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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Knowhow]계가편 - 神算으로 가는길

풍월 사선암 2007. 9. 18. 08:24

[나만의 Knowhow]계가편 - 神算으로 가는길


안 하자니 답답하고 하자니 골치 아픈 계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반쯤 세다보면 어느새 앞의 것이 가물가물이요 후닥닥 전투 한번 벌어지고 나면 아예 셀 엄두조차 사라져 버린다.


계가는 형세판단으로 이어진다. 실리가 좋아 초반부터 2선, 3선 할 것 없이 박박 기어가며 잔뜩 집을 챙겨놓고 보니 어느새 시커먼 계곡 마냥 깊어져 버린 상대의 진영. 과연 얼마만큼 뛰어들어가야 수지타산이 맞을까? 은근슬쩍 들어가자니 집이 모자랄까 싶고, ‘엣다 모르겠다’ 눈 딱 감고 침투해버리자니 대마가 죽을까 겁난다. 아, 이럴 때 누가 대신 계가 좀 해주었으면 ..


바둑 깨나 둔다는 사람들도 계가는 두렵다. 뭐? 계가가 하기 싫으면 불계로 이기면 된다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오늘 소개하는 방법은 계가의 입문편이다. 한두집, 나아가 반집을 다투는 국면에서는 별 효용이 없겠지만 그럭저럭 골치아픈 계가법에 재미를 붙이고 습관을 들이는 데에는 확실한 ‘약발’을 보장한다.


계가의 기본 ‘콕콕세기’, ‘둘둘세기’


일단 계가는 중요하다. 내 집이 얼마고, 네 집이 얼마인고? 사실 집을 세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바둑의 기본 중의 기본인 ‘집’의 개념을 아는 이라면 셀 수 있는 자질을 훌륭히 갖춘 것이다.


일단 검지 손가락 하나를 눈앞에 들어 반상의 집을 하나 하나 세어보자. 이때 콕콕 집을 누르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세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것이 계가의 기본인 ‘콕콕세기’로 여기서 조금 발전한 형태가 두집씩 묶어 세어나가는 ‘둘둘세기’이다. 즉‘둘, 넷, 여섯, 여덟 ’하는 식으로 콕콕세기에 비해 속도가 한결 빠르다.


둘둘세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이제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넓이 구하기 공식을 써먹자. 큼직한 집은 일일이 셀 것이 아니라 ‘가로,세로’해서 쉽게 크기를 구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일단 계가의 베이직.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프로들도 곧잘 이용하는 ‘��(same same)법’이 있다. 내편의 어느 한집과 상대의 한집이 크기가 비슷할 경우 ‘��’으로 치고 계산을 하지 않으며, 흑의 경우 대여섯집 크기의 한집을 골라 ‘덤’으로 쳐버리는 방법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번만


매번 착수를 할 때마다 계가를 한다? 계가에 한이 맺힌 것은 이해하겠지만 본인도 고역스러울 뿐더러 오늘 상대는 아마도 다시는 당신과 바둑을 두고싶어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번만 계가를 하자. 30여수 두어놓고 포석의 밑그림을 누가 더 잘 그렸나 ‘작품감상’을 겸해서 한번. 중반 전투를 한창 진행하며 그 강약을 조절하기 위해 또 한번. 그리고 세밀한 끝내기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계가하는 습관이 몸에 배고, 속도 또한 빨라진다면 대여섯번 정도는 하는 것이 좋다. 열집 우세한 바둑을 불리한 줄 알고 무리하게 두다가, 반대로 불리한 바둑을 유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슬슬 풀어주다가 역전당한 바둑이 어디 한두판이던가? 오늘부터는 세상없어도 한판 당 세번씩은 꼭 계가를 하자.


정석은? 두터움은?


정석 중에는 실리와 두터움으로 갈리는 모양이 많다. 이때 집은 일일이 세어 문제가 없는데 상대방의 두터움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쉬운 방법은 집과 같은 크기로 보아주면 된다. 어느 한쪽이 불리하면 그게 어디 정석이겠는가? 역대 고수님들이 무수한 실전과 연구 끝에 무사공평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정석인 만큼 너무 깊이 알려 하지 말고(알면 다치는 수가 있다) 그냥 속 편히 같은 크기로 봐주면 된다. 다만 기풍에 따라 상대의 세력을 우습게 아는 사람의 경우 실리를 10으로 볼 때 세력을 7, 8 정도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음을 밝혀 둔다.


계산기 뒀다 어디에 쓰나?


두 자리 숫자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숫맹 (數盲)’이라고? 미리부터 비관할 것 없다. 계산기 두었다 어디에 쓰나?


소형계산기 하나를 마련해 손에 들고 마음껏 계가를 즐기자. 상대방이나 좌중의 눈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상대는 계산기까지 동원하는 당신의 치밀함에 질려 완착과 악수를 남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고로 체스대회에 출전하는 서양인들의 경우 기보용지와 함께 계산기를 손에 들고 나타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계가를 위한 ‘대동여지도’


계가가 몸에 착 달라붙을 때까지는 계가지도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 계가지도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준비된 그림을 보자. 우선 텅 빈 기보용지 한장을 준비한다. 기보용지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시는 분들이 왕왕 계신데 그냥 워드프로그램에서 가로세로 19줄짜리 표를 그린 뒤 프린터로 출력해서 쓰면 훌륭한 기보용지가 된다.


지도는 바둑을 두어나가면서 하나씩 작성해나간다. 바둑은 예로부터 전쟁과 닮아 장수들이 즐겨왔는데(삼국지의 관운장과 이순신 장군도 모두 애기가였다는 기록이 있지 않은가) 바로 전장의 지형지물을 기록해 이후의 작전을 올바르게 구상하자는 것이다.



우상귀에서 정석 하나가 만들어졌다 치자. 그러면 우상귀에 울타리를 하나 쓰윽 그리고 집을 세어 기록한다. 정석인 만큼 상대가 얻은 세력에도 같은 집의 크기를 부여한다. 내 집과 상대의 집을 구분하기 위해 표시 색깔을 달리하던가 실선과 점선으로 나누는 것도 좋다.


귀의 지도가 완성되면 변을 작성하고 이후 중앙의 지도를 작성한다. 물론 바둑 진행 상황에 따라 순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계가지도는 중반 정도까지 작성하면 충분하다. 이후 바꿔치기, 세밀한 끝내기 단계에서는 지금까지 만든 계가지도를 바탕으로 그때그때 응용해나가면 될 것이다.


( 천하무적 재치덩어리 홍보실 양형모 대리 / ryuhon@badu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