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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근의 붓글씨 이야기 - 당태종과 왕희지

풍월 사선암 2010. 10. 29. 12:06

 

유희근의 붓글씨 이야기 - 당태종과 왕희지

 

여러분은 손오공과 현장법사가 나오는 “西遊記”를 잘 알 것이다. 소설속의 현장법사는 당나라 삼장법사인데 비범한 천재여서, 당시의 황제인 당태종의 총애를 받았었다.

 

그는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오라는 당태종의 명을 받들어 30살에 30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인도로 떠났다. 그러나 고비사막과 돈황의 서역 만리 험난한 흙모래 산악지대를 거치는 동안 제자들을 모두 잃었다.

 

삼장법사는 장장 17년에 걸친 고난의 천축기행을 마치고, 수백 권의 불경을 가지고 돌아와 불경 번역 사업에 몰두했다. 삼장법사의 이러한 기나긴 고통과 고난의 여정을 재미있게 소설로 만든 것이,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다. 삼장법사는 수백 권의 불경번역 사업을 마치고 나서 서문을 쓰게 됐는데, 당 태종은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삼장법사의 이 책 서문을 모두 다 왕희지의 글씨로 편집하라”

 

당태종은 왕희지가 쓴 난정서 진본을 죽을 때 관에 넣어가져 갔을 정도로 왕희지를 흠모했던 사람이다. 그는 황제로 있으면서도 왕희지의 글씨를 수만 번 연습해서, 왕희지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부처님의 성스러운(聖) 가르침(敎)을 왕희지의 글자로 모아서(集字) 엮은 서문(序)” 이라고 해서 “集字聖敎序”라고 했다.

 

韓. 中. 日 - 동양 3국에서는 붓글씨를 배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위에 설명한 왕희지의 “集字聖敎序”라고 하는 책이다. 한문 5체 중에서 행서를 배울 때 필수과목이다. 수십 번 써 봐야 하는 책이다.

 

붓글씨를 하면 자연히 韓中日 삼국의 인사들과 교류하게 된다. 중국과 일본을 방문할 때, 기관장이나 사회저명인사에게 붓글씨 작품을 선사하면, 대단히 좋아하면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갖고 간 작품에 대한 설명도 하고, 과거 왕희지를 비롯한 손과정, 구양순, 안진경 같은 서예대가들에 대한 얘기도 한다. 또 이태백과 두보, 소동파, 도연명 같은 시인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관계가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참고로 알아 둘 것은 중국에서는 붓글씨를 書法이라 부르고, 일본은 書道라 부르고, 우리는 주로 書藝라 부른다.

 

붓글씨의 원조는 당연히 중국일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붓글씨를 써 내려온 중국에서는 수많은 명필과 학자들에 의해서 붓글씨에 관한 학문과 이론을 확립해 왔다.

 

중국에서는 붓글씨의 근본이 되는 원칙을 세우는데 주력해 왔고, 이 원칙은 마땅히 지켜야 할 법으로 간주해서 書法이라고 부른다. 중국 작가들의 80퍼센트는 草書로 작품을 쓴다.

 

오늘날 붓글씨가 가장 왕성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방문하는 곳마다 방문록 기재를 위해서, 반드시 붓과 먹을 준비하거나, 먹물이 나오는 붓을 준비시켜 놓는다. 일본은 운동 이름을 검도, 유도, 궁도, 차 마시는 것을 다도....이런 식으로 道라는 글자를 붙이기 좋아한다. 그래서 붓글씨도 書道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붓글씨를, 점과 획과 선을 연결한 예술에 더 무게를 두었다. “글자를 매개로 해서 하얀 종이의 여백을 활용하는 공간예술로서의 의미” 를 더욱 높이 평가했다. 여기에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창조적 예술성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붓글씨를 書藝라 부른다. 참고로 알아둘 일이다.

 

맨 위에 소개한 작품 사진은 “文章節義가 震耀宇宙라” -

“당신의 뛰어난 문장과 곧은 절개와 굳센 의리가 천하를 진동하고 빛나게 하라”는 내용의 글이다.

 

언론인에게 딱 맞는 내용이다. 위 작품은 모 언론단체에서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300쪽 짜리 책의 기념 휘호로 인쇄된 바 있다. 이 작품은 모 일간지에서 중견언론인으로 활약한 뒤, 현재 스포츠 전문지를 발간하는 사업가로 성공한 P씨의 사무실 전면에 걸려 있다.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P씨는 이 작품을 보면서 항상 이렇게 다짐한다고 한다.

 

“震耀宇宙라” - 그렇지, 내가 천하를 무대로 내 명성을 떨칠 날이 올 것이다.

 

그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서예 작품을 쓰는 意義와 喜悅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