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 고현혜(1964~)
이런 엄마는 나쁜 엄마입니다.
뭐든지 맛있다고 하면서 찬밥이나 쉰밥만 드시는
옷이 많다고 하면서 남편의 낡은 옷까지 꿰매 입는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밤새 끙끙 앓는 엄마.
한 평생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왠지 죄의식을 느끼며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엄마.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딸에게 자신의 고통이 전염될까 봐
돌같이 거친 손과 가죽처럼 굳은 발을 감추는 엄마.
이런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두 헌신하고
더 줄께 없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뜬 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엄마는 정말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밥을 풀 때마다
고운 중년 부인의 옷을 볼 때마다
뒷뜰에 날아오는 새를 "그랜 마" 라고 부르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식 가슴에 못 박히게 하는 엄마는 정말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난 여러분께 나의 나쁜 엄마를 고소합니다.
고현혜, 타냐 고 시인은 미국 LA에 사는 코리안 아메리칸 1.5세 시인이다. 어릴 때 미국에 이민 가서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시를 쓴다.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리움이 많다. 재작년 서울에 왔을 때 타냐의 시에 나오는 ‘나쁜 엄마’는 사실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희생적인 ‘좋은 엄마’가 아니냐고 말하고 웃었다. 정말 왜 우리는 늘 자식들에게 죄의식을 느끼는 거지? 그들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게 미안해서 늘 죄의식을 느끼는 거 아닐까? 20세기식 엄마는 이제 가도 좋으련만.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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