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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지단이 아름다운 이유

풍월 사선암 2006. 7. 12. 14:32

2006 독일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공식적인’ 마무리가 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승팀보다 ‘지네딘 지단’을 더 연호하고 있다. 월드컵 우승팀보다 진 팀의 개인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이 기이한 풍경. 특히 결승전 연장에서의 그의 퇴장에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불명예스런 퇴장이었지만, 지단을 향한 애정은 그 퇴장을 더 안타깝게 만들더라.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지단의 퇴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단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슬픈 일이다. 지단이 쓸쓸하게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월드컵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의 행위가 가식 없는 순수한 스포츠맨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지더라도 책략을 부릴 줄 모르는 고수의 모습으로.. 그런 의미에서 지단의 퇴장은 어느 대회 때보다도 소심했던 올해 월드컵의 피날레로 또한 적절했던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이 의견에 동감한다. 지단의 은퇴는 그저 유명 축구스타의 은퇴와 달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지단은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 수상자가 됐다. 서프라이즈~ 지단, 과연 넌 누구냐!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그닥 즐겨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단의 존재감은 내게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이번 월드컵이 그의 마지막 무대라는 사실을 알곤, 적잖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결승전에서의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지단’. 그렇다 지단의 은퇴경기다. ‘레블뢰’ 유니폼을 입은, 프로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몸짓과 발놀림은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월드컵서 ‘늙은 수탉’이니 ‘힘 빠진 호랑이’니 하는 프랑스 대표팀과 함께 지단의 경기력을 놓고 실망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상관없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전성기 때와 비교해 세월을 머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다. 

 

지단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zidane.fr)


그건 그가 바로 ‘지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단은 ‘축구선수’ 이상이다.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에트랑제’(이방인)였던 그는 여느 ‘셀러브리티’(유명인) 축구선수와 달랐다. 그는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스타플레이어였지만, 그저 셀러브리티에 머물지 않았다.


지단은 늘 어떤 이슈 앞에 선명한 자신의 생각과 지지를 호소했고, 나는 그 입장에 동의하고 자시고를 떠나 그런 모습이 좋았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이 최고의 축구선수로부터 나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물론 축구선수를 좋아할 때 ‘축구(실력)’만으로 좋아해도 전혀 무방하다. 그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만의 기호일 뿐이다.


어쨌든 내겐 지단을 좋아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차곡차곡 쌓였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비슷한 경우가 있는 걸 보고 내 편린들이 마냥 찌질한 것만도 아닌 듯싶은 안도감도..


 지단이 내게 처음 온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그땐 착한 축구실력을 가진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당시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쏘며 프랑스의 우승에 착한 기여를 한 그의 플레이는 인상 깊었다.


지단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지단을 새롭게 인식한 계기는 2002년 프랑스의 대선이었다. 당시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이 본선에 올랐다. 참고로 르펜은 98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을 “인위적으로 만든 다인종팀”이라거나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유색인이 너무 많다”며 뻘소리를 해 댄 바 있는 작자다.


여느 축구선수라면 르펜이 본선에 올랐다는 그런 사실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뭐 그런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어쨌든, 지단의 말은 (프랑스 대선과 상관이 없는 나임에도 왠지) 짜릿했다. “나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극우파의 본선 진출이 달갑지 않던 이들에겐 이 말이 얼마나 짜릿했을까. 일종의 대리만족. 지단은 르펜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그는  상대 후보인 자크 시라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포르투갈서 열린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결승전이라고도 불렸던 프랑스-잉글랜드 예선의 놀라움, 기억하는가. 전광판 시계는 멈추고 0-1 거의 패배 직전의 레블뢰. 추가시간 3분 지단의 드라마 같은 2골이 터지고 레블뢰의 극적인 역전승. 90분간 웃다가 마지막 3분, 지옥으로 떨어지면서 슬픔의 도가니탕에 푹 빠져버린 잉글랜드는 주장 데이비드 베컴의 페널티킥 실축을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의 극적인 역전과 지단의 활약상을 리와인드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단의 진가는 경기가 끝난 뒤 나온다. 그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경기가 끝나면 나는 늘 진 팀에 먼저 마음이 가게 된다. 나는 지금 데이비드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뛰는 베컴을 위로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승자로서의 자만보다 패자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았다. 승리에 겨워 날뛰는 모습도 좋다. 그만한 자격도 있고, 사람이라면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러나 지단의 말은 내게 참으로 인상 깊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연출된 것이라 힐난할지 몰라도 나는 그의 진심을 믿고 싶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에서 경기가 끝난 뒤 피구에게 건넸을 말도 익히 유추가 된다. 두 남자의 멋진 포옹.


세월은 흘러 2005년, 프랑스의 이주민들의 집단 저항. ‘폭동’이라 불러대며, 이주자들의 애환과 차별을 애써 무시하고, 프랑스의 분열을 얼토당토않은 ‘순혈주의’의 관점으로 짖어댔던 미친 작자들의 개념없음을 나는 기억한다.


지단은 말했다. “그들의 방화와 파괴 행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극우파의 ‘반이민’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 그를 기억한다. 그가 단순히 이민자의 아들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출신은 이방인이지만, 프랑스인들 누구도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것을 넘어선 명실상부한 ‘대표’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에 매년 1, 2위에 오르는 그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차별을 반대한다. 누구보다 차별이 가져올 폐해를 안다.


어쩌면 이번 지단의 퇴장과 관련한 구구한 추측 어쩌면 억측은 그의 태생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마에스트로’를 그라운드에서 몰아낸 이탈리아 마테라치의 입놀림을 놓고 독화술까지 동원되는 판국. 명예로운 은퇴무대를 장식하고 싶었을 지단이 ‘박치기’까지 해가며 퇴장당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며느리도 모른다. 각국의 언론들은 앞 다퉈 마테라치가 지단 가족을 모욕했다는 얘기, 인종차별 발언 가능성 등을 제시한다. 마테라치의 ‘입치료’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건 아직 알 수 없지만, 전 세계가 그의 퇴장을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시인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좀더 지켜봐야할 듯 싶다.

 

지단의 박치기 장면 캡쳐


지단의 ‘박치기’가 지지를 받는 이유?


지단은 인종차별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 왔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부모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2세다. 지단은 98년 월드컵 때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예선에서 상대 선수를 발로 밟아 퇴장을 당한 바 있다. 당시 밟힌 상대는 지단에게 “이 북아프리카 출신의 야만인아”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행했고, 지단이 이에 발끈했다고 알려졌다.


지단의 분노와 액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앞선 지단의 여러 말과 행동에 근거한다. 말 수 적고 묵직한 지단은 꼭 필요할 때 잊지 않고 입을 열고, 르펜을 반대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지단은 그와 관련,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법하며 인종차별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아킬레스건이다. 지단의 아버지는 알제리 산악지역 소수민족 출신으로 알제리의 독립투쟁 때 프랑스 편에 서서 싸운 전력 때문에 알제리 이민자들로부터도 냉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의 검열과 주류 언론의 은폐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1년 10월17일의 ‘파리대학살’이 정점에 있다. 프랑스 식민지를 벗어나 프랑스에 거주하던 알제리 이민자들에겐 통금령이 부여돼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차별이었다. 이에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주도가 돼 이를 해제해 달라며 수천명의 알제리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무력진압에 나섰다. 총기는 불을 뿜었고 200여명의 알제리인이 학살당했고, 센강으로 던져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무력충돌은 우연이었으며 단 3명의 알제리인만이 숨졌다고 ‘거짓’ 발표했다. 이 학살은 2차대전 중 나치에 협력, 유대인을 프랑스에서 쫓아냈던 경찰청장 모리스 파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차별·분리주의 정책의 되풀이. 프랑스 정부는 이를 쉬쉬하다가 1988년에야 학살극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패를 세웠다. 그러나 아직 단 한명의 학살 가담자도 정식 기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가 짊어진 식민지배와 학살의 부채감은 아직 남아있다.


지단이 인종차별에 대해 유난 민감한 것도 이런 점들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이유는 밝히질 않았지만, 그의 퇴장이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연관이 돼 있을 것이란 추정이 박치기가 지지받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지단이 아름다운 이유


그랬다. 지단은 그저 셀러브리티에만 그치지 않았다. 최고의 축구선수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친선대사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섰고 장애 아동을 돕는 모임에 성심껏 참여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축구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되지”라는 말에 반대하지 않고 그닥 거부감도 없다. 누구든 선수를 좋아하고 말고 하는데 자신만의 기준이나 취향만 있음 된다. 이건 옳고 그름도 아니고 그저 호불호다.


그래서 나는 베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박지성 등등도 나름 좋아한다. 그들은 축구 잘하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단과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나는 지단을 존중하고 그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인다. 지단은 내게 축구만이 아닌 ‘세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지단의 마지막 게임이기에 나는 어설프게도 프랑스가 승리하길 바랬다. 누가 이겨도 사실 상관없지만, 내가 존중하고 좋아하는 지단이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지 않았겠는가.

 

< 지단, 21세기의 초상 >의 한 장면.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단에 대한 다큐, < 지단, 21세기의 초상 >(Zidane, Un Portrait Du Xxie Siecle)을 봐주는 센스. 참고로 이 영화는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 단순하게 지단의 축구인생을 조명하는 다큐가 아니란다. 지난해 4월23일 비야레알과의 경기, 17대의 카메라가 동원돼 지단 한명만을 좇는 이야기(?).


공동 연출을 맡은 파레노감독의 말에서도 한 가지 팁을 얻자. “제작진은 21세기를 대표하는 한 남자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고 지단이 이 주제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데 착안했다. 지단은 축구팬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축구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고 인물이다. 기획 때부터 지단을 염두에 뒀으며 그가 수락하지 않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의 떠남이 아쉽지만, 그가 아예 우리 곁을 떠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 않은가^^;; 중원의 지휘자, 마에스트로.. 그를 명명하는 숱한 닉네임들은 오로지 지단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가 아니면 감히 누가 달쏜가.


박수칠 때 떠나라~


특히나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음에 더욱 믿음이 간다. 월드컵에서도 힘든 모습을 보이며 체력적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을 보였던 그였기에, 앞선 그의 은퇴 발언은 남달랐다.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2001년 현 소속팀 레알마드리드로 옮길 때 그의 몸값은 무려 7200만유로(860억원), 한해 연봉만 80~90억원에 이른다. 그저 한해 정도 더 뛰어도 엄청난 연봉이 보장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자신이 없어 은퇴한단다. 여느 찌질한 한국의 노블레스들과 다르다.


이럴 때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친다. “박수칠 때 떠나라”를 몸소 실천하는 그에게. 지단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이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을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퇴장은 한 시대 축구의 역사가 접히는 순간과도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