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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기행편⑥ 정릉, 태강릉, 의릉

풍월 사선암 2010. 8. 3. 19:55

조선 왕조의 또 다른 궁궐들

역사문화기행편⑥ 정릉, 태강릉, 의릉

 

'죽은' 왕을 모시고 있지만 '살아있는 공간',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다시 조명되다

 

조선 현종 10년, 태조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이 주인 없는 무덤으로 방치된 지 260년 만에 다시 왕비의 능으로서의 기품을 되찾던 날, 그 일대에는 많은 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 숙적이기도 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쌓인 태조비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주는 비라 여겨 세원지우(洗寃之雨)라 불렀다.

 

기자가 정릉을 찾은 날에도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 사이로 ‘정릉’ 표지판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는데, 비는 쉬이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복잡한 시장통과 좁은 골목길도 쉽사리 정릉의 자태를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과연 이런 깊숙한 곳에 왕릉이 있는 것일까? 혹시 길을 잃은 것일까? 갖은 의구심이 커지는 가운데 드디어 저 멀리 정릉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그 비는 혹시 높아져만 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에 둘러싸여 홀로 고립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흘린 신덕왕후의 눈물이었을까? 흐르던 눈물을 닦고 고요한 침묵을 내뱉던 정릉은 어느새 비춰드는 따스한 햇살에 안개를 거두고 고색창연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600여 년의 시간을 이어온 숲과 영혼의 오묘한 조화가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무쌍함을 자랑하는 서울 도심에 자리한 조선왕릉은 전체 42기 중 8기.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시된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약 40km) 안에 두어야 한다'는 입지조건에 따라 서울 도성 바깥에 위치하던 왕릉은 현대에 들어 서울시의 영역이 점차 넓어짐에 따라 그 중 8기가 도시 안에 편입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연적’으로 타고난 배산임수 지형에 터를 잡고 조성된 왕릉은 겹겹이 둘러 쌓인 숲으로 보호를 받는, 죽은 왕을 위한 ‘또 하나의 궁궐’로서 소중히 관리되어 왔다. 그 덕택에 600여 년의 세월에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 왕조 무덤의 완벽한 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 속에 파묻힌 왕릉은 건물과 도로에 능역을 일부 내어주고 한층 축소된 형태로 남아 고립되어 있다. 정릉(貞陵) 또한 우후죽순 생겨나는 주택가에 가려져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인식되지 않는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기자가 찾았던 또 다른 왕릉인 의릉(懿陵)과 태릉(泰陵)·강릉(康陵)은 왕릉이 아예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다. 제20대 왕인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은 1962년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건물이 건립되면서 능역이 크게 훼손된 바 있다. 국가의 중요한 정보기관이란 이유로 일반인들에게는 비공개 상태였던 의릉은, 정자각 바로 앞에 연못이 조성되고 축구장, 테니스장이 들어섰으며, 기관 건물이 풍수지리에서 중요시 여겨지는 ‘우백호’ 산맥에 건립되어 왕릉의 진정성을 빼앗긴 상태였다. 다행히 왕릉에 대한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1995년에 국가정보원 건물이 이전되었으며, 기초발굴조사를 통해 의릉 능제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본래 왕릉의 모습으로 되찾아가고 있다. 태릉과 강릉 또한 마찬가지다. 근처에 태릉선수촌을 비롯, 육군사관학교를 포함한 몇몇 대학들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어 ‘죽은 왕’이 모셔진 경건한 숲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렇게 현대의 삶에 치여 고립되어 있었던 조선왕릉이 이제는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는 값진 유산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지난 6월 27일, 조선왕릉이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등재 이유에 대해 관장 기관인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조선왕릉이 조선 특유의 장묘 문화와 유교적·풍수지리적 전통을 지닌 조경양식과 건축물, 그리고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제례 의식 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정릉 해설을 맡고 있는 자원봉사자 이경환 씨도 “비록 ‘죽은 왕’을 모시고 있는 공간이지만, 아직도 이 곳에서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왕릉은 ‘살아있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건축물만 남아있을 뿐 제사와 같은 전통은 없어지지 않았는가”라며 왕릉의 문화재적 가치를 칭송했다. 손녀와 함께 정릉을 찾은 시민 박차순(82) 씨는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참솔나무 등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들과 꽃이 많이 자라 산책하기에 너무 좋다”면서 “도시 안에 이렇게 깨끗한 숲이 숨어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며 조선왕릉의 녹지 공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빛바랜 왕릉의 찬란한 영광을 되살리기 위하여

 

그러나 조선왕릉이 진정한 세계유산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하다. 유네스코는 왕릉의 일부 훼손된 능역을 원형 복원하고 도시 개발에 의한 훼손 방지를 위한 지침을 마련할 것, 그리고 왕릉 관광 계획 및 안내 시설을 마련할 것 등을 함께 권고했다. 이에 따라 각 능에서는 조선왕릉의 발전적 보존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의릉관리소의 김흥년 소장은 “의릉의 경우, 2013년까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사용하고 있는 옛 국정원 건물을 철거하고, 사라진 재실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이행되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현재 태릉도 태릉선수촌 이전 등의 방안이 논의되어 일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시설이나 주택가를 철거·이전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된다는 비판과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김흥년 소장은 “물론 완전한 능역 복원은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죽은 왕의 백(시신)이 모셔지는 왕릉은 왕이 태어나는 궁궐, 죽은 왕의 혼이 모셔지는 종묘와 더불어 왕의 일대기를 보존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그러므로 그 역사성을 갖추는 데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봐야 한다”며 이러한 비난 여론을 지적했다.

 

조선왕릉의 관광적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노력도 적지 않다. 태릉에는 현재 조선왕릉과 관련한 각종 유물과 사진들을 전시하기 위한 건물을 건설 중에 있으며, 의릉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왕릉 아카데미 교실’을 열어 왕릉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곧 6호선 돌곶이역에서 왕릉 사진전도 개최할 계획이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하여 비교적 숲 보존이 잘 이루어진 정릉(貞陵)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해 생태 체험 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왕릉에 대한 친근감을 더해 주기 위해 ‘궁궐-종묘-왕릉’으로 구성된 관광 코스 마련도 논의 중에 있다. 의릉의 김흥년 소장은 “창덕궁, 종묘에 이어 왕릉까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만큼 이들을 스토리와 함께 엮어 코스로 개발할 뿐만 아니라, 중간에 약령시장과 같은 지역 문화 탐방과도 연계하면 왕릉 주변의 지역 경제도 함께 개선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왕릉의 활용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조선왕릉이 더욱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흥년 소장은 “시민들은 왕릉 자체의 역사성보다는 왕릉 주위의 녹지공간에 더 관심이 많다. 도심 속에서 이러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면서도 한편, “다른 공원들과 달리 이곳은 경건한 분위기가 유지되어야 할 공간인 만큼 왕릉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왕릉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왕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앞서 보호적 측면에서 갖추어야 할 시민의식과 이를 위한 역사적 관심과 공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세계 유산 등재 이후로 왕릉을 많이 찾아준 점은 참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왕릉이 받는 많은 관심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의릉을 방문했던 날, 왕릉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관리소의 허락을 얻어 능상이 위치한 언덕 위를 올라갔다. 혹시 카메라의 찰칵 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나 능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를 경종과 선의왕후의 혼을 기리어 잠시 고개를 숙이고서 뒤를 돌아보니, 예전에는 연못이었다가 다시 복원된 정자각 앞 푸른 잔디밭이 한 눈에 들어왔고 한 남자아이가 잠자리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위 하늘에 줄지어 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의 모습도 보였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 앞에서 경종과 선의왕후의 혼은 혼유석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칫 함부로 능역을 침범하면 목이 날아갔었던 왕조 시대를 지나, 누구든 들어와 조상들이 물려준 훌륭한 숲을 마음껏 즐기는 백성들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아마 왕도 현대인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있지는 않을까? 고층 건물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아 외로웠던 왕의 역사가 세계 위로 떠오른 지금, 빛바랬던 왕릉의 가치를 다시 빛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역시 우리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조선왕릉 정보 및 관람 안내

http://royaltombs.cha.go.kr/ (문화재청 조선왕릉 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