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의 쉼터/고향사선암

[전북 무주] 벌한 마을

풍월 사선암 2008. 2. 3. 20:49

[전북무주] 벌한 마을

 

가만가만 발뒤꿈치를 세우고 걷듯 자연과의 교감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깥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무진장’으로 대표되는 전북의 오지 덕유산 자락.

 

이미 덕유산 구석구석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구천동의 한 지류인 벌한천 끄트머리에 있는 벌한(伐寒)마을은 아직도 인적이 드문 곳이다. 폭 5~6m의 작은 계곡에 지나지 않지만 사철 마르지 않는 맑은 물이 넘쳐흐른다. 가만가만 발뒤꿈치를 세우고 걷듯 자연과의 교감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깥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거칠봉(1,178m) 일곱 봉우리와 마주한 벌한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벌한마을은 나제통문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두길리 구산마을이 들목이다. ‘구천동 한과’ 공장 입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폐교된 지 오래인 두길초등학교가 웃자란 잡초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비포장 도로는 구천동 계곡을 가로질러 벌한천 골짜기를 파고든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현란하게 춤을 추는 구천동 리조트 단지와 정반대의 1970년대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오지가 많기로 소문난 무주에서도 이런 험로는 없을 것이다.

 

구산마을과 벌한마을 중간쯤 둔덕에 자리한 방재마을은 빈집이 더 많다. 다 쓰러져 가는 토담 아래쪽은 어른 키보다 더 높이 자란 잡초로 덮여 있고, 요즘은 보기 드문 누런 황톳빛 건조막도 여러 채 보인다. 길이 워낙 험해 차에서 내려 걸었다. 한때는 60여 가구가 살았다는 벌한마을 어귀에 다다르니 들이 먼저 반긴다.

 

비를 맞으며 배추 모종하느라 여념이 없는 주민들의 손길이 부산하다. 늘 겪는 일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이런 경우에는 카메라를 들이댈 수가 없다. 농촌의 현실이 다 그렇듯 벌한이라고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열악한 현실이 젊은이들을 도시로 내 몰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구천동으로 몰리는 판에 이런 골짜기까지 둘러볼 틈이나 있을까, 오랜만에 찾아든 외지인이라 시선이 집중된다.

 

벌한마을은 성산 배씨 집성촌이다. 해발 550m 고지대에 북쪽으로 골문이 열려 매서운 겨울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형이 사람이 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300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은 옛 사람들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거칠봉(居七峯, 1177.6m)과 사선암(四仙岩)이다. 마을 뒤로 감싸 안은 듯 산 병풍을 둘러친 거칠봉은 마을을 향해 일곱 봉우리가 차례로 키를 낮추며 정면으로 트인 골바람을 막아준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살아 온 배재우 할아버지(76) 는 “사선암의 네 신선이 더해 벌한마을을 지켜주고 있어 수백 년 평안하게 살아왔지”라며 마을 자랑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협소해 보이기만 한 골짜기지만 비교적 농토가 많다. 지금은 묵밭으로 버려져 있지만 할아버지 집 맞은편에는 ‘큰들’이라 불리는 운동장만 한 둔덕이 있다. 아이들의 공간인 두길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지금은 모두 아홉 가구, 열네 명의 주민이 전부다.

 

잠시 비를 피할 겸 동네 어귀에서 만난 배재우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뜻밖의 손님에 할머니는 안절부절못하신다. 내 집 찾아온 손님인데, 뭐라도 대접해야 한다며 극구 사양해 보지만 커피를 내 오고,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잠시 도회지 생활을 했지만 노부모 봉양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부부는 당신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고향 땅을 지키며 살고 계신다.

 

할머니는 본디 무풍 출신. 지금이야 길이 잘 나 무주나 설천장을 보러 다니지만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걸어서 사선암 산등성이를 넘어 무풍장을 보러 다녔다고. 할머니는 고생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들려주신다. 오랜 세월의 향기가 밴 지은 지 300년이 넘은 할아버지의 집, 마당 한쪽에 놓인 커다란 무쇠솥과 손때 묻은 농기구들, 집안 구석구석이 민속박물관이다.

 

“천하의 구천동이라지만 이제는 벌한천만 못하니 수백 년 전 이곳에 터잡은 성산 배씨 선조들의 지혜로움과 자연관 덕이지”라며 할아버지는 자리를 일어서는 일행에게 고향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전 판암 분기점에서 대전 - 진주간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이 도로가 개통되면서 국도를 이용하던 때보다 무주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져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무주읍내를 벗어나 30번 국도로 나제통문까지는 30분 거리, 나제통문 삼거리 나 제휴게소에서 구천동 방향 37번 국도로 갈아타고 10분쯤 가다 보면 '구천동 한과' 공장 간판이 보이고 좌측으로 벌한천을 따라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구천동계곡을 건너 방제마을을 지나 벌한마을 까지는 10리 길로 걸어서 한 시간 거리.

 

♣ 숙박 정보

무주 구천동 하면 여름 피서지였다. 하지만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사계절 관광지로 탈바꿈했고,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의 요긴한 휴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덕분에 여름 성수기만 아니라면 가격도 비싸지 않고, 근사한 통나무집 펜션에서 허름한 민박집까지 맘에드는 곳으로 골라잡을 수 있다.

 

무수리조트 입구의 로그하우스(063-322-3355)나 배방하우스(063-322-1636)모두 통나무집으로 운치 있는 분위기의 산중 정취를 만끽하기에 좋은 집이다.

 

무주에는 동요가 많다. 평화로운 무주의 산천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구천동계곡에는 도사들의 수련장이 되었다고 한다. “아가 아가 어어어서 자라서 구름다리 건너가서 무주부사 되었다가 만리고개 넘어가서 적상산성 구경가자” 내용의 동요가 언제부터인가 무주에서 불려왔다. 이는 평화로운 무주의 산천을 노래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