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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Pietà]

풍월 사선암 2015. 12. 31. 23:34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Pietà]

 

세계적인 조각가인 미켈란젤로(1475-1564)가 어느 날 대리석 상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그곳에 방치되어 있는 대리석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상점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 때 상점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대리석 덩어리는 그냥 가져가도 좋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것을 팔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도 그 대리석을 사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가게도 비좁은데 그 대리석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진짜 골칫거리입니다. 원하신다면 공짜로 그냥 가져가도 됩니다.”

 

상점주인의 허락을 받고 미켈란젤로는 그 대리석을 작업실로 옮겼다. 그리고 1년 후에 미켈란젤로는 자기 작업실로 그 상점주인을 초대하여 자신의 작품을 보여줬다. 그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놀라운 작품을 본 상점 주인은 그만 두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양손으로 품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숨을 거둔 예수님이 그녀의 무릎 위에 조용히 누워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걸작이었다.

 

당신은 이렇게 훌륭한 조각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습니까?” 상점주인이 물었다

 

내가 이 대리석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이 대리석 속에 누워 있단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하고 내 형상이 드러나게 하라. 나는 대리석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누워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단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그저 불필요한 부분을 끌로 조아내었을 뿐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일반사람들의 눈에는 쓸모없게 보이는 하나의 돌덩이라도 그것이 위대한 예술가의 손에 잡히면 훌륭한 작품으로 변신될 수 있다.상점주인은 그 대리석을 가게를 비좁게 만드는 돌덩어리로 봤지만 미켈란젤로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마리아와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높이가 171.6의 크기의 그 유명한 피에타(Pietà)로 로마 베드로 성당에 보존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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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Pietà]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커먼즈) 

 

작품 제작 배경과 당시의 위치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Basilica, Vatican City)에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피에타(Pietà)>는 대표적인 르네상스 조각이다. 이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라는 주제로 제작한 첫 번째 작품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그의 서명이 있는 작품이다. 또한 로마에서 그가 받았던 첫 번째 의뢰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1498년부터 1499년까지 약 2년 동안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French cardinal Jean de Billheres, 1400-1499)의 장례 채플을 위해 <피에타>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리석 조각이 완성되고 나서 처음에 있었던 곳은 교황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산타 페트로닐라 교회(Chapel of Santa Petronilla)였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주제의 기원

피에타(Pietà)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무릎에 놓여진 모습이다. 이 주제의 도상학적인 근원은 명확하지 않으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종교적인 이미지로 승화했다고 본다. 14세기 초 독일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 북유럽지역에서 유행했다. 15세기에는 프랑스에서도 조각이나 회화의 소재로 자주 다루어졌으나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만들었을 때,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이 도상이 유행하지 않았다.

 

작품의 특징과 의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는 피라미드형 구도로 그 정점에는 마리아의 머리가 있다. 아래로 퍼지는 마리아의 드레스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을 연상하게 한다. 그녀의 팔과 아들을 향한 시선은 인물들간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조각은 북유럽의 <피에타>와 무척 다르다. 그리스도를 보면 그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제외하고는 그의 죽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마리아의 무릎에 있는 그리스도의 육신은 죽은 사람의 몸으로 보이지 않는다. 죽은 지 2시간이 지나면 사체강직이 일어나기 때문에 죽고 나서 3시간이 지난 후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몸은 굳어진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이 조각에서 그의 몸은 딱딱한 시체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부드러운 몸처럼 보인다. 마리아의 옷 자락을 잡은 듯한 그리스도의 손가락, 완전히 감지 않은 듯한 눈, 웃고 있는 듯한 입가도 그가 죽은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듯하다. 또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진 마리아는 애도하기보다는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학자들은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피에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현한 데에 대해서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에 대한 애도를 재현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종교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마리아를 젊은 여인으로 묘사한 의도는 그녀의 영원불멸한 순결함이나 아버지이자 아들인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있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어린 시절,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모성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통해 그의 모성에 대한 이미지를 담아낸 것으로도 보았다.

 

작품의 서명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이를 다른 조각가가 만들었을 것이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 부분에 미켈란젤로가 이것을 만들었다고 새겨 넣었다. 그는 조각에 글씨를 새긴 것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하여 그 이후로는 작품에 이러한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작품의 보수 및 유지 

상을 이동하면서 부러진 마리아의 왼손가락 4개는 1736년 주세페 리오니(Giuseppe Lirioni)가 보수했다. 학자들은 이 보수가 상의 동작을 과장스럽게 보이게 한다고 했다. 1972521일에는 작품을 파손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병환자인 라즐로 토스(Laszlo Toth)가 성당에 들어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하면서 망치로 조각을 내리쳤다. 구경꾼들이 부서진 조각의 파편들을 가져가서 일부의 파편들만을 회수할 수 있었다. 결국 마리아의 코를 포함한 많은 부분은 사라졌다. 정성을 들여 복원한 작품은 성 베드로 성당에서 문과 성 세바스찬 제단 사이에 있는 입구의 오른편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강화 아크릴 유리로 보호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