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 이선관

풍월 사선암 2017. 5. 9. 23:20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 이선관(1942~2005)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가령

손녀가 할아버지 등을 긁어 준다든지

갓난애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빤다든지

할머니가 손자 엉덩이를 툭툭 친다든지

지어미가 지아비의 발을 씻어 준다든지

사랑하는 연인끼리 입맞춤을 한다든지

이쪽 사람과 위쪽 사람이

악수를 오래도록 한다든지

아니

영원히 언제까지나 한다든지, 어찌됐든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싸움이 아닌 모든 살닿음은 평화에 가깝다. 살을 돌처럼 만들어 쥔 주먹이 아니라 둥글고 부드럽게 편 손바닥이 이루는 위로와 안심. 오죽하면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의 정치적 악수나 포옹에조차 마음 한쪽이 덩달아 따뜻해질까. 리더들은 그런 감동을 국민에게 선사할 의무가 있다. 남과 북이 예외일 리 없다. 예외는커녕 악수를 영원히 언제까지나 한다든지한들 누가 나무라겠는가. 이선관 시인은 중증의 뇌성마비인 채로 고향 마산을 지켰고, 마산은 그의 꾸밈없이 곧고 맑은 시를 품어 돌봤다. 그는 자신의 장애보다 세상의 장애를 더 아파했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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