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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vs구리, 빤쮸 속까지 비교해 보자! (Ⅱ)

풍월 사선암 2008. 8. 20. 13:53

 

이세돌vs구리, 빤쮸 속까지 비교해 보자! (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은 2004617일부터 2008621일까지 총 14차례의 격전을 벌였다. 어떤 기전인가에 관계없이 한국, 중국 랭킹 1위의 격돌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충돌은 세계대회 결승 못지않게 한국, 중국 바둑팬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중국에서는 이세돌 9단을 리스스(李世石)라고 부른다. 이세돌과 구리의 첫 대결은 2004617일 중국 갑조리그 9라운드에서이다. 당시 이세돌은 꾸이저우해속정 용병으로 출전했는데 당시는 구리는 이미 국내 랭킹 1위 자리에 오른 뒤였으며, 천원전 2연패와 2004 중국갑조리그 8연승 행진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다. 이세돌은 2003LG배에서 이창호를 꺾었으며 후지쯔배 연패를 이룬 절정기로 가고 있을 무렵이다.

 

이세돌 9단이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보면 2001년이 밀림을 빠져 나오려는 표범과 같은 시기였다면 2003년은 밀림을 빠져 나온 표범과 같았고 2004년에 들어서는 이세돌은 사람들의 예측을 깨고 밀림을 정복해 버리는 3단계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이 라운드는 꾸이저우팀의 홈 경기로 이세돌의 가세가 충칭팀에 어떤 타격을 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이세돌은 초반 작전에서 지나치게 무리한 수를 두어 국면의 흐름이 구리에게로 기울었다. 국면은 너무 일찍 긴장감을 잃어버렸다.

 

초반 백을 잡은 이세돌이 연이어 무리수를 두어 강경하게 흑을 끊어 싸우고자 하는 욕구가 아주 강했지만 구리의 침착한 대응에 대해서 줄곧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세돌이 백1로 끊을 때 구리는 통렬한 흑2로 끊자 전체적인 국면의 틀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1은 결코 이세돌의 기술적인 실착이 아니다. 완전히 버리고 싶은데 버릴 수 없는 조급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착수는 2자리로 내려서는 것이 모양이다. 이후 귀에서 피할 수 없는 패싸움이 벌어지고 이세돌은 강경하고 완강하게 버텨 국면은 요동을 쳤다. 그후 흑의 구리 9단이 미세한 우세 속에 약간 느슨한 수를 두자 이세돌은 자신의 막중한 책임을 느꼈는지 줄곧 마지막 1분까지 최선을 다해 두었지만 반면 10집 이상의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세돌과 구리의 첫 대결은 이렇게 끝이 났다. 구리가 갑조리그 9연승을 거두었고, 이세돌은 중국 갑조리그에서 3연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5개월이 지난 뒤 이세돌과 구리는 다시 한번 조우했다. 5개월동안 구리는 한중천원전에서 최철한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명인전 도전권을 획득했지만 농심배 출전권을 얻는데 실패했다.

 

이세돌은 왕위전에서 2:3으로 이창호에게 패했지만 도요타배에서는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도요타배 준결승전에서는 콩지에에게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당시 콩지에는 10집 이상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대마는 한 수면 사는 상황에서 덜컥수로 이세돌을 결승무대에 올려 보냈다 

 

9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 두 번째 대결을 벌이게 된 두 사람은 당시 가파른 상승세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다. 9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는 이세돌외에 구리, 저우허양, 왕시가 올랐는데 이세돌 vs 구리의 준결승전 대결은 당연히 최고 관심사였다.

 

당시 중국언론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호랑이들의 싸움으로 이들의 싸움을 묘사했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정작 준결승전 3국 모두 점심시간을 전후에서 일찍 끝이 났다.

 

구리의 흑번. 1로 뛴 것은 심오한 한 수. 이 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세돌의 바둑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그 자체로는 후수이지만 결코 맥과 같은 흑의 급소와 같은 아니라 심지어 A자리의 끊는 것을 잘못 본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자세히 이 수를 음미해 보면 그것은 자신의 안정성을 높이고 동시에 전체 흑 대마의 안형을 잃게 만들어 의미가 아주 깊다. 이때부터 백은 포석에서 천천히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흑은 더 이상 판세를 뒤집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1은 날이 없는 뾰족한 칼이 되어 구리에게 1패를 안겼다.

 

3번째 대국은 제9회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2국이다. 이어 벌어진 2국은 전 날 대국의 복사판이었다. 구리는 같은 수법으로 복수의 화살을 날렸고 승부는 1:1이 됐다.

 

흑을 쥔 이세돌이 포석단계에서 총탄을 맞으면서 백이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은 대국이다. 이세돌은 축의 불리함을 알면서도 호랑이 굴속으로 뛰어들었으며 백은 2로 한 점을 잡으면서 살았고, 이후 흑은 축을 따내거나 귀를 살리는 것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흑이 5로 축머리를 따낸 후 구리는 백6으로 귀를 잡은 후 이세돌의 투지는 완전히 꺾이었고 대국은 일찍 끝이 났다 

 

유창혁 9단은 구리와 이세돌의 대국에 대해서 갈수록 우리들 세대의 바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확실히 이때의 한중바둑계는 견실함과 균형의 대표였던 이창호, 창하오 시대는 흔들리고 있었고, 빠르고 힘있는 이세돌, 구리의 바둑이 갈수록 바둑팬들의 시선을 잡았다.

 

삼성화재배 결승진출을 결정짓는 3국이 이들의 네번째 대국이다. 이전 대국에서 2;1로 구리가 앞서고 있지만 만약 2:2가 된다면 구리로서 앞으로 이세돌과의 대국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돌을 가린 결과 이세돌의 흑번으로 시작했다. 이세돌이 흑1로 모자를 씌우자 백은 2 마늘모로 연결해 갔다. 비록 초반이 비록 기세상이나 심리적으로 국면형세는 서서히 흑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승부의 중압감은 이미 구리로 하여금 자신의 기풍대로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2의 수는 본래의 구리였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A자리로 건너 붙여 끊었을 것이다.

 

구리와 이세돌의 네번째 대결은 총14번의 맞대결 중 가장 큰 한판이었으며, 이세돌vs구리의 첫번째 번기 대국이었다. 이 대국으로 두 사람간의 역대전적은 2:2가 됐지만 삼성화재배 결승진출을 놓고 벌인 한판에서 이세돌이 승리를 거두면서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대국 종료후 구리는 방으로 돌아가서 어두운 방에서 몇 시간나 혼자 묵묵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 사이버오로/김경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