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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기행편⑧ 대학로 학림다방

풍월 사선암 2010. 8. 3. 20:21

지금도 동숭동에는

역사문화기행편⑧ 대학로 학림다방

 

기쁜 우리 젊은 날, 피끓는 학생들과 열혈 예술인들의 추억의 아지트

 

삐걱삐걱, 세월의 흐느낌 같은 나무계단의 울림을 따라 오르면, 잊고 지내던 시간들이 되살아난다. 가슴 터질 듯한 열망과 섣부른 치기로 가득 찼던 변혁의 시절, 그 시절 학림을 찾아들던 70·80세대들에게 이십대는 분명 상흔의 시간이었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 젊음을 불사를 용기도, 그렇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낼 배짱도 없어 머뭇거리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1973년 : 동숭동 개나리꽃 소주병에 꽂고 우리의 緯度 위로 봄이 후딱 지나간 것을 추도하다. 가정교사 때려치우다.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다. 여자를 만났다 헤어지고, 그때 홍표, 성복이, 석희, 도연이, 정환이, 철이, 형준이, 성인이와 놀다. 그들과 함께, 스메타나, '몰다우江' 쏟아지는 學林다방, 木계단에 오줌을 갈기거나, 지나가는 버스 세워놓고 욕지거리, 감자먹이기 등 發狂을 한다. 發精期, 그 긴 여름이 가다.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고, 어디선가 바람이 다가오는 듯, 예감이 공기를 인 마로니에, 은행나무 숲 위로 새들이 먼저 아우성치며 파닥거리다. 그때 생을 어떤 사건, 어떤 우연, 어떤 소음에 떠맡기다. 그 활엽수 아래로 生이, 그 개 같은 生이, 최루탄과 화염병이 강림하던 순간, 그 계절의 城 떠나다. 친구들 '아침 이슬' '애국가' 부르며 차에 올라타다. 황금빛 잎들이 마저 평지에 지다. - 황지우 시 <활엽수림에서> 중 일부

 

젊은이들과 젊음의 열병을 함께 앓던 학림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56년 동숭동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열었다. 이후 학림다방은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 불리기도 하고, 문리대의 축제가 '학림제(學林祭)'로 불리웠을 정도로 서울대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4.19 학생 혁명, 5.16 그리고 그 후 수많은 학생 운동 등 고난과 희열로 점철된 대학로의 역사를 지키는 지킴이가 되어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의 토론 장소이자, 음악, 미술, 연극, 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던 학림.

 

이제는 모든 이들의 필수품이 된 휴대폰 등의 첨단통신기기가 발달하기 이전, 별다른 약속없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들던 장소들 중 대표적인 공간이 '학림', ‘세실’, ‘독다방’, ‘밀다원’, ‘오감도’ 등 음악다방이다. 그러므로 학림은 비단 이곳만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학림처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갈망들이 한숨 섞인 이야기로 넘쳐나던 공간들은 전국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무상함 앞에 학림과 궤를 같이하던 덕수궁 옆 세실, 신촌의 독다방, 샘터사에 자리했던 난다랑(밀다원), 대학로의 명소 오감도 등 또 다른 학림들은 정체불명의 다국적 커피전문점으로 바뀌거나 사라져버리고 이제 학림만이 쓸쓸히 남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그 흔치 않은 존재감이 새삼 사무치게 고맙다.

 

'스타벅스', ‘자바’ 등 테이크아웃 커피숍에 익숙해진 요즘, 학림 같은 추억의 공간이 더욱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학림은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기에 너무 벅차거나, 그 속도에 가려져 가슴 가득 쌓여가던 그리움의 무게를 인지하게 된 이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한숨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제대로 불사르지 못한 젊은 날의 열망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한 줌 회한으로 접어두고 잠시 눈 한번 질끈 감았을 뿐인데……. 그들은 어느덧 아이들 사교육비, 부모님 병원비, 장례비를 걱정하는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고, 의연하게 우리 곁을 지키던 학림은 삶의 무게에 가려 어느덧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져갔다.

 

그러나 학림에의 기억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인가. 낡은 목조계단을 따라 추억의 다락방에 들어서자, 낡은 전축, 수백 장의 LP판, 그리고 베토벤의 흉상까지 곳곳에 어린 추억들은 이십여 년 가까운 시간의 벽을 사뿐히 거슬러 옛 시간들을 샅샅이 불러 모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수필가 전혜린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 이 곳에 들러 지상에서의 마지막 커피 향을 음미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소설가 김승옥, 고 이청준, 시인 황지우, 천상병, 김지하, 가수 김민기, 작곡가 김영동, 미술평론가 유홍준 등의 흔적들까지 기억의 편린들을 불러 모으는 데 힘을 보탠다. 어디 이뿐인가. 오디오가 귀하던 시절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얹고 바늘의 지지직 긁힘 소리를 알림으로 시작되던 클래식 음악까지 추억 모으기에 가세한다. 시인 김정환은 하루 종일 여기에 죽치고 앉아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만 들어 별명이 ‘황태자’가 되었다지 않는가.

 

또한 이곳은 공간이 안겨주는 향수에 기대어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대학로 큰길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테이블은 영화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명소다. 배우 고 이은주와 이병헌이 주연한 ‘번지 점프를 하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 등에도 종종 등장하던 창가 테이블에 앉아 추억과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센티멘털에 젖어들 때쯤, 감상에 빠진 옆 좌석의 4·50대들을 보며 학림에서 추억을 되새기는 이들이 자신만이 아님에 위안을 받는다.

 

추억의 공간, 사라지면 되돌리기 어려워

 

세계의 이름난 도시들에는 대개 그 도시를 대표하는 카페가 있다. 계약결혼으로 유명했던 사상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글을 쓰며 토론했다던 프랑스 파리의 카페 플로르, 작가 괴테가 단골이었다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 화가 클림트가 애인 플뢰게를 만나곤 했던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첸트랄, 작가 밀란 쿤데라가 찾던 체코 프라하의 카페 슬라비아 등은 모두 100년이 넘어 현대인의 안목으로 보자면 낡고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에 힘입어 그 자체로 문화유적이 되어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모으는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낡고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일단 부수고 보는 우리에게 유서 깊은 공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개발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유산들이 쉽게 허물어지고 금세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세태에 의해, 샘터사옥에 있던 난다랑(밀다원)과, 독특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오감도에 이어, 최근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성공회 마당 앞의 세실레스토랑까지 문을 닫고 학림만이 외로운 섬이 되어 남았다. 그리고 1956년 학림이 문을 열 당시의 흔적이라고는 이제 마로니에 공원 귀퉁이의 서울대 문리대 본관 건물과 길 건너편 의대 건물만이 남아 있다. 그 시절 서울대 전경은 빛바랜 흑백사진이 되어 학림 벽면 한쪽에 걸려 있다. 서울시의 실개천 복원 사업이 한창인 대학로현장에서 실개천은 복원할 수 있어도 사라져버린 시간의 유산들은 되살릴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문화지킴이로서의 학림은 옛것 위에 새로운 역사를 덧씌워가며 대학로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클래식 음악다방으로서의 명맥을 잇기 위한 테마음악감상회를 개최하고, 학림 홈페이지를 통해 신세대들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며, ‘커피브랜드 학림’으로의 변모를 꾀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추억이 현재가 되는 곳, 학림다방. 가을 어느 볕좋은 오후에 책 한 권 손에 들고 그곳에 가볼 일이다.

 

학림다방

가는길 : 혜화역 3번 출구 혜화동로터리 방향 40~50m 직진, 약국 2층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4가 94-2 (마로니에공원 맞은편)

안내 : ☎ 02) 742-2877, http://hakrim.pe.kr/

 

구 서울대 문리대 본관

혜화역 1번 출구 마로니에공원과 방송통신대학교 사이

 

낙산공원· 서울성곽

혜화역 1번 출구 마로니에공원 옆길 표지판을 따라 15분 가량 오르면 낙산공원, 그 뒷길의 서울성곽까지 산책해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