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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빌딩 숲 속 성곽을 찾아라 / 서울성곽 - 남동쪽 구간

풍월 사선암 2009. 5. 31. 13:40

현대식 빌딩 숲 속 성곽을 찾아라

서울성곽 - 남동쪽 구간

 

숭례문에서 남산, 국립극장 거쳐 장충체육관까지 1구간 6km

장충체육관에서 광희문, 흥인지문 거쳐 혜화문까지 2구간 5.5km

 

» 신당2동에서 장충체육관 부근으로 이어진 성곽. 커다란 성돌을 밑에 쌓고 위로 작은 성돌을 촘촘히 쌓은 모습에서 세종 때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곽 위 여장 부분은 최근 복원한 것이다.

사진 오른쪽에 숙종 때 쌓은 성돌도 보인다.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성곽 순환로가 온전히 뚫린 것은 2007년이다. 1968년 간첩침투 사건 이후 북악산과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왔다. 1993년 인왕산이 먼저 일반에 개방됐고, 참여정부 때 북악산 숙정문~창의문 구간의 성곽길이 열리며 비로소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걷기여행이 가능해졌다. 최근 녹색연합은 정상 정복형 산행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서울성곽 순환 탐방로를 찾아내 <서울성곽 순례길>이라는 소책자를 펴냈다. 이 책자가 제시한 기본 코스를 바탕으로 18.2㎞ 성곽길을 네 구간으로 나눠 나흘에 걸쳐 걸었다.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와 서울시 문화재관리팀 김용수 주임이 각각 일부 코스 순례길을 안내했다.


첫날. 1구간(숭례문~남산~국립극장~장충체육관)


서울성곽길은 아름답고도 슬픈 길이다. 숭례문①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성곽길 걷기는, 안타까움으로 시작해 쓰라림으로 끝날 것이다. 사라진 숭례문. 가림막 안에선 복원공사와 발굴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숭례문 옆 선혜청 터② 표지석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선혜청은 대동미와 포전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던 관아다. 1608년(선조41년)부터 1894년(고종31년)까지 있었다.


숭례문 앞으로 길 건너 남산육교 쪽으로 오른다. 1961년 놓인 남산육교 건너, 에스케이빌딩 앞에서 옛 성벽의 흔적을 일부 만날 수 있다. 이후 길 건너 무수한 계단을 밟아올라 남산 중턱에 이를 때까지 성벽은 사라진다. 백범 광장 지나 계단길 따라 안중근 의사 기념관③ 앞에서 한숨을 돌린다. 거대한 돌들에 새겨진 안 의사 글씨들 옆에 2010년 개관을 목표로 새 기념관 공사가 진행중이다. 다시 돌계단을 올라 숲길이 시작된 뒤에야 계단길 석축의 오른쪽 사면이 성곽이란 걸 알아채게 된다. 내려다보면 검은 성돌들이 박힌 성벽이 아까시나무 숲 사이로 뻗어 있다.


성곽 남동쪽은 경상도, 남서쪽은 전라도 사람들이 쌓아


케이블카 종점을 지나면 봉수대④·팔각정⑤과 남산 엔타워⑥가 있는 남산(목멱산·인경산) 꼭대기다. 팔각정 앞엔 국사당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태조는 한양 천도 뒤 이곳에 목멱산신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를 올렸다. 일제가 이곳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은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봉수대에선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1시~12시30분 봉화 의식을 거행한다. 봉수란 횃불과 연기를 뜻한다. 낮엔 연기를 피우고 밤엔 불을 피워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순환버스 정류장 지나 녹음 우거진 찻길을 걸어내려간다. 남산 남쪽 순환로다. 길 오른쪽 축대가 성곽이다. 길이 성곽을 끊는 지점에서야 성곽의 면모가 드러난다. 세종때 쌓은 성벽이다. 이제 성곽은 산으로 올라가고, 길은 남산 고유소나무 탐방로⑦(매주 목요일 오후 개방) 쪽으로 이어진다. 소나무들이 아름드리는 아니어도 숲은 울창해 솔숲 내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국립극장⑧ 지나 자유총연맹 정문으로 들어간다.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엔 세종 때 세웠다가 폐쇄된 남소문 터⑨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옆의 타워호텔 부지에서도 최근 성곽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나 공사중이어서 확인할 수 없다. 자유총연맹 축대 일부도 옛 성돌로 이뤄졌다.

  

» 서울성곽길 2구간 장충아트빌라 옆 골목에 남아 있는 성곽.

 

동대문에선 성곽 발굴조사 현장 구경도


뒤쪽 산길을 오르면 남동쪽 코스 중 가장 뚜렷한 서울성곽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장을 따라 걷다 성곽이 끝나는 곳에서 성 바깥으로 나가 성벽을 따라 내려간다. 이끼 끼고 총탄 맞은 각양각색의 성돌들이 볼수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굽이쳐 흘러내린 성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땅에 조명시설을 설치해 밤 11시까지 성벽을 밝힌다. 세종 때와 숙종 때 축성된 성돌들이 뚜렷이 구분된다. ‘시면’(始面·할당된 공사 시작 지점)이나 지역명 등이 새겨진 각자석도 자주 눈에 띈다. 서울성곽의 남동쪽은 주로 경상 지역 주민들이, 남서쪽은 전라 지역 주민들이 쌓았다고 한다.


암문⑩ 부근 슈퍼에서 생수를 사 갈증을 풀고 땀을 씻었다. 암문은 주민들이 이용하던 비공식 출입구다. 함께 걷다가 휴대용 물병을 꺼내 마시던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가 말했다. “조선 오백년 역사가 스민 이 아름다운 성곽을 두고 아직도 도시미관용 장식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서울성곽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많고요.”


신라호텔 옆을 지나 장충체육관이 바라다보이는 큰길에서 성벽은 끊긴다. 여기까지 약 6㎞, 4시간 남짓 걸었다.


둘쨋날. 2구간(장충체육관 뒤 지에스25 편의점에서 광희문~동대문디자인파크(공사중·옛 동대문운동장)~흥인지문~낙산공원~혜화문)


88식당 앞에서 언덕 위 신당동천주교회 쪽으로 오른다. 이제 성곽은 끊기고 그 흔적만이 주택가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장충아트빌라 옆 골목과 성방빌딩 맞은편 왼쪽 골목에 축대로 사용되는 성곽 흔적들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성돌을 보면 축조 시기는 대충 짐작이 간다. 노 간사가 성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세종 때 방식으로 보이네요. 저쪽 건 좀 숙종스럽죠?”


장충퍼시픽빌라 골목길을 돌아 내려와 길 건너 계단길(장수길)을 오른다. 오른쪽에 광희문⑪으로 내려가는 ‘수구문길’ 표지가 보인다. 수구문(시구문)이란 광희문의 별칭이다. 서소문(소의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을 가리킨다. 광희문은 길 가운데 있던 것을 현위치로 옮겼다. 한양공고 쪽으로 길 건너 서울메트로 동대문 별관 옆으로 간다. 별관 뒤 동대문운동장역 2번 출구에 작은 쉼터가 있다. 역 안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⑫에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 운동장 땅 밑에서 서울성곽 터가 발견됐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다. 공사장 가림막을 따라 돌면 투명유리를 통해 발굴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80여년 전 일제가 흥인지문~광희문을 잇는 성곽을 허물고 동궁 결혼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을 만든 것이 동대문운동장의 시초다. 발굴 뒤 성곽 일부도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패션몰·쇼핑센터 즐비한 거리를 지나 포장집촌 거쳐 흥인지문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청계천 물길 위엔 오간수교⑬가 걸려 있다. 옛날 이곳 성곽 안쪽엔 물이 고이는 곳이어서 성벽에 홍예로 된 다섯개의 물구멍을 냈다고 한다. 다리 옆 물가에 이를 본뜬 다섯개 홍예수문을 만들어 놓았다. 흥인지문⑭ 앞엔 1907년 헐린 오간수문 터임을 알리는 표석을 설치했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을 보고 동대문역 6번 출구로 들어가 1번 출구로 나온다. 여기부터 성곽길이 다시 열린다. 이대병원 옆이다. 낙산지역 문화유산 해설 안내판 옆 위쪽 성벽에서 각자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찻길에 있던 혜화문 산 밑으로 옮겨 지어


성 밖으로 이어진 골목길은 곧 나무들 우거진 산책로로 이어진다. 정자와 성터교회 지나 암문을 만나 성 안으로 들어간다. 길 왼쪽은 다닥다닥 붙은 옛 주택가들이 이어진다. 이화동 산동네다. 일본식 가옥을 닮은 이층집도 자주 눈에 띈다. 화장실·낙산체육회 지나면 성곽이 길로 끊기고 길은 왼쪽 낙산공원⑮으로 든다. 광장 옆 암문 밖, 한성대 서쪽 지역은 택지 조성 공사중이다. 성 안쪽 길로 걸어내려가 나무계단으로 골목길로 들면 로봇박물관 거쳐 혜화역 앞으로 나서게 된다. 혜화동 네거리 오른쪽으로 길건너 잠시 걸으면 혜화문(16)이다. 4소문 중 동소문인데, 본디 찻길 가운데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다. 약 5.5㎞, 3시간 걸린다.

» 서울성곽 - 남동쪽 구간

 

워킹 쪽지

1구간 시작점 숭례문은 시청역 2호선 9번 출구나 1호선 7번 출구, 1호선 서울역 4번 출구,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를 이용해 간다. 2구간 시작점 장충체육관은 3호선 동대입구역 4, 5번 출구를 이용한다. 2구간 출발점 건널목 좌우에 오만가지슈퍼·지에스25 편의점이 있고, 허름한 밥집들도 몰려 있다. 88식당은 찌개백반과 반찬들이 맛있다. 조밥이 나온다. 5천원. 광희문에서 걸어서 7~8분 거리의 경동교회 앞 평양냉면은 알아주는 냉면집. 육수도 육수거니와 면발이 특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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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5㎞,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산책 떠나기 전 챙겨야 할 간단 정보


서울성곽길 18.2㎞를 걸어서 10여 차례 돌아봤다는 녹색연합 노상은씨는 “성곽길은 게으르게 두리번거리며 걸어야 역사의 향기를 느끼고 경치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속 1.5㎞ 걷기를 권했다. 천천히 거니는 속도다. 성곽길 순례에 앞서 알아둘 점을 정리했다.


◎ 지도를 챙겨라 | 걷기 전에 들르는 지점들을 미리 살피고 문화유적들에 대해 공부해 두면 유익하다. 녹색연합에서 낸 소책자 <서울성곽 순례길>은 상세한 지도와 유적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 편리하다. 서울시내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녹색연합 누리집(www.greenkorea.org) 자료실에서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도 있다.


◎ 물과 카메라 준비는 기본 | 작은 배낭에 물과 간식을 준비하도록 한다. 특히 물을 구하기 어려운 북악산 구간이나 인왕산 구간에선 필수다. 북악산·인왕산 구간은 군사시설 지역이어서 사진 촬영은 정해진 곳에서만 할 수 있다.


◎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라 | 서울성곽길은 대체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게 편하다. 특히 인왕산·북악산의 서남쪽 구간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전철역 등 출발점 잡기에도 편리하고 경치 감상에도 좋다.


◎ 문화유산 해설사를 찾아라 | 서울성곽 전체 구간 해설사는 없다. 북악산 구간의 경우 말바위안내소(02-765-0297)와 창의문안내소(02-730-9924)에서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각 해설사가 출발한다.


◎ 북악산 구간은 신분증 지참을 | 숙정문안내소·말바위안내소·창의문안내소에서 신분증을 보이고 인적 사항을 적어야 한다. 구간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장)까지다. 월요일 휴무.  

 

<한겨레 이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