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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의 자유, 흉내바둑과 함께 하다

풍월 사선암 2007. 7. 23. 12:52

 

 
반상의 자유, 흉내바둑과 함께 하다
 

▲  박승철 5단(백) vs 백홍석 5단 - 190수 끝, 백불계승

 

얼마 전 박승철 5단이 흉내바둑을 시도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비슷한 시기에 목진석 9단도 한 번 시도했는데 두 기사 모두 승리했다. 내용이 대단히 흥미로 와서 나는 꽤 재밌게 감상했었다.


그런데 애기가들의 반응에서 나는 적잖게 놀랐는데, 적지 않은 분들이 흉내바둑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난마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흉내바둑을 두면 흑이 1집 이기게 된다는 이해는 오해에 속하고, 흉내는 비겁한 짓이라거나 바둑의 적이라는 표현은 비난의 대표적인 예였다.


그런 태도는 프로들과는 대조적인 것으로, 프로들은 대부분 흉내바둑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두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흉내를 해서 이길 기회를 찾을 수만 있다면 누구든 흉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에게는 승리가 최고의 미덕”이기에 흉내를 찬성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흉내바둑이 바둑 두는 행위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흉내를 거부하지 않을 뿐이다. 반상은 너와 나의 자유로운 지적(知的) 경쟁의 장(場). 그런 세계에서 예의와 규칙만 지킨다면 그 무엇이든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바둑 두는 행위의 자유, 그것이 흉내바둑을 인정하는 기반이라면, 우리는 상대가 어디에 두든지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컨대, 인터넷 바둑에서 첫수를 천원에 두면 많은 대국자가 불쾌감을 느껴서 당장 대국을 포기하곤 하는데, 과연 당당한 태도일까.


상대의 천원 착수를 불쾌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바둑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반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당연히 자신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보는 박승철의 흉내바둑. 흑이 축으로 흉내를 그치게 했으나 백2 백4의 결정이 멋졌다. 백이 나쁘지 않은 결과로, 그 동안 축은 흉내를 실패하게 하는 전술로 여겨져 왔으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상식을 벗어나 실체를 찾는 노력은 귀하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2007,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