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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5) | 이탈리아 피렌체·나폴리·폼페이·아말피]

풍월 사선암 2015. 3. 26. 01:01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5) | 이탈리아 피렌체·나폴리·폼페이·아말피 

地靈·기운=가이아 동서양 정신세계는 비슷베네딕트수도원 地氣 넘쳐

 

화기와 수기동양풍수 균형 갖춘 피렌체, 르네상스 주도

 

베네치아는 르네상스 이전부터 이미 번성해서 해상제국을 이루었던 제국이었지만,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주역이라는 점에서 두 도시는 다르다. 베네치아는 바다에서, 피렌체는 육지의 내륙에서 번성했다.

 

동양의 풍수에서 볼 때 바다는 밖으로 기운이 퍼지는 작용을 하고, 내륙인 피렌체는 기운을 가운데로 모아 주는 지세이다. 더군다나 피렌체가 있는 이탈리아의 중부 지역 일대 토스카나 지방은 들판이 넓다.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한 복 받은 지역이었다.

 

 

동양학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미녀가 가야금을 연주하는 지세인 옥녀탄금형에 해당하는 소렌토의 아늑한 지형이 안정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문화는 식후사(食後事). 밥 먹고 난 이후다. 밥 못 먹으면 문화는 없다. 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치스러워져야 문화가 발달한다. 피렌체의 지세는 곡물 생산이 풍부한 평야지대였다는 점이 문화의 기반이 된 것 같았다. 더군다나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세가 피렌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도읍지의 조건을 갖췄다.

 

보통 동서남북인 자오묘유(子午卯酉) 방향이나 그 사이에 해당하는 인신사해(寅申巳亥) 방향에 산이 포진하고 있으면 군왕이 도읍지를 정할 만한 터라고 본다. 그 안에 넓은 평지가 있으면서 사방에 산이 포진하고 있으면 동양에서는 수도가 들어설 만한 도읍지의 풍수라고 봤다. 경주가 이런 산세이고, 개성, 평양, 전주가 그렇다.

 

베네치아는 단결 위해 잘난 인물 경계

 

거기에다가 피렌체 주변 산세에는 악살(岳殺)이 보이지 않는다. 악살은 험난한 바위산이다. 편안한 토산(土山)들이다. 악살은 종교적 영성을 개발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기운이 강해서 편안한 기운을 주지는 않는다.

 

피렌체 중심에는 아르노강이 흐른다. 아르노강이 없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반드시 강물이 흘러야 도읍지가 성립된다. 북경은 큰 강물이 없이 성립된 대도시라 문제가 있다.

 

주변의 산세와 강물, 장풍득수(藏風得水)를 갖춘 터가 피렌체였다. 도시에 들어서서 드는 느낌은 안정감이었다. 급박한 느낌이 없었다. 오래된 도시에서 풍기는 느낌이 왠지 모를 안정감이다. 화기와 수기가 균형을 갖춘 도시에서 생태적인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문화가 꽃피운다 

 

1 폼페이의 베수비오산과 앞쪽 바다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베네치아는 바닷물에서 오는 짠 기운, 즉 염기(鹽氣)가 많아서 인간의 섬세한 감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소금에서 오는 염기는 신장(腎臟)의 수기를 보충해 줘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해주는 이로운 작용도 있지만, 지나치면 사람 마음을 거칠게 만든다. 바닷가에 살면 강건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거칠게 만들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에너지가 고갈된 사람은 일정기간 바닷가에 사는 게 좋다. 하지만 장기간 거주하는 것은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2 높지도 낮지도 않은 피렌체는 주변 산세와 중앙에 흐르는 강으로 도읍지의 조건을 충분히 갖춘 도시다. 3 피사의 사탑 주변에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는 가운데 혜초여행사 윤익희 이사가 사진 속에서 넘어지는 피사의 사탑을 받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내륙인 피렌체는 동양적인 풍수의 입지조건에 부합되는 곳이었다. 베네치아는 단결을 위해서 잘 난 인물들을 경계하는 문화였지만, 피렌체는 인물과 천재들을 후원하고 키워냈다. 각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피렌체의 메디치가에서 후원했던 인물들이 다빈치이고, 미켈란젤로 아닌가. 그리고 이 피렌체를 대표하던 집안이 메디치 가문이고, 이 메디치 가문은 경주의 최부자집과 같은 집안이다. 최부자집은 원래 양반이었지만 메디치 가문은 장사를 하던 상인집안이다. 귀족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상인이 지배하는 사회로 넘어가는 단초를 제공한 집안인 것이다. 유럽에서 상인이 문화의 주도권을 쥐고 리드해 나간 경우가 메디치 가문이고, 이 상인계급이 성취해 낸 결과가 르네상스 아닌가. 상인이 문화의 주도권을 쥐게 된 도덕적인 배경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깔려 있었다.

 

주역(周易)의 문구대로 표현하자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다. 적선을 한 집안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 메디치 가문이 적선을 해서 발생한 경사가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가 같은 상인계급이 주도권을 쥐었던 베네치아가 아니고, 피렌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는 풍수적 관점에서 내륙의 섬세한 기운이 바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바다에서 섬세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다는 진취성이고, 내륙은 섬세한 예술혼의 토양이다. 피렌체를 보고 동양의 도읍지와 그 풍수조건이 완전히 같다는 데에 놀랐다.

 

나폴리! 이탈리아 반도는 남쪽으로 내려가니까 지세가 달라졌다. 중부지역보다 산세가 가팔라지는 것이다. 높은 산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도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악산(嶽山)들이다.

 

이런 바위산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탈리아 중부보다는 남쪽에서 훨씬 강골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현지 가이드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탈리아는 남부지역에서 장군들이나 강성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가리발디 장군도 남쪽 출신이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역사에서 마피아가 등장한 이후 역대 마피아의 보스들이 태어난 지역도 역시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지역이다. 독재자 무솔리니도 남쪽 출신 아닌가?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

 

나폴리 쪽 조금 못미처 바위산이 하나 보인다. 산세가 힘이 있고, 앞에도 안산(案山)이 받쳐 주고 있어서 기도발이 있어 보이는 산이다. 안산이 없으면 기운이 샌다. 기운을 못 빠져 나가게 모아 주는 역할은 안산이 한다. 한국 같으면 저런 산 7부 능선쯤에 절이 들어설 지세였고, 그 절에서 고승이 많이 배출되는 풍수다.

 

저게 무슨 산이요? 영발(靈發) 있어 보이는데요?”

 

저 산 정상 부근에 건물이 하나 보이죠? 그게 유명한 베네딕트수도원입니다. 얼마 전에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유명한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멀리서 눈짐작으로 볼 때 대략 1,000m급의 산으로 보인다. 그 주변 일대에서 가장 지세가 좋고, 기운이 뭉쳐 있는 곳이다. 베네딕트수도원은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수도원이다. 침묵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이런 위치에 어떻게 수도원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이탈리아 사람들도 풍수를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기도를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알게 되는 것일까?

 

폼페이는 베수비오산의 정기 받는 도시

 

4 베수비오산의 화산폭발로 폐허가 된 폼페이 유적을 참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5 폼페이 유적 현장에서 현지 가이드가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풍수는 동양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정신세계에 들어가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알고, 느끼게 되는 것이 그 터에서 품어져 나오는 신성한 기운일 것이다. 지기(地氣)를 서양 사람들은 가이아’(地母神)라고 표현했다. ‘가이아는 지령(地靈)을 서양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양도 동양과 똑같이 알고 있었다.

 

단지 기독교가 로마 이래로 서양문명을 통일한 뒤에는 이러한 지령이나 가이아와 같은 개념들이 지하로 잠복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일신교(一神敎)의 통일성을 헷갈리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 높은 산세에서 나오는 지령이 종교적으로는 베네딕트 수도원과 같은 도인(道人)들을 양성하는 쪽으로도 작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위에서 나오는 강력한 기운들은 마피아를 양성하는 쪽으로도 흘러갔다.

 

나폴리 일대는 마피아의 본고장이다. 기운이 센 지역은 장군 아니면 조폭, 아니면 도인이 나온다. 가방끈이 길면 장군이 되고, 짧으면 조폭 오야붕이 된다.

 

필자는 버스로 이동하면서 현지 가이드를 귀찮게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 이름을 계속 물어보기 때문이다. “저산은 무슨 산이요, 저 산 밑에 있는 수도원은 어떤 수도원이요?” 그러다가 이번에는 또 물었다.

 

1 베수비오산 화산폭발로 사체로 굳은 당시 모습이 발굴 현장에서 발견돼,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2 베수비오산 화산폭발로 당시 마차 다니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마피아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요?”

 

“‘불쌍한 내 딸이라는 뜻입니다. 남부 지역은 고대부터 외세의 침입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침략자들이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 들어와 젊은 여자들과 딸들을 겁탈했죠.

 

겁탈 당하는 딸들을 보면서 그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르짖었던 절규가 바로 마피아라는 단어였습니다. ‘불쌍한 내 딸아!’라고 절규했던 것이죠. 그래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생겨난 무장조직이 마피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마피아는 자기를 지키고, 딸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기 위한 자위대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자기 스스로 안 지키면 누가 지켜줄 것인가? 믿을 데는 자기밖에 없고, 그러자니 주변 동지들과 피를 나누는 맹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는 수백 년간 이 마피아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정부 공권력을 대신해서 마피아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 마피아를 때려 부순 인물이 독재자 무솔리니라고 한다.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피아 소탕 작업에 들어갔다. 마피아들이 무솔리니에게 쫓겨나면서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했던 장소가 바로 산타루치아 부두였다. 미국으로 가는 배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나폴리 해안의 항구가 산타루치아다.

 

노래 산타루치아는 마피아가 정든 고향땅을 떠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마피아의 노래가 산타루치아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사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미롭고 낭만적인 노래가 바로 조폭집단인 마피아 고향 노래라니 말이다 

 

3 폼페이 당시의 원형극장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둘러보고 있다 

 

나폴리는 그 지세가 유(U)자 형태의 커다란 만()이다. U자의 가운데 지점에 있는 산이 베수비오산이다. 나폴리 일대의 진산(鎭山)이다. 이 산이 2,000년 전에 화산폭발을 일으켰다는 것 아닌가. 나폴리에서 인물이 나온다면 이 베수비오산의 정기를 받고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베수비오산이 잘 보이는 곳에 고대인들은 도시를 지었다고 보인다. 그 도시가 폼페이다. 폼페이는 베수비오산의 정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택한 지점이다.

 

화산재에 그동안 덮여 있었기 때문에 2,000년 전의 주택 내부 구조와 도로, 여러 가지 도시 시설들을 타임캡슐처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도로에는 돌들이 깔려 있고, 주택 구조들은 오늘날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발전된 구조였다. 2,000년 전에 서양 문명이 이런 수준에 도달해 있었단 말인가?

 

나는 폼페이의 유적을 보고 그동안 지니고 있었던 동양문명 우월론이 흔들렸다. 2,000년 전에 이런 정도의 도시 규모와 시설, 그리고 정밀한 도시계획을 할 정도의 문명이라면 정신세계와 문화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수준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수단을 크게 보면 건축미술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미술 수준을 후세에 알려 주고 있고, 폼페이는 건축 수준을 알려 주는 유물이다. 폼페이는 베수비오산이 병 주고 약 주는 산이었던 것이다. 모든 영적인 재능과 창의력도 베수비오의 화기(火氣)에서 왔고, 비극적인 재앙도 베수비오의 화기 폭발에서 왔으니까 말이다.

 

소렌토는 옥녀탄금’(玉女彈琴) 지세

 

폼페이 유적을 둘러보고 버스로 1시간쯤 이동해 가니까 휴양지로 유명한 아말피해안이 나타난다. 해안절벽에 도로를 내고 별장들을 지었다. 아말피에서 소렌토까지의 해안 절벽에 낸 도로의 길이는 20km 정도. 날씨는 온화하고 바다는 푸르고, 해산물은 맛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온 서양 문명의 풍요를 체감할 수 있는 풍광이다.

 

인간은 이런 풍광을 보면서 살아야지 제대로 사는 것이구나!’ 느꼈다. 소렌토는 특별했다. 평소 자주 들었던 이탈리아 노래가 돌아오라 소렌토로아닌가. 왜 돌아오라고 했는가를 보여 주는 아름답고 풍요롭고, 삶의 모든 긴장을 풀어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소렌토의 지세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옥녀탄금’(玉女彈琴)이다. 아름다운 미녀(옥녀)가 가야금을 연주하는 지세였던 것이다. 소렌토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보니까 옥녀가 머리를 잘 감아올리고 비녀를 꽂고 있는 형상이다. 약간 둥그런 형태다. 바위 봉우리인데 바가지처럼 둥그런 형태를 발한다. 이런 봉우리를 풍수에서 옥녀봉이라고 부른다. 현지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이 옥녀봉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해안가 절벽에서 멈췄다. 해안가의 깎아지른 절벽이 또한 절경이었는데, 이 해안절벽은 가야금에 해당했다. 옥녀가 무릎에 가야금을 놓고 연주하는 형국이 전체 소렌토의 모습이다. 소렌토는 옥녀가 산신령이니까 여신이 주재한다. 기독교에서는 마리아라고 나타날 것이다. 불교라면 관세음보살일 것이고. 그리스 신화에 보면 사이렌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나가던 뱃사람들을 홀리던 사이렌이 바로 이 소렌토 절벽에 살았을 것이다. 사이렌이 소렌토로 변했다고 한다. 옥녀가 연주하던 가야금 소리를 듣고 뱃사람들이 헷갈렸던 것이다.

 

글·조용헌 칼럼니스트·동양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