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2동에서 장충체육관 부근으로 이어진 성곽. 커다란 성돌을 밑에 쌓고 위로 작은 성돌을 촘촘히 쌓은 모습에서 세종 때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곽 위 여장 부분은 최근 복원한 것이다.
사진 오른쪽에 숙종 때 쌓은 성돌도 보인다.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성곽 순환로가 온전히 뚫린 것은 2007년이다. 1968년 간첩침투 사건 이후 북악산과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왔다. 1993년 인왕산이 먼저 일반에 개방됐고, 참여정부 때 북악산 숙정문~창의문 구간의 성곽길이 열리며 비로소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걷기여행이 가능해졌다. 최근 녹색연합은 정상 정복형 산행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서울성곽 순환 탐방로를 찾아내 <서울성곽 순례길>이라는 소책자를 펴냈다. 이 책자가 제시한 기본 코스를 바탕으로 18.2㎞ 성곽길을 네 구간으로 나눠 나흘에 걸쳐 걸었다.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와 서울시 문화재관리팀 김용수 주임이 각각 일부 코스 순례길을 안내했다.
첫날. 1구간(숭례문~남산~국립극장~장충체육관)
서울성곽길은 아름답고도 슬픈 길이다. 숭례문①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성곽길 걷기는, 안타까움으로 시작해 쓰라림으로 끝날 것이다. 사라진 숭례문. 가림막 안에선 복원공사와 발굴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숭례문 옆 선혜청 터② 표지석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선혜청은 대동미와 포전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던 관아다. 1608년(선조41년)부터 1894년(고종31년)까지 있었다.
숭례문 앞으로 길 건너 남산육교 쪽으로 오른다. 1961년 놓인 남산육교 건너, 에스케이빌딩 앞에서 옛 성벽의 흔적을 일부 만날 수 있다. 이후 길 건너 무수한 계단을 밟아올라 남산 중턱에 이를 때까지 성벽은 사라진다. 백범 광장 지나 계단길 따라 안중근 의사 기념관③ 앞에서 한숨을 돌린다. 거대한 돌들에 새겨진 안 의사 글씨들 옆에 2010년 개관을 목표로 새 기념관 공사가 진행중이다. 다시 돌계단을 올라 숲길이 시작된 뒤에야 계단길 석축의 오른쪽 사면이 성곽이란 걸 알아채게 된다. 내려다보면 검은 성돌들이 박힌 성벽이 아까시나무 숲 사이로 뻗어 있다.
성곽 남동쪽은 경상도, 남서쪽은 전라도 사람들이 쌓아
케이블카 종점을 지나면 봉수대④·팔각정⑤과 남산 엔타워⑥가 있는 남산(목멱산·인경산) 꼭대기다. 팔각정 앞엔 국사당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태조는 한양 천도 뒤 이곳에 목멱산신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를 올렸다. 일제가 이곳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은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봉수대에선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11시~12시30분 봉화 의식을 거행한다. 봉수란 횃불과 연기를 뜻한다. 낮엔 연기를 피우고 밤엔 불을 피워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순환버스 정류장 지나 녹음 우거진 찻길을 걸어내려간다. 남산 남쪽 순환로다. 길 오른쪽 축대가 성곽이다. 길이 성곽을 끊는 지점에서야 성곽의 면모가 드러난다. 세종때 쌓은 성벽이다. 이제 성곽은 산으로 올라가고, 길은 남산 고유소나무 탐방로⑦(매주 목요일 오후 개방) 쪽으로 이어진다. 소나무들이 아름드리는 아니어도 숲은 울창해 솔숲 내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국립극장⑧ 지나 자유총연맹 정문으로 들어간다.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엔 세종 때 세웠다가 폐쇄된 남소문 터⑨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옆의 타워호텔 부지에서도 최근 성곽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나 공사중이어서 확인할 수 없다. 자유총연맹 축대 일부도 옛 성돌로 이뤄졌다.
» 서울성곽길 2구간 장충아트빌라 옆 골목에 남아 있는 성곽.
동대문에선 성곽 발굴조사 현장 구경도
뒤쪽 산길을 오르면 남동쪽 코스 중 가장 뚜렷한 서울성곽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장을 따라 걷다 성곽이 끝나는 곳에서 성 바깥으로 나가 성벽을 따라 내려간다. 이끼 끼고 총탄 맞은 각양각색의 성돌들이 볼수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굽이쳐 흘러내린 성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땅에 조명시설을 설치해 밤 11시까지 성벽을 밝힌다. 세종 때와 숙종 때 축성된 성돌들이 뚜렷이 구분된다. ‘시면’(始面·할당된 공사 시작 지점)이나 지역명 등이 새겨진 각자석도 자주 눈에 띈다. 서울성곽의 남동쪽은 주로 경상 지역 주민들이, 남서쪽은 전라 지역 주민들이 쌓았다고 한다.
암문⑩ 부근 슈퍼에서 생수를 사 갈증을 풀고 땀을 씻었다. 암문은 주민들이 이용하던 비공식 출입구다. 함께 걷다가 휴대용 물병을 꺼내 마시던 녹색연합 노상은 간사가 말했다. “조선 오백년 역사가 스민 이 아름다운 성곽을 두고 아직도 도시미관용 장식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서울성곽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많고요.”
신라호텔 옆을 지나 장충체육관이 바라다보이는 큰길에서 성벽은 끊긴다. 여기까지 약 6㎞, 4시간 남짓 걸었다.
둘쨋날. 2구간(장충체육관 뒤 지에스25 편의점에서 광희문~동대문디자인파크(공사중·옛 동대문운동장)~흥인지문~낙산공원~혜화문)
88식당 앞에서 언덕 위 신당동천주교회 쪽으로 오른다. 이제 성곽은 끊기고 그 흔적만이 주택가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장충아트빌라 옆 골목과 성방빌딩 맞은편 왼쪽 골목에 축대로 사용되는 성곽 흔적들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성돌을 보면 축조 시기는 대충 짐작이 간다. 노 간사가 성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세종 때 방식으로 보이네요. 저쪽 건 좀 숙종스럽죠?”
장충퍼시픽빌라 골목길을 돌아 내려와 길 건너 계단길(장수길)을 오른다. 오른쪽에 광희문⑪으로 내려가는 ‘수구문길’ 표지가 보인다. 수구문(시구문)이란 광희문의 별칭이다. 서소문(소의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을 가리킨다. 광희문은 길 가운데 있던 것을 현위치로 옮겼다. 한양공고 쪽으로 길 건너 서울메트로 동대문 별관 옆으로 간다. 별관 뒤 동대문운동장역 2번 출구에 작은 쉼터가 있다. 역 안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⑫에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 운동장 땅 밑에서 서울성곽 터가 발견됐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다. 공사장 가림막을 따라 돌면 투명유리를 통해 발굴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80여년 전 일제가 흥인지문~광희문을 잇는 성곽을 허물고 동궁 결혼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을 만든 것이 동대문운동장의 시초다. 발굴 뒤 성곽 일부도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패션몰·쇼핑센터 즐비한 거리를 지나 포장집촌 거쳐 흥인지문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청계천 물길 위엔 오간수교⑬가 걸려 있다. 옛날 이곳 성곽 안쪽엔 물이 고이는 곳이어서 성벽에 홍예로 된 다섯개의 물구멍을 냈다고 한다. 다리 옆 물가에 이를 본뜬 다섯개 홍예수문을 만들어 놓았다. 흥인지문⑭ 앞엔 1907년 헐린 오간수문 터임을 알리는 표석을 설치했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을 보고 동대문역 6번 출구로 들어가 1번 출구로 나온다. 여기부터 성곽길이 다시 열린다. 이대병원 옆이다. 낙산지역 문화유산 해설 안내판 옆 위쪽 성벽에서 각자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찻길에 있던 혜화문 산 밑으로 옮겨 지어
성 밖으로 이어진 골목길은 곧 나무들 우거진 산책로로 이어진다. 정자와 성터교회 지나 암문을 만나 성 안으로 들어간다. 길 왼쪽은 다닥다닥 붙은 옛 주택가들이 이어진다. 이화동 산동네다. 일본식 가옥을 닮은 이층집도 자주 눈에 띈다. 화장실·낙산체육회 지나면 성곽이 길로 끊기고 길은 왼쪽 낙산공원⑮으로 든다. 광장 옆 암문 밖, 한성대 서쪽 지역은 택지 조성 공사중이다. 성 안쪽 길로 걸어내려가 나무계단으로 골목길로 들면 로봇박물관 거쳐 혜화역 앞으로 나서게 된다. 혜화동 네거리 오른쪽으로 길건너 잠시 걸으면 혜화문(16)이다. 4소문 중 동소문인데, 본디 찻길 가운데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다. 약 5.5㎞, 3시간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