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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내4산(內四山: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

풍월 사선암 2009. 5. 31. 12:46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에서 서울의 조산인 삼각산(뒤 좌측으로부터 향로봉 비봉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 앞중앙 사자능선, 앞우측 형제봉)

 

서울의 내4산(內四山:북악산,인왕산,낙산,남산)

 

서울산의 지세(地勢)


백두대간상의 함경도 철령(鐵嶺)에서 나온 한북정맥이 남쪽으로 가다 양주(楊州)에 와서 자잘한 산으로 되었다가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돌면서 솟아나 도봉산(道峰山)의 만장봉(萬丈峰)이 되었다. 여기에서 동남방을 향해 가면서 끊어진듯 하다가 다시 우뚝 솟아 삼각산의 백운대(白雲臺)가 되었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서 만경대(萬景臺)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한가지는 서남쪽으로 뻗어갔고, 또 한가지는 남쪽으로 뻗어서 백악산(白岳山 북악산)이 되었다.


백악산(북악산)은 형세(形勢)가 하늘을 꿰뚫는 목성(木星)의 형국(形局)으로 궁성(宮城)의 주산(主山)이라고 한다.


서울은 원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이었는데, 백제가 취하여 370년(백제 13대 근초고왕 25)에 이곳 한산(漢山 서울)으로 수도를 옮기었고, 474년(백제 21대 개로왕20)에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다시 취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552년(신라 24대 진흥왕13)에 신라가 획득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라 하였다.


신라와 고려때에도 현재의 수도 서울은 북한산주,한양군,양주등의 이름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태조는 새로운 국도(國都)로 현재의 서울을 택하고 태조3년(1394)에 개성에서 천도하였다.


천도당시의 서울은 도성안을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으로 백악산(342m), 동쪽에 낙산(125m), 남쪽에 목멱산(265m), 서쪽에 인왕산(338m)의 이른바 내4산(內四山)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이다.


이 산들을 연결하는 능선에 따라 서울의 옛성곽이 축조되었다. 산능선에서 좀 낮아진 안부(鞍部)에 사대문을 만들어 외부와의 교통로로 하였다.


국도풍수(國都風水)의 입장에서 서울의 산수를 보면 진산(鎭山)으로서의 삼각산(서울의 조산祖山 할아버지산)과 조산(朝山)으로서의 관악산(조공朝貢 하는산)과 사신사산(백악산,낙산,목멱산,인왕산)으로 본다.


조산(祖山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에서 주산(主山)인 백악산(북악산)에 연결되며 낙산(타락산)이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서산)이 우백호(右白虎)에 해당되고, 목멱산(남산)은 안산(案山)에 해당한다.


서울분지는 크게 안쪽4개산과 바깥쪽4개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내사산(안쪽4개)은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북현무 주산), 동쪽의 낙산(타락산 좌청룡), 남쪽의 목면산(남산 남주작 안산) 서쪽의 인왕산(서산 우백호)을 일컫는다.


내사산은 천도당시의 서울로 광화문 비각을 중심으로 반경 약 2㎞ 이내의 지역으로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약 500만평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외사산(바깥쪽4개)은 북쪽의 고양시와 경계에 삼각산(북한산836m) 동쪽의 구리시와 경계에 용마산(348m 아차산), 남쪽의 과천시,안양시와 경계에 관악산(629m), 서쪽의 고양시,김포시와 경계에 덕양산(125m 행주산성)을 말한다.


외사산은 오늘의 서울로 광화문 비각을 중심으로 반경 약 8㎞ 이내의 지역으로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약 627㎢의 넓은 지역을 말한다.

(출처 서울시청)


 

북쪽의 백악산(白岳山) 북악산(北岳山),주산(主山),북현무(北玄武)

서울의 북쪽 경복궁의 주산(主山)을 이루는 산. 해발고도 342m. 구성암석은 화강암이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장벽의 구실을 하며, 옛 서울 북방의 성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조선 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정도전(鄭道傳)은 성저(城底)를 측정하여 이를 97구로 나누고, 각구마다 천자문(千字文)의 글자로 번호를 붙였다. 북악산의 정상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일주하면서 천(天)·지(地)·현(玄)·황(黃)의 차례로 글자를 붙여나가다  95번째 글자인 조(弔)자에 이르러 북악산에 도달하도록 하였다. 이 산은 노송이 울창한 경승지로서 탐승객이 많았으나 청와대가 있어 일반인의 등산이 금지되었었다. 서쪽 인왕산(仁王山)과의 안부(鞍部)에 자하문(紫霞門)이 있다. 

○높이 342m

○위치 종로구

○특징 화강암산. 북한산의 남쪽지맥의 한봉우리다

○볼거리 북악팔각정

○주변명소 창의문(자하문), 삼청공원, 경복궁

O대중교통 : 지하철/버스  / 전철 4호선 한성대역7번-삼선중교-북악산길 / 3호선 경복궁역3번-자하문4거리-북악산길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서산, 우백호(右白虎)

서울특별시 종로구(鍾路區) 사직동(社稷洞)·누상동(樓上洞)·옥인동(玉仁洞)과 서대문구(西大門區) 현저동(峴底洞)·홍제동(弘濟洞) 사이에 있는 산. 해발고도 338m. 산 전체가 화강암인 바위산으로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산능선을 따라 서울의 성곽이 지나고 있으며 동쪽 산허리에는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나 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 명산으로 숭앙되어 북악을 주산으로, 남산은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용호(左右龍虎)로 삼아 궁궐을 축조하였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답다.

○높이 338m

○위치 서대문구    

○특징 화강암산, 특이한 형태의 암석과 암벽이 웅대하다,

○유래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 하다가 세종때부터 인왕산(仁王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 한다. 또는 인왕사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볼거리 선바위. 치마바위

○주변명소 사직공원, 창의문, 북악스카이웨이, 경복궁

○대중교통 : 지하철/버스  / 전철 3호선 경복궁역1번-사직공원 / 3호선 독립문역2번-인왕사 / 3호선 무악재역1번-범바위

 

동쪽의 낙산(駱山) 낙타산, 타락산, 좌청룡(左靑龍), 낙산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鍾路區)의 이화동(梨花洞)·동숭동(東崇洞)·창신동(昌信洞), 동대문구(東大門區)의 신설동(新設洞), 성북구(城北區)의 보문동(普門洞)·삼선동(三仙洞)에 걸쳐 있는 산. 산 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으므로 낙타산, 또는 타락산(駝駱山)이라고도 한다. 조선 명종 때의 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으로 낙산, 서로 안현(鞍峴)을 가리키며, <반드시 붕당(朋黨)이 생길 것인데, 낙(賂)이란 각마(各馬)이니 동을 주장하는 당은 각기 나눠질 것이요, 안(鞍)은 혁안(革安)이니 서를 주장하는 당은 혁명한 후에 안정되리라> 하였는데,과연 동인(東人)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서인(西人)은 인조반정 후에 안정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높이 125m

○위치 종로구, 성북구

○특징 화강암이 노출해 있는 주위의 네산 중 가장 낮은 산이다

○볼거리 서울성곽

○주변명소 동대문(보물 1호), 서울성곽(사적 10호), 비우당(庇雨堂), 이화장(梨花莊:서울기념물 6호), 마로니에공원,

○대중교통 : 지하철/버스 / 전철  4호선혜화역2번-마로니에공원 / 1,4호선동대문역1번-낙산정 

 

남쪽의 목멱산(木覓山) 남산(南山), 남주작(南朱雀), 남산공원

서울특별시 중구(中區)와 용산구(龍山區)의 경계에 위치한 산. 높이 262m.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쪽의 북악산(北岳山),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王山)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 등으로 불렸다.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봄과 가을에 초제(醮祭)를 지내던 국사당(國祀堂)과,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또 남산 주변에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도성(都城)의 성곽 일부가 남아 있다.

 

남산에는 원래 소나무가 울창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많이 베어내고 일본 아카시아를 심어 경관을 해쳤고, 광복 뒤 무질서한 개발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었으나 근래에 와서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보호되면서 차츰 훌륭한 경관을 이뤄가고 있다. 남산의 동·서·북쪽의 사면 일대에는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이 설치되어 서울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남산이 처음 시민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910년으로, 당시 공원표지로 세웠던 <漢陽公園>이라는 고종(高宗)의 친필 비석이 지금도 국토통일원 청사 옆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 산정에는 <서울타워>라 불리는 방송탑과 팔각정이 있고,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산의 서쪽 사면에는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기념관과 동상, 백범광장(白凡廣場)과 김구(金九)의 동상, 남산도서관·교육과학연구원·식물원, 이황(李滉)·황희(黃喜)·정약용(丁若鏞)의 동상이 있고, 소월시비(素月詩碑)도 있다.


북쪽 사면에는 임진왜란 때 왜장이 주둔했던 곳이라는 왜성대(倭城臺) 자리에 국토통일원이 있으며, 숭의여자고등학교ㆍ숭의여자전문대학·리라국민학교 등이 있다. 동쪽 사면에는 동국대학교·국립극장·반공연맹·이북5도청 등과 장충단공원이 있다.


장충단공원은 조선시대에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자리로서, 고종 때 장충단(奬忠壇)을 세운 뒤로 그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이곳에는 청계천 복개 당시 옮겨온 수표교(水標橋)가 놓여 있으며, 부근에는 리틀야구장·테니스코트·수영장 등이 있어 공원과 함께 시민들의 운동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높이 262m

○위치 중구, 용산구

○특징 경관이 수려하다

○볼거리 서울타워, 분수광장, 남산케이불카, 안중근의사 기념관

○주변명소 장충단공원, 남산골한옥마을(3,4호선충무로역3번출구)

○대중교통 : 지하철/버스 / 전철 4호선회현역4번-분수광장 / 3호선동대입구역 6번-장충단공원 

                                      / 3,4호선충무로역3번출구-한옥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