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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으로 화현한 ‘관음보살’ 원효스님 시험해

풍월 사선암 2009. 5. 26. 18:48

원효스님이 정진했다는 자재암 전경. 사진 안은 원효스님이 수행했다는 원효굴로 나한전이 조성돼 있다.


여인으로 화현한 ‘관음보살’ 원효스님 시험해


“마음 따라 법이 생멸한다”는 법문듣고

관세음보살로 화현해 폭포 위로 사라져

자유자재한 마음 검증… ‘自在菴’ 창건


우리나라 불교에서 관음신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사찰 가운데 ‘관음사’라는 사명(寺名)이 전국에서 제일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뜻하는 바를 이루려는 불자들의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리라.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에 위치한 자재암(自在庵) 역시 관세음보살과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고승이었던 원효스님이 관세음보살을 만나 자신의 수행력을 검증받았던 이야기는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애행으로 천하를 주유했던 원효스님은 소요산 자재암에서 수행정진에 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요산에도 빗방울이 ‘후두둑’거리며 산하와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토굴에서 가부좌를 한 원효스님은 마치 석상과 같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토굴이라 바위 굴안에 거적을 깔고 추위와 더위를 막는 정도로 단박한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물이 바위골을 타고 청량폭포(옥류폭포)에 부닥치고 있었다.


“무상한 세상살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당나라로 구법여행길에 올랐다가 한 밤중에 맛나게 마신 해골물로 인해 깨달음을 얻은 바 있었다. 또 끝없는 무애행(無碍行)으로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까지 낳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반인 같았으면 파계승으로 지탄을 받았을 터이지만 스님의 행화는 신라인들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원효스님이 인연 맺은 세간사 역시 도인의 경지에서 보여준 일로 온 신라인들은 이해했다. 이제 세간을 떠나 토굴에 머무르며 깨달음을 검증하고 있었던 것. 저녁이 가까워 지자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원효폭포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적막한 소요산을 적시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번뇌가 녹아 계곡을 따라 철철 넘쳤다. 원효스님의 마음도 이와 같은 번뇌가 녹아 계곡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무 관세음보살!”


삼매에 든 원효스님의 뇌리는 하얀 백지처럼 무념무상의 순간과 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는 불요불급(不要不急)의 삼매가 영화의 스크린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아는 이치였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요 “불생불멸 불구부정”이었다. 12연기 법칙을 순관으로 한바퀴 돌린 원효스님은 다시 역관으로 돌려보며 세상사를 꿰뚫어 보고 있다.


“그래, 세상사는 다 그런 것이야.”


깨달음의 원리가 새록새록해지는 것을 바라보면 원효스님은 삼매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으~ 음” 한 순간의 찰나가 지나가자 원효스님은 눈을 떴다. 그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계세요.”


깊은 산중에 그것도 저녁이 이슥해진 시간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없습니까.” 분명 여인의 목소리였다. 원효스님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야심한 밤에 누가 왔을까.” 거적을 들쳐 내고 밖으로 나가니 어둠 한 켠에서 비에 젖은 여인이 파르란 몸을 가녀리게 떨고 있었다. “뉘신데 이 밤중에 산속에서 헤메고 다니시는지요.” 원효스님의 굵은 중저음 목소리가 빗방울 사이를 화살같이 뚫고 날아갔다.


“저는 저 아랫마을에 사는 사람인데 산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날이 깊어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직하게 내려깔리는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공포심이 묻어 있었다. 길을 잃어 헤맨 흔적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우선 비를 피하시구려.”


거적을 들치고 들어오는 여인에게서 살 내음이 났다. 산속에 혼자 수행하던 원효스님의 코끝을 스친 여인의 향기는 그 옛날 요석공주의 향기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점검하는 수행자의 몸이기었기에 그저 ‘무덤덤한 육신(肉身)의 이동’만 보였다. 몸이 젖은 여인은 몸을 말려야 했다. 원효스님은 방 구석에 몸을 돌려 벽을 향해 가부좌를 틀었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여인은 겉옷을 벗어 물기를 짜서 말리고, 다시 옷옷을 벗어 말리기를 반복했다.


“밤이 깊어 산을 내려갈 수 없으니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게 해 주세요.” 원효스님은 말이 없었다. 무정하게 안된다고 할 수 없기에 그저 무언으로 긍정의 뜻을 전했다. 다시 선정에 든 원효스님은 인기척 없는 석상처럼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몸을 말린 여인은 피곤했는지 스님이 마련해 준 이불속으로 빠져 들었다.


두 생명체의 숨소리가 방안에서 기운을 타고 흘렀다. 여인은 계속 낮지만 미묘한 소리로 원효스님을 일깨웠다. 한쪽 여인의 주파수는 스님을 향했고, 스님은 여인으로부터 다가오는 유혹의 숨소리를 삼매정진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원효스님은 요석공주에게 설총을 잉태시킬 때의 그 원효가 아니었다. 처절하리만큼 깨달음을 점검하는 그의 수행체는 금강석과 같이 단단한 에너지의 덩어리였다.


“나무 관세음보살!” 새벽이 되자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간밤에 내린 비는 계곡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미묘한 법음(法音)이 되어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원효스님은 가부좌를 조용히 풀고 일어났다. 거적문을 여니 토굴 앞 청량폭포의 물줄기가 커져 있었다. 마치 푸른 옥이 흘러내리는 듯했다.


“자연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야.” 토굴을 나온 원효스님은 바위샘에서 감로수로 목을 축였다. 여인이 깊이 잠들어 있으니 아래에 있는 폭포로 가서 목욕을 할 참이었다. 좁은 계곡을 내려오는 길이 미끄러웠다. 짚신을 고쳐 매고 조심조심 내딛는 발걸음을 응시했다. 계곡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거치자 거대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에 도착했다.


“아, 시원하다.” 원효스님은 간밤에 묵은 번뇌를 말끔히 씻어 내려는 듯 몸을 폭포에 풍덩 던졌다. 살갗에 맞닿는 미끈한 느낌이 폐부로 스며들었다. 물 속에서 바른자세로 합장을 한 원효스님은 “옴~”하고 일성을 토해냈다. 다시 물에 몸을 맡기고 물위에 누운 원효스님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맑구나. 세상 중생들이 마음도 저처럼 맑고 투명해야 할 터인데….” 물찬 제비처럼 폭포를 한바퀴 돌아 밖으로 나오던 원효스님은 깜짝 놀랐다. “아니!” 간밤에 거쳐에 묵었던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폭포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 무슨 변고인고.” 스님은 여인에게 다가가 법을 설했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겨나고,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

마음이 멸하며 여러 가지 법이 사라진다.


순간 여인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스님에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여인의 몸은 몸이 아니었다. 원효스님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여인은 관세음보살님!” 외마디의 소리를 지르는 그 틈 사이에 여인은 폭포를 타고 올랐다. 이제는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화려한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이었다.


“아 관세음보살님이 나토셨어.” 그랬다. 간밤에 여인은 관세음보살로 화현해 원효스님의 깨달음을 점검한 것이었다. “마음이 자재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것을….” 스님은 이 인연으로 토굴이름을 ‘자재암(自在庵)’으로 이름지었다. 또 암자 앞 폭포를 ‘청량폭포’라 명명했다. 이후 사람들은 자재암 우물을 ‘원효샘’으로 불렀고, 원효스님이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한 폭포를 ‘원효폭포’로 불렀다.


현재 원효굴은 자재암 나한전으로 조성돼 석가모님부처님과 16나한을 모셨다. 자재암 나한전은 선몽에 의해 찾는 기도객들이 많다고 한다. 주지 왕산스님은 “꿈속에 나한전을 본 신도님들이 이곳에 와보고는 깜짝 놀라는 것을 많이 봤다”며 “자재암은 관음기도와 나한기도로 소원을 성취하는 도량으로 이름이 높다”고 말했다.


동두천=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찾아가는 길 /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1번지에 위치한다. 지난해부터 지하철 1호선이 연결돼 의정부-양주를 지나 종점인 소요산역에서 내려 걸어서 30여분 올라가면 자재암이 나온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도 시내버스 136번과 139번이 5분마다 운행된다. 경기도 의정부와 서울 상봉터미널에서도 자재암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인천광역시-고양시(능곡, 원당)을 거쳐 오는 버스도 있고 경기도 성남시에서도 자재암까지 오는 버스도 있다. (031)865-4045

도움 및 참고:<한국불교전설99>,자재암 홈페이지,자재암 주지 왕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