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MBC사우회

<雜記> 아직도 끝나지 않은 피난생활

풍월 사선암 2010. 7. 16. 09:41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를 택했던 피난민들

 

내가 겪은 6.25 전쟁은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악몽으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그 전쟁으로 인해 나의 삶이 반전되어 전화위복 되었으니.....

우리 피난민들이 모이면 " 우린 김일성이 덕택에 이렇게 잘살아." 한다.

北에 그냥 있었으면 이곳 南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가질 수 없었음을 내비친 말이다.

 

나의 경우도 피난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훌륭한 학교 (고려대) 좋은 직장 (MBC) 복된 가정 을 꾸릴수 있었겠어.

 

6.25가 터진 것은 내가 北에서 (黃海道 殷栗郡 一道面 ) 인민학교 5학년에 다닐 때 옅다.

학교가 동네에서 꽤 먼 거리에 있어 자갈길 신작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가서 개울을 건너야

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보리 밭'의 작곡가 尹龍河도 공부했던 곳이다.

 

그때 학교 갈 때나 집으로 올 때 인민군들이 신작로 양 옆으로 열을 지어 따발총을 메고

남쪽으로 걸어가는 게 우리들에겐 구경거리 옅다.

그게 바로 남침을 위한 행군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6.25 남침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감행되었다.

그 다음날 학교엘 가니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여 놓고 조선인민군이

남조선을 해방시려 남으로 진격 했다는 것이었다.

 

전쟁 중에도 학교는 갔다.

공부는 안 시키고 전황 (戰況)만 알려 주는데 인민군이 점령한 곳을

빨강색으로 칠해 놓고는 남조선은 곧 해방 된다고 했다.

南韓은 밑에 조금만 하얗고 몽땅 빨강색으로 표식 되어 있었다.

 

학교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인민군의 승전보를 알려주며

그들은 좋아라 했지만 우린 그게 아니었다.

우린 공산당이 제일 싫어하는 예수쟁이에다 땅마지기나 붙여먹는 地主 반동분자로

몰리어 있었기 때문에서였다.

할아버지는 희생되셨고, 아버지는 아오지감옥에 투옥되어 순교 하셨다.

 

戰況으로 인한 절망의 기간이 몇 개월 지났을까

난데없이 하늘에 처음 보는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날라 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난생 처음 보는 코크고 노랑대가리 군인들이 동네에 들어 닥치는 것이었다.

그것이 UN군의 북진이었다.

 

기세등등하던 빨갱이들은 어디론가 깜족같이 사라지고 새 세상이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몇 개월 지나 중국 팔로군의 개입으로 UN군과 국군이 후퇴하기 시작 했다.

그것이 1.4후퇴이다. 다시 공산치하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을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처음에는 대동강 하류 곰섬(能島)로 갔다.

그 섬에는 썰물 때 걸어서 갈 수 가 있었다.

그러나 인민군의 박격포 공격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주로 밤에 공격을 해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시체들이 피 범벅이 되어 피비린내가 진동했었다.

 

피난민들을 박격포 공격을 피해 육지에서 좀 떨어진 석도, 초도로 가야했다.

지금은 북한군의 요새로 알려지고 있다

배편이 부족한 그 때 정원초과로 배가 전복되어 많은 피난민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나

 누구도 원망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하도 피난민들이 몰려와 먹을 곡식도 모자라고 물도, 땔감도 없는 피난 생활

그것은 지옥이었다.

추위와 배고픔과 비바람 피할 집 없는 피난생활은 안 껶은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도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자유를 느낄 수 있어 불평불만은 하질 않는 것이었다.

빵보다 자유를 실감 할 수 있었다.

 

섬에서 피난생황을 하며 다시 고향으로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휴전이 임박해지자 미군 LST가 섬에 있던 피난민들을 몽땅 싣고 남으로 왔다.

 

감격의 남한 땅을 밟은 것은 1952념 7월 15일이었다.

모두가 '이젠 살았다." 하며 환호성을 쳤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었다.

 

그리고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향엘 가지 못하는 피난민들이 이 나라엔 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피난민은 이 땅에서 몽땅 없어진다.

천당에 가야 만 그들을 만날 수 있다.

 

6.25전쟁이 3 년간 있었던 나라

같은 핏줄끼리 싸웠던 나라

아직도 고향에 못간 피난민들이 있는 나라

이렇게 잔인한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수치스러운 나라 코리아여!

 

허나 오늘새벽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가 있었다.

피난 오지 않은 북녘사람들이 어떻게 이 기쁨을 맛볼 수 있겠어......

 

대~한민국 만세다.

 

- BelLee님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