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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근의 붓글씨 이야기 - 이태백과 술 삼백잔

풍월 사선암 2010. 10. 29. 12:28

 

유희근의 붓글씨 이야기 - 이태백과 술 삼백잔

 

이태백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궁궐에서 환관 고력사의 신발을 벗겨 던져버렸다. 고력사가 누구인가? 황제 옆에서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최고 실력자다.

 

당나라 때는 환관들이 황제를 마음대로 갈아치웠다. 환관이지만 최고의 실력자인 고력사의 신발을 던지다니... 이태백은 평소 환관인 고력사를 미워했다. 환관 주제에 황제의 총애를 믿고 천하를 주물럭거리면서 너무 날뛰는 고력사를 골탕 먹이려고 신발을 벗어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태백은 결국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장안에서 추방당해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귀양살이했다. 술은 적당히 마셔야지 너무 마셔서 일생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 태백을 詩聖이라 부르고, 두보를 詩仙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唐나라 때, 같은 시대 사람이다. 나이는 두보가 이 태백보다 열한 살 아래지만 서로 친했다. 두보는 이태백을 이렇게 평했다. “그 사람은 술 한말 마시는 동안에 시를 백편 짓는다”

 

천재시인 이태백은 역시 시 짓기를 좋아하는 당 황제 현종의 총애를 받았고, 황제는 잔치를 베풀 때마다 이태백을 불러 시를 짓게 했다.

 

두보의 다음 얘기를 들으면 그가 얼마나 호탕한 사람인가 알게 된다. 두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태백은 이러했다. “장안거리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천자가 부르면 배에 올라 스스로 칭하기를, 나는 酒中의 神仙이라” 그의 시 가운데는 “술을 많이 마시면서 살자”는 시가 많다. 그 중에서도 술 마시기를 請하는 “將進酒”라는 시는 너무도 유명하다.

 

*여기서는 권장한다는 獎자를 쓰지 않고 請한다는 뜻의 將이라는 글자를 쓴다(오해하지 않기 바람)

 

“하늘에서 쏟아지는 황하의 물도, 폭포처럼 흘러서 바다에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네.

출세해서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살다가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백발이 된 걸 슬퍼하네.

아침엔 푸른 실처럼 까맣던 머리가 저녁에는 백설이 되었네. 자 마시자 마셔.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삼백 잔은 마셔야지.”

 

黃河之水 天上來이나, 奔流到海 不復廻라.

高堂明鏡 悲白髮이요 朝如靑絲 暮如雪이로다.

會須一飮 三百杯라.

 

60을 넘은 나이에 꼭 알맞은 시라고 본다. 백발을 슬퍼하고 주름살에 놀라는 나이에 이것보다 더 적절한 시가 어디 있겠는가?

 

이 태백의 “장진주”는 열 폭 병풍에 깨알 같은 글씨로 잔뜩 써야 하는 大長篇 명작이다.

위에 사진으로 보인 작품의 한문 글자를 읽어보기 바란다.

 

다음의 글을 읽기 전에 여러분의 한자 실력을 테스트 해보시라.

 

맨 첫 번째 글자는 통쾌하다의 痛, 두 번째는 마실 飮, 세 번째는 즐거울 樂,

네 번째는 노래할 歌, 다섯 번째는 넉 四, 여섯 번째는 열 十, 마지막 글자는 가을 秋

이렇게 해서 “痛飮樂歌 四十秋”다.

 

뜻을 보자면 “통쾌하게 마시고 즐겁게 노래 부르며 살아 온 인생 40년” 이라는 뜻이다.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써 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각 글자에서 특히 비백을 많이 살렸다. 붓을 갈라지게 하면서 하얀 가루가 나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썼는데, 이렇게 하면 글씨가 한층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무척 어려운 기법이다. 초서의 기법 중에 어려운 것 또 한 가지는 붓을 떼지 않고 한 번에 이어서 써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 선보인 일곱 개의 글자 모두, 한 글자 쓸 때마다 붓을 떼지 않고 각각 한 번에 써 내려갔다.

 

특히 넉 四자의 경우 본래는 왼쪽을 내려 긋고 나서,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가운데 두 줄을 내려 긋고, 마지막으로 맨 아래 한 一자를 그으면서 끝내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그러나 초서에서는 가운데 두 개의 획을 먼저 내려 그은 다음, 이어서 한꺼번에 외곽의 획을 휘둘러서 힘 있게 마무리한다.

 

열 十자의 경우 사람이 통쾌하게 마시고 즐겁게 노래 부르며 두 팔을 벌려 춤추는 형상이다. 단순하게 획을 이어간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매듭이 오른쪽으로 그어 간 획에서 다섯 개, 위아래로 내려 간 획에서 다섯 개, 이렇게 열 개의 매듭이 보일 것이다. 이것은 열 十자를 생각해서 열 개의 매듭을 만들어 가면서 획을 써내려 간 것이다. 결국 한 매듭이 일 년을 가리키며 이 열 十자에서 十年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막 가을 秋자는 본래 벼 禾변에 불 火자를 쓴다. 그러나 초서에서는 이 순서를 바꿔서 秌 이렇게 쓰기도 한다. 그러면 글자가 어딘지 모르게 예술적으로 보인다.

 

왜 뒷부분의 40秋가 40年이 되는가?

 

여러분은 연세가 많은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 볼 때 “몇 살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보통 “올해 春秋가 어떻게 되십니까?” 이렇게 젊잖게 묻는다. 그래서 붓글씨에서는 이 가운데 秋자를, 나이를 말하는 햇수 즉 年으로 사용한다.

 

위의 작품은 대기업체에서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한 뒤 성실하게 살고 있는 모 인사에게 증정했다.

 

“욕심 내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이 태백처럼 통쾌하게 마시고 즐겁게 노래 부르며 살아가라는 뜻”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