 늙은 중과, 같이 있던 선비를 놓고 읊은 시

 

僧首團團汗馬 (승수단단마랑) 둥글둥글한 중 놈의 머리는 땀 찬 말 OO 같고

儒頭尖尖坐拘腎 (유두첨첨좌구신) 뾰족뾰족한(관을 쓴 모습) 선비 놈 대가리는 앉은 개 OO 같아라.

 

2. 함경도 통천에서,

 

한 서당 훈장과 하룻밤 유숙을 걸어 놓고 읊은 시.

 

그는 일부러 김삿갓을 골탕 먹이려고 벽자인 찾을 멱()자를 운자로 골라서 불렀단다.

許多韻字何呼覓 (허다운자하호멱) 허구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자를 부르는가?

 

훈장이 또다시 을 운자로 부르자

彼覓有難況此覓 (피멱유난황차멱) 아까 멱자도 어려웠는데 이번 또한 멱자란 말인가?

 

함에도 훈장은 또 멱자를 부르는 것이었다

一夜宿寢縣於覓 (일야숙침현어멱) 하룻밤 묵는 일이 이 멱자에 달렸구나.

 

훈장이 부른 마지막 운자 역시 멱이었다.

山村訓長但知覓 (산촌훈장단지멱) 이 산골 훈장 놈은 멱자밖에 모르나보다.

 

산골훈장은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김삿갓의 詩才에 놀라 그를 깍듯이 대접해 보냈다고 합니다.

 

3. 강원도 원산 근처의 한 서당에서,

 

선생은 없고 못된 학동놈들이 김삿갓의 초라한 몰골을 보고는 비렁뱅이가 아니냐고 놀려대는 것이라.

 

이에 忿心이 일어 써 갈겨 놓고 떠났다는 시.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서당은 이에 내가 일찍이 알았는데

방안에는 잘난척 하는 놈들만 있네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생도는 모두 열명도 안 되는데

선생은 와 코빼기도 안 비치네

 

이는 아주 고약한 욕설로서 이를 발음대로 풀면 다음과 같이 된다.

 

서당은 내 좆이고 방안은 개 좆물 같다.

생도는 제미십이고 선생은 내 불알이다.

 

4. 훈장을 훈계하다 (訓戒訓長)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면서 김삿갓을 보자 또한 그를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5. 파격시 (破格詩)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이래)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합니다.

천장에 거미()/ 화로에 겻()불 내 /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6. 함경도 북청에서-,

 

내노라 하고 살면서도 인색하기 짝이 없는 정풍헌(鄭風憲)의 신축 瓦家 당호를 써준 이야기.

 

"貴樂堂 귀락당"

글자 뜻대로 새기면 귀하고 즐거운 집이란 뜻인데, 거꾸로 읽으면 당락귀가 되어 흔히 하는 말로 당나귀 정씨를 놀려 먹는 당호가 되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정풍헌은 노발대발했다가 글씨가 워낙 명필인데다 당호를 새로 쓰자면 돈푼께나 또 들여야 하는 게 아까워 그대로 걸어두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

 

7. 함경도 단천에서.

 

글 잘 한다고 소문 난 당시 20세의 노처녀 가련(可憐)과의 첫날 밤,

그 첫 방사(房事) 후에 썼다는 시 한 수.

 

毛深內闊 (모심내활)  必過他人 (필과타인)

(陰毛) 아늑하고 속이 휑한 걸 보니 필시 누군가 지나간 자취로다.

 

* 이에 글 잘하는 그 가련이 그 자리에서 쓴 답시.

 

後園黃栗不蜂折 (후원황류는 불봉절하고)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는 불우장이라)

 

뒷동산 누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절로 벌어지고

시냇가 수양버들은 비 없이도 절로 크지 않느뇨?

 

그러니까 "OO을 모르면 가만이나 있어라, 이 양반아!" 아마 이런 말뜻이 될 듯----.

여기서 밤송이는 남성, 수양버들은 여성을 상징 함.

(아래의 글을 보면 가련이 기생의 딸이었음을 알수 있다.)

 

8. 기생 가련에게(可憐妓詩 가련기시 )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9. 이별 (離別)

 

가련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쓴 시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10. 스무나무 아래 (二十樹下 이십수하)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이 시를 풀이하면,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二十樹 : 스무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이름

三十客 : 三十'서른'이니 '서러운'의 뜻.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 : 四十'마흔'이니 '망할'의 뜻. 망할 놈의 집.

五十食 : 五十''이니 '(상한)'의 뜻. 쉰 밥.

七十事 : 七十'일흔'이니 '이런'의 뜻. 이런 일.

三十食 : 三十'서른'이니 '(未熟)'의 뜻. 설익은 밥.

 

<김삿갓의 친필>

 

11.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12. 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過安樂見. 과안락견오)

 

安樂城中欲暮天 關西孺子聳詩肩 (안락성중욕모천 관서유자용시견)

村風厭客遲炊飯 店俗慣人但索錢 (촌풍염객지취반 점속관인단색전)

虛腹曳雷頻有響 破窓透冷更無穿 (허복예뢰빈유향 파창투냉갱무천)

朝來一吸江山氣 試向人間穀仙 (조래일흡강산기 시향인간벽곡선)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가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벽곡은 신선이 되기 위해 곡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는 방법.

*안락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13. 즉흥적으로 읊다(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14. 훈장 (訓長 훈장)

 

김삿갓은 방랑 도중 훈장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 있다.

 

世上誰云訓長好 無烟心火自然生 (세상수운훈장호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왈천왈지청춘거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暫離易得是非聲 (수성난문칭도현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刑是眞情 (장중보옥천금자 청촉달형시진정)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15. 산골 훈장을 놀리다 (嘲山村學長 조산촌학장)

 

山村學長太多威 高着塵冠揷唾排 (산촌학장태다위 고착진관삽타배)

大讀天皇高弟子 尊稱風憲好明주 (대독천황고제자 존칭풍헌호명주)

每逢兀字憑衰眼 輒到巡杯籍白鬚 (매봉올자빙쇠안 첩도순배적백수)

一飯堂生色語 今年過客盡楊州 (일반횡당생색어 금년과객진양주)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16. 환갑 잔치 (還甲宴 환갑연)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彼坐老人不似人 (피좌노인불사인) 疑是天上降眞仙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기중칠자개위도) 偸得碧桃獻壽筵 (투득벽도헌수연)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17. 원생원(元生員 원생원)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 묘과서진사)

黃昏蚊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 야출조석사)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

음을 빌려 쓴 것이다.

 

18. 공씨네 집에서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구멍 공()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19. 허언시 (虛言詩 허언시)

 

靑山影裡鹿抱卵 白雲江邊蟹打尾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夕陽歸僧三尺 樓上織女一斗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낭일두)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OO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OO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 으로 표현했다.

 

20. 구월산가

 

去年九月過九月 지난 해에도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하고

今年九月過九月 올해도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하니

年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한다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 경치가 언제나 구월이로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哀愁(애수)가 녹아있는 이 감상적인 詩情(시정)구태여 몇 번이고 의식적으로 되풀이 쓰인 숫자 때문에 담담한 觀照(관조)로 승화되어 있다. 이처럼 비개성적인 숫자의 사용은 해학적인 효과를 얻은 표현상의 기교에 끝나지 않고 無限(무한)有限(유한)에 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제의식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으로 뒷받침되어 서정적인 詠嘆(영탄)이 밝은 達觀(달관)시세계에로 까지 끌어올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영원한 햇수, 즉 무한집합에 있어서는 1, 2, 3, 4.....라고 셈하는 것, 무한으로 흘러가는 세월 속에 해학 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무한과 유한에 대한 어떤 철학적인 성찰이 울분에 찬 이 詩句(시구) 속에 담긴 것 같습니다.

 

公子님 왈 ~

自知慢知, 補知早知!(스스로 알려면 늦게 깨우치고, 남이 도와주면 빨리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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