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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공격수, 그의 부활을 기다리며...

풍월 사선암 2007. 9. 26. 19:41

유창혁

1966년생…

18살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준우승,

그리고 그 해 입단…

1996년 특별 승단으로 9단…

세계대회 6회 우승…

국내대회 18회 우승…

국내 네 번째 1000승 달성…

취미는 영화감상과 축구…


누구의 프로필일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두 번째 줄에서 바로 정답이 나왔을 것이다. 위 프로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창혁 9단.


‘세계최고의 공격수’, ‘일지매’란 별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유창혁 9단은 쾌활한 성격만큼이나 화려한 공격바둑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시원시원하게 해주었던 사내다. 90년대 초반 이창호 9단과 함께 조-서 시대의 두터운 벽을 깨뜨리고 4인방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던 그는 한국의 후지쯔배 첫 정상정복, 응씨배 세 번째 패권 달성 등 굵직굵직한 획을 그리며 한국 현대바둑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던 그가 2000년대 중반 들어선 소식이 뜸하다. 2003년 패왕전에서 절정의 이창호 9단을 3-0 완봉승으로 물리친 이후 어연일인지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얘기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잠시만의 부진으로 끝날 줄 알았던 것이 벌써 4년째. 그를 꾸준히 응원하던 팬들에겐 아쉬움이 더하리라. 4인방의 일각으로 조훈현 9단처럼 오랫동안 최정상에 머무를 줄 알았던 그가 이렇게 일찍 내리막길을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부인과의 사별


이런 부진의 근본적인 이유는 부인과의 사별이 주된 이유라 볼 수 있다. 2004년 2월의 마지막 날, 부인 김태희씨의 예기치 않는 운명. 자세한 사정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됐던 터라 여기선 생략하겠다. 아무튼 그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유창혁 9단의 2004년 성적은 20년 넘는 기사생활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40승 34패 54%의 승률. 매년 60%를 꾸준하게 넘기던 성적이 겨우 반타작에 머무를 정도였으니 맘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단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머리가 멍해서 집중이 하나도 안돼요. 이기는 건 둘째 치더라도 내용이 형편없어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단 생각이 들죠.”

 

“요즘엔 술 한 잔이라도 걸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밤잠을 자주 설쳐 새벽에 눈뜨는 일이 한 두 번도 아니고….”


당시 유창혁 9단의 인터뷰 내용 중 하나다. 그의 심경이 어땠을지 지레짐작하게 한다.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중 대표적인 낙관파 기사로 알려진 유창혁 9단이지만 이런 충격이 빠른 시간 안에 회복되어 예전 모습을 다시 보여주길 기대하는 건 팬들의 지나친 욕심일까? 최근엔 바둑도장을 오픈하며 제자육성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한편으론 승부에 한 걸음 물러난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서히 부활의 조짐이 보이기도 해 맘 한구석엔 이런 의심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다. 세월이 약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가슴을 한없이 여미는,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시린 상처도 시간이란 약이 조금씩 그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유창혁, 다시 부활하는가?


오랫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있었지만 천부적인 승부사 기질이 어디 가겠는가? 2005년 후반 KBS바둑왕전 결승에 올라 간만에 타이틀 전선에서 팬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 비록 이창호 9단에게 2-0으로 패하긴 했지만 날카로움은 여전했다. 2006년에는 바둑리그와 여타 기전 본선무대에 종종 올라가며 서서히 제 모습을 되찾는 듯 하더니 올해 삼성화재배 32강에선 중국랭킹 1위인 콩지에 7단을 완벽하게 잡아내며 화려했던 옛 위용을 과시한다. 16강전에서도 허영호 6단을 물리치고 8강에 올라 10월에 열리게 될 8강전에서는 구리 9단과 준결승 진출을 놓고 흥미진진한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간만에 그의 이런 모습이 반가웠다. 아직은 완벽한 부활이라 말할 순 없지만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행마들을 보고 있자니 세계최고의 공격수란 애칭을 되찾아 올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이창호 9단이 국내와 세계를 막론하고 무적을 자랑했던 90년대에 번번이 돌부리를 걸고 넘어졌던 이가 유창혁 9단이었단 걸 알만한 팬들은 다 알 것이다. 당시 이창호 9단이 명실상부한 1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창혁 9단과 이창호 9단이 만나기라도하면 바둑가에선 언제나 50:50의 승률을 점치곤 했었다. 대부분의 팬들 역시 그랬을 것 같다. 어디 유창혁 9단이 만만히 볼 만한 바둑인가?


차디찬 일지매의 칼날, 타개의 신을 넉다운시킨 일국!


백문이 불여일견. 마지막으로 유창혁 9단의 진면목이 담긴 기보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소개하는 기보는 1998년에 벌어진 제9기 동양증권배 8강전으로 유창혁 9단과 조치훈 9단의 대결이다. 유창혁 9단의 백번.


제1보(1~36)

 


 

조치훈 9단은 알다시피 선실리 후타개로 유명한 기사다. 상대방 세력을 깨는데 일가견이 있어 ‘침투와 타개의 신’, ‘다이너마이트’라는 무시무시한 별명도 따라붙는다. 그런 조치훈 9단을 맞아 ‘세계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이 어떻게 맞대응했는지 감상해보도록 하자.


초반 포석 과정이 재미있다. 당시에도 미니중국식 포석이 유행을 탔는데 유창혁 9단이 백6으로 협공하면서 흑의 의도를 거슬렀다. 그러자 조치훈 9단은 바로 3ㆍ三 침입을 결행한다. 보통 백16으로 걸치는 자세가 좋아 피하는 모양인데 조치훈 9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귀의 실리를 차지하고 본다. 흑17의 붙여끌기도 극단적인 실리취향. 역시 ‘실리의 화신’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이런 모양이 싫어서 보통은 참고도1처럼 흑1의 귀굳힘을 먼저 선행한 다음에 3ㆍ三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포석감각. 1의 귀굳힘이 적절하게 하변 모양을 견제하는 총부리 역할을 하고 있다.


백22로 바짝 다가왔을 때도 조치훈 9단의 독특한 취향이 아주 재미있다. 23으로 치받아두고 25로 걸친 것이 독특한 발상. 백진을 부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 장면에서 유창혁 9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어서 들어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소!’


백26은 근거를 주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 28까지는 생각해볼 수 있는 진행인데 흑29가 초점을 빗나갔다. 참고도2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진행이지만 조치훈 9단은 불만이라고 본 듯 흑29로 수순을 살짝 비틀고 나섰다. 그러자 유창혁 9단은 숨도 쉬지 않고 백30으로 바짝 압박해 버린다. 이하 경과추이에 따라 흑29의 한 칸 뛴 수를 끊겠다는 의미.


조치훈 9단의 기세도 대단하다. 위험을 느껴 일단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기 마련이지만 주도권에서 밀린다보고 31로 손을 뺀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유창혁 9단도 32로 흑일단의 탈출구를 콱 막아버려 흑 일단을 잡아버리겠다고 나서자 때 이르게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과연 흑돌의 안위는 무사할까?


 

 

 

2보(36~50)

 

 


결론부터 말한다면 흑의 선택은 무리였다. 실전에서 보듯 흑은 두 집내기에 급급한 반면 백은 흑돌을 공격하면서 유유하게 상변에다 철벽을 쌓았다. 유창혁 9단은 흑49까지 흑돌을 살려주고 세력을 쌓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더 강한 공격수단도 있었다. 참고도3이 흑돌을 강하게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렇게 된다면 흑대마는 그대로 횡사. 참고도4가 차선책이긴 하지만 패가 되선 마찬가지로 망하는 그림이다. 실전도 백의 만족이지만 확실한 이득을 볼 수 있는 그림을 놓쳤다. 조금 아쉬운 장면이다.


어찌됐던 백50의 요처를 차지해선 백의 포석성공이다. 훤칠하게 그려진 상변 백모양이 무려 40집 넘게 날 위풍당당한 자세다. 군데군데 열심히 집장만을 한 흑의 평수를 한 방에 감당하고도 남을 모양이다.






 

 


 


 

3보(50~67)

 


첫 번째 공방전에서 쓴 맛을 본 조치훈 9단. 흑51로 움직이면서 좌변 피해를 보상받고자 한다. 여기서 유창혁 9단의 선택은 백52. 좌하 백5점을 살리는 것은 피곤하다보고 52로 지켜 싹싹하게 버린다. 유창혁 9단의 유연성이 돋보이는 대세관이다. 참고도5처럼 살리는 수도 가능하겠지만 이하 흑5까지 백이 피곤해지는 건 감수해야한다.


‘무거운 돌은 미련 없이 버려라. 버리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격언 중의 한 구절이 잘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다.


선수를 잡은 백은 56까지 상변 모양을 더욱 확장하고 나섰는데 다음 흑의 수가 역시 조치훈 9단다운 선택이었다. 흑59의 어깨짚음. 삭감수치고는 굉장히 깊다. 온몸이 타오를 각오를 하고 불구덩이 한가운데로 뛰어든 한 수!


여기서부터 유창혁 9단의 파상공세가 하이라이트인데….


4보(67~100)

 


‘여기까지 들어온다면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68의 격렬한 붙임수! 시쳇말로 무식한 공격수단이었지만 사방이 두터운 백진영에선 이보다 매서운 공격수는 없었다. 세계최고의 공격수다운 적극적인 돌진이었다.


꾹 참고 있던 힘을 단번에 쏟아 붙듯 유창혁 9단의 시퍼런 칼날은 흑대마를 내리치기 위해 사정없는 춤사위를 벌인다. 이하 진행은 처절한 공격과 처절한 타개의 수순들. 조치훈 9단은 75까지 탈출구를 찾아 기어나가 보지만 76의 씌움에 안에서 살 수 있는 수단은 원천 봉쇄됐다. 흑은 이제 백의 포위망의 약점을 찾아 타개수단을 강구해야 하는데 유창혁 9단 날카로운 눈빛은 절대 빈틈을 보이지 않을 기세다.


참고도6과 7은 흑67의 다른 대응수단. 이하 수순에서 보듯 봉쇄를 피할 순 없다.


 

 

 

 

 

 

 

5보(101~134)

 


흑의 처절한 몸부림은 134수에 이르러 끝나고 만다. 포위돼있던 흑돌을 타개하는 와중에 흑31까지 이득을 취했지만 상변 흑대마에 비길 것이 못된다. 실전에서 보듯 포위하고 있는 백돌을 잘라 어떻게든 수를 내보려하지만 약점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흑대마는 백34의 수에 사형선고가 떨어지면서 장렬하게 전사한다. 바둑도 이걸로 끝. 참고도8로 두어 수상전을 노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겠지만 수상전은 백의 수가 더 많아 보인다.


단곤마는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프로바둑의 정설이다. 그러나 위의 기보는 ‘단곤마도 잡힐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타개의 신’이라 불리는 조치훈 9단을 상대로 보여준 ‘세계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의 진면목.

 

 


호쾌하지 않은가? 유창혁 9단은 늘 이렇게 이겨왔다. 집을 지어 이기는 것보다 공격을 통한 부산물을 얻어내 상대방의 실리를 지긋이 눌러왔다. 팬들은 이런 그의 모습에 열광했고 다시 한 번 최정상의 자리를 놓고 화려한 검무를 휘둘러 주길 기대하고 있다.


아무쪼록 유창혁 9단이 부활의 날개를 활짝 켜길 바란다. 40대란 나이가 중압감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현대 바둑의 역사를 뒤돌아볼 때 나이가 문제될 건 없다는 것을 여러 명의 기사들이 입증해왔다.


‘세계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이 우승트로피를 번쩍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