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한시(漢詩) 한 수

풍월 사선암 2017. 2. 5. 15:20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한시(漢詩) 한 수


지하철이 우르릉거리며 출발하는데 커피잔을 든 젊은 여성이 미동도 하지 않고 스크린도어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보는 것은 한시(漢詩).


未開躁躁常嫌遅 (미개조조상혐지) 피지 않았을 땐 노심초사 더디 핀다 싫어하더니

旣盛忡忡更怕衰 (기성충충경파쇠) 한창 피고 나면 전전긍긍 다시 질까 걱정을 하네

始識邵翁透物理 (시식소옹투물리) 이제야 알겠네 소옹의 사물의 이치 꿰뚫어 보아

看花惟取半開時 (간화유취반개시) 반쯤 피었을 때만 꽃구경했다는 것을...


 

조선 후기의 학자 유숙기(1696~1752)의 시 '다시 매화를 노래하다'(又賦梅)이다. '만족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관조하며'라는 한글 제목이 붙어 있다. 여성은 한시를 읽느라 전철을 떠나보냈다.

 

새해 들어 서울지하철 2~7호선 43개역 스크린도어 130곳에 한시 10수가 게재됐다. 한시가 등장한 것은 스크린도어에 시를 게재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처음이다. 한시는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이명학)이 제공한 27수 중 10수인데, 나머지 17수도 순차적으로 게재된다.


한시의 내용은 다양하다. 인생의 무상함, 남녀간의 애타는 그리움을 읊기도 하고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는 산골 노인의 모습을 노래하기도 한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는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독일문화원, 이탈리아문화원 등이 추천한 시도 추가됐다. 이제 한시까지 실었으니 대도시 서울의 땅 속 공간이 문학적 운치를 더하게 됐다. 충무로나 을지로 지하를 바삐 다니다 정약용, 서경덕, 서거정을 만나면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반가이 인사할 일이다.

 

 

선에도 애절하게 사랑했던 남녀가 있었다. 기생 계생과 유희경도 그런 짝이다. 계생은 매창(梅窓)이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전북 부안의 시인 기생이고, 유희경은 서울 출신 천민이었으나 시를 잘 짓고 예론에 밝아 사대부들과 교유하는 명사가 되었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임진왜란으로 유희경이 의병을 일으켜 전쟁터로 나가면서 소식이 끊어진 것이다. 시의 원래 제목은 '길 위에서 계랑을 그리며'(途中憶癸娘). 전쟁 중에 유희경이 계생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지었다. 사랑은 고금이 다르지 않다.


 

허목은 원래 시골에 숨어 살며 책을 읽는 산림거사였다. 그런 선비를 임금이 직접 초빙하는 제도가 마련돼 56세에 능참봉이 되었고, 81세에는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허목은 당쟁 속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 기복을 겪는다. 산에 은거하며 지냈다면 번민할 일도 없었을 것을, 번잡한 세상살이는 그의 마음에 깊은 갈등을 일으켰다. 원래 제목은 '인간관계를 신중히 하자고 스스로 다짐하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서거정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대 문장가였다. 원래 제목은 '내 자신이 우스워'(自笑). 무엇이 우스운가. 그는 20년 이상을 대제학으로 지내면서 외교문서 등 중요한 국가공문서 작성을 도맡다시피 했다. 게다가 행정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외교관 역할도 수행했다. 그러다보니 한가할 틈이 없었다. 병이라도 나야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요양을 해야 할 때도 지루함을 참지 못해 바둑을 두거니 시를 짓는다. 심신을 혹사시킨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쓴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또 붓을 들어 이 시를 지었다.


 

권상하는 이이, 김장생, 송시열을 잇는 기호학파의 성리학자다. 그가 사는 곳은 꽃피는 산골이다. 어느 날 달밤에 찾아오기로 한 손님이 있어 옷을 챙겨 입고 사립문을 열어 둔 채 그를 기다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밖을 내다 본다. 지하철역 플랫폼에 서서 정경을 떠올려보자.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화담 서경덕의 시 '유물'(有物)이다. 우주 만물의 근본에 대해 묻고 있다. 존재란 무엇인가? 화담은 18세에 대학(大學)을 읽고 '致知在格物', '아는 것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는 천지만물의 명칭을 벽에 써 붙이고 날마다 거기에만 정신을 쏟으며 사물의 이치를 알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헛된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지하철역에서라도 잠시 생각에 빠져든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대는 아는가?


[중앙일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한시(漢詩) 한 수 / 입력 2017.01.18 00:01

'행복의 정원 > 애송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 같은 사람 - 이해인  (0) 2017.05.05
나이가 들면 / 최정재   (0) 2017.02.25
행복의 얼굴 - 이해인  (0) 2017.02.04
작은 기도 - 이해인  (0) 2017.01.27
그냥 - 문삼석  (0) 2017.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