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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내린 북악산(北岳山) 서울 성곽 탐방

풍월 사선암 2009. 5. 20. 09:35

 

자연이 내린 북악산(北岳山) 서울 성곽 탐방(http://www.bukak.or.kr/)


북악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산.북악산(北岳山)으로 불리지만 일명·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높이342m. 기반암은 화강암이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경복궁의 진산이다. 


청와대는 경복궁과 북악산사이에 있으며,1395년(태조 5) 시축한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정도전이 성저(城底)를 측정한 뒤 천자문의 글자 순서에 따라 97구로 나누고 북악산의 정상에서부터 각 구마다 순서대로 번호를 동쪽으로 붙여 나가면서 97번째 글자인 조(弔)자에서 다시 북악산에 이르도록 했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어 오랫동안 일반인의 등산이 금지되었다가 최근 성곽부분은 대게 개방되었다.

서쪽 인왕산과의 안부에 자하문(紫霞門.일명 창의문)이 있으며, 남동쪽 기슭에 삼청 터널과 삼청공원이 있다.


숙정문 = 한성의 북대문으로 1997년 복원되었다(현판이 옛날과 달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져있다)


조선초기 한성을 축조하고 동서남북 대문을 인의예지신으로 이름지어

*동대문 =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 = 돈의문(敦義門),

*남대문 = 숭례문(崇禮門).

*북대문 = 숙정문(肅靖門)으로 지었다


다른 대문의 이름이 3자인데 반하여 동대문이 흥인지문인것은 낙산 (좌청용)이 빈약하여 기를 살리는 의미이며, 숙정문이 지(知)자를 배제한것도 풍수지리에 의한것으로 知(알지)자를 동일한 의미의 靖(꽤정)자로 바뀌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흔히 숙정문을 숙청문으로 잘못 부르고 있음도 바로잡아야 할 대목이다.


인의예지신의 마지막 信자는 종로의 보신각에 붙여졌다


또한, 

동소문 = 북악과 낙산 사이에 혜화문(惠化門)

북소문 = 북악과 인왕산 사이에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

서소문 = 남산의 북서쪽 기슭 사이에  소의문(昭義門)

남소문 = 낙산의 남쪽 기슭과 남산의 북동 쪽 기슭 사이에 광희문(光熙門)이며


인터넷에 검색하다보면 동소문을 홍화문으로 잘못 표기한곳이 많으나, 홍화문은  동소문(혜화문)과 800미터 거리에 있으나 성문이 아니고 창경궁의 정문이다.

 

 

북악산(北岳山) 서울 성곽 탐방

*월요일은 탐방 금지(월요일이 휴일인 경우 화요일)


▶말바위 안내소(와룡공원) 02)765-0297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서→지선(초록)버스 종로 02번 탑승하여 종점(성균관대후문)에서 하차 걸어서 10분 와룡공원도착→와룡공원에서 성곽을 따라 걸어서 20분(말바위 안내소)

 *4호선 지하철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서→지선(초록)버스 종로 08번 탑승하여 종점(명륜 3가)에서 하차 걸어서 10분 와룡공원도착→와룡공원에서 성곽을 따라 걸어서 20분(말바위 안내소)


▶숙정문 안내소 02)747-2152

*4호선 한성대 입구역 6번출구로 나와서 - 지선(초록)버스 1111, 2112번 탑승하여 종점(명수학교)에서 하차후 걸어서 10분.


▶창의문 안내소 02)730-9924

*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서 - 지선(초록)버스  0212, 1020, 7022번 탑승하여 자하문 고개에서 하차 후 걸어서 2분.


*1코스 : 말바위 안내소(와룡공원)→숙정문→곡장→청운대→백악마루(정상)→창의문안내소 (3.7km) ~인왕산 연계

*2코스 : 숙정문안내소→숙정문→곡장→청운대→백악마루(정상)→창의문안내소(3.8km)

*3코스 : 창의문안내소→백악마루(정상)→청운대→곡장→숙정문→말바위안내소(3.7km) ~ 삼청공원→경복궁 연계

※창의문에서 출발하는 코스는「창의문~백악마루」구간의 경사가 급하므로 노약자나 어린이는 말바위나 숙정문 안내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권장합니다.

 


 

 

서울 성곽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둘레는 약 17km, 면적은 59만 6812㎡이다.


1396년(태조 5) 축성되었다. 성벽은 백악(白嶽)·낙산(駱山)·남산(南山)·인왕산(仁王山)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길이는 영조척(營造尺)으로 5만 9500자, 이 길이를 천자문(千字文)의 97자(字) 구획으로 나누고 매자구간(每字區間) 600자로 하여 백악의 동쪽으로부터 천자(天字)로 시작되었다. 막음은 백악 서쪽의 조자(弔字) 구역으로 끝났다. 이 때 쌓은 성벽은 석성(높이 15자) 1만 9200자, 평지의 토성(土城:下廣 24자, 上廣 18자, 높이 25자) 4만 30자이며, 수구(水口)에는 홍예[雲梯]를 쌓고 좌우에는 석성을 축조하였다. 홍예 높이는 16자, 석성 등을 포함한 길이는 1,050자였다.


성에는 사대문(四大門 : 東―興仁之門, 西―敦義門, 南―崇禮門, 北―肅淸門)과 사소문(四小門:北東―弘化門, 南東―光熙門, 北西―彰義門, 南西―昭德門)을 냈다. 흥인지문(동대문)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숙정문)은 암문(暗門)으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 공사는 이렇게 끝났으나 남대문은 1396년, 동대문 옹성은 1399년 완성되었다.


1422년(세종 4)의 도성 수축공사 때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성벽의 수리는 1451년(문종 1)에도 시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참변을 당하였고 1616년(광해군 8) 일부가 수리되었다. 그 후 1704년(숙종 30), 1743년(영조 19) 부분적 보수를 하였으며, 1869년(고종 6) 동대문의 개축을 끝으로 도성의 수명이 다하였다. 현재는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다.

   

 

숙정문[肅靖門]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숙청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다. 숙정문 외에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504년(연산군 10)에 연산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기라고 명령한 기록이 보이는데, 실제로 문을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숙정문은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968년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서쪽 성곽 0.5㎞, 북쪽의 진입로 0.6㎞ 구간과 함께 다시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서울성곽에 포함되어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다.

  

 

창의문[彰義門]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린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門名)을 얻었다. 북한(北漢) ·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閉門)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는 능양군(陵陽君:인조)을 비롯한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문루(門樓)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0년(영조 16) 다시 세우고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다. 1958년 크게 보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