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3) | 이탈리아 베네치아]
동서고금 막론하고 치수하면 재물 쌓여… 해상도시 베네치아가 그랬다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와 현지답사…1,300년 전 북방 피란민들이 만든 인공섬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서 두바이까지 비행기로 약 9시간. 두바이 공항에서 베네치아행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다시 4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 공항 한쪽 귀퉁이에 평소 휴대하고 다니는 요가매트를 깔고 ‘사바 아사나’(누워 쉬는 자세)를 취하면서 4시간을 견뎠다. 아랍에미리트 비행기를 갈아타고 7시간 걸려서 도착한 곳이 베네치아(베니스) 공항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4~5년은 걸리고 중간에 질병에도 걸리고, 도적떼에게 노잣돈을 털리면서 가야 할 거리를 비행기로 열 몇 시간 만에 날아가는 시대다.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는 1,3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발생한 피란민들이 산호섬들이 모여 있는 베네치아로 피란을 왔다. 처음에는 판자촌 상태였다.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수심이 얕은 이 지역에 인공섬을 만들어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인공섬이 112개이다. 자연섬은 원래 6개밖에 안 됐다고 한다. 어떻게 물 위에 인간이 이런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악조건에 지상 최고로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해상 도시 베네치아에는 약 1,3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상 최고의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베네치아는 마치 도시가 물에 잠긴 듯하다.
베네치아는 10만 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아야 마땅한 도시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문화유산이고, 박물관이고, 미술관이다. 그만큼 독특한 도시다. 서양문명의 위대함이 이 베네치아 건축과정에 있다. 인간의 이상을 가시적으로 구현한 도시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석조 신전 건축 이래로 전승되어 온 서양건축의 전통, 즉 기하학적인 계산과 건축적 스케일, 견고함, 재력, 돌을 다루는 노하우, 그리고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낸 업적이다.
베네치아는 뻘밭에 긴 목재를 박아서 지반공사를 했다. 나무 기둥을 박는 일은 험난할뿐더러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공사였다. 그래서 베네치아의 집들은 무게가 덜 나가는 목재로 내부 공사를 한다. 집 무게가 무거워 밑으로 가라앉을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물론 집의 외관은 대리석이지만 말이다. 현재도 계속 낡은 목재를 바꿔 끼우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치밀한 계산에 의한 통제, 동양보다 앞서
관광버스는 베네치아 진입이 안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배로 바꿔 타고 시내로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교통 혼잡 예방차원이다. 육지와 베네치아를 오가는 수상 택시(배)들의 수도 정해져 있고, 오고 가는 시간대와 코스도 정해져 있다. 오후 7시가 넘어서면 아무 배나 다닐 수 없다. 늦은 밤 배의 모터 소리에 도시의 고요함이 깨지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의 교통과 물류가 치밀한 계산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떼거리로 몰려오는 관광객들에게 도시가 치이지 않고 이 정도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치밀한 계산에 의한 통제, 이것이 동양보다 서양이 앞선 사회시스템이다. 서양 문명이 가지고 있는 정돈된 쾌적함, 이것이 동양에 부족하다. 치밀한 계산과 이 치밀한 계산에 대한 대중의 동의와 합의, 그리고 어렵게 이루어낸 이 합리적 합의를 깨는 독재자에 대한 시민의 응징, 응징에 따른 피의 대가, 이런 것들이 베네치아에 깔려 있다.
형이상학은 동양에도 유·불·선이 있다. 삼천대천세계를 이야기했던 정신세계의 상상력은 서양에 밀리지 않고 동양이 오히려 앞선 면이 있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으로 들어가면 동양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형이상학이 고준하다 하더라도 형이하학적인 사회 시스템이 받쳐 주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사회 시스템의 장점은 토론이 필요 없다. 눈앞에 바로 보인다.
◀1 카페도 물 위에 만들어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2 베네치아의 주요 운송수단인 배를 타는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베네치아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치수(治水)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자에서 정치(政治)의 치(治)는 원래 의미가 ‘물(氵)을 높은 언덕(台)에 바라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동양에서 말하는 정치와 치자(治者)의 능력은 물을 잘 관리하는 치수 능력에 달려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베네치아야말로 치수에 성공한 곳 아닌가? 베네치아가 바다 위의 산호섬 군락지와 여기에 말뚝을 박아 인공 섬을 만들어서 기상천외한 수상도시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태풍과 해일이 없는 혜택 받은 자연조건도 있었다. 여름에 태풍이 몰아닥치면 수상도시는 불가능하다. 일본처럼 해일이 몰아닥치면 이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노력, 인간의 노력이 바다와 물을 극복해 낸 그 지혜와 위대함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베네치아가 치수를 잘해서 얻은 이득은 무엇인가? 해상무역으로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수백 년간 지중해 해상 무역권을 장악했다. 동로마제국이 4세기 중반에 이스탄불로 옮겨간 이후에 이탈리아반도와 세계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까지의 해상 교역은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장사였다. 이스탄불이 아시아의 끝이라고 본다면 중세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을 베네치아가 장악한 셈이다. 빠르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배를 개발했고, 베네치아에서 이스탄불까지의 최단거리 바닷길도 개척한 결과다. 바다를 제압할 수 있는 배의 구조, 돛의 형태, 뱃사람의 자질 등의 인적, 물적 개발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동양 풍수에서 물은 재물로 본다. 강이나 호수, 때로는 바다를 끼고 있으면 재물로 본다. 서울 한남동, 압구정동도 한강이 끼고 돈다. 풍수적으로 돈이 모이는 지점이다. 안동 하회마을에 낙동강물이 돌아가면 돈이 모인다고 보았다. 베네치아는 한강보다도 수천, 수만 배의 재물을 모았던 물 위에 서 있다. 물을 끼고 있어야 돈이 된다는 풍수의 철학을 베네치아처럼 잘 보여 주는 곳도 없다.
◀베네치아의 이동수단은 당연히 배다. 집집마다 배들이 문 앞에 정박해 있다.
왜 물이 돈이 되는가? 베네치아는 장사로 보여 주었다. 장사는 배로 하는 것이다. 장사는 결국 싼 데서 물건을 사다가 비싼 데서 파는 일이다. 핵심은 물건을 나르는 데 있다. 육상의 수레에 물건을 얼마나 싣겠는가? 대량의 물류는 바다의 화물선을 통해서 가능했다. 세계사를 보면 바다와 배를 통해서 돈이 많이 남는 장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중국에서의 치수는 홍수를 예방하고 농사에 도움을 주는 물을 관리하는 일이었다면, 베네치아에서의 치수는 해상무역을 해서 떼돈을 버는 일이었다. 농업국가의 치수와 상업국가의 치수는 달랐다. 농업의 치수는 큰돈이 안 되지만, 상업의 치수는 큰돈이 되었다. 베네치아는 벌어들인 돈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뻘밭에 나무 기둥을 때려 박는 난공사를 감행할 수 있었고, 대리석을 날라와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 “산마르코광장은 천상의 정원” 감탄
돈이 있으면 상상력도 풍성해지고 자신감도 생긴다. 사고의 폭이 자유로워진다고나 할까.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은 나폴레옹이 ‘천상의 정원’이라고 감탄할 정도의 아름다운 건축이다. 아름다운 최고의 건축가들을 동원했던 것이다. 엄청난 재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역사이다.
베네치아를 관통하고 있는 운하의 형태도 흥미롭다. 풍수에서 물은 직선으로 흐르면 좋지 않다고 본다. 직선이 되면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다. 곡선으로 흘러가야만 천천히 간다. 빠르게 흐르면 운하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인다는 말이다. 좋지 않다. 천천히 물이 흘러가야만 주변에 영향을 덜 미친다. 그래서 활 모양이나 또는 S자 형태로 흘러가는 것을 선호한다.
베네치아 시내를 관통하는 운하의 모양을 공중에서 쳐다 본 모습은 신기하게도 S자 형태이다. 좀더 자세하게 묘사하면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때 알파 형태의 모습이다. 열쇠구멍 형태라고나 할까. 흥미롭게도 운하의 형태가 동양 풍수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물의 흐름과 일치한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걸 알고 이렇게 한 걸까. 아니면 모르고 우연히 이렇게 한 걸까? 현지 안내인에게 물어보니까 외적이 베네치아에 쳐들어오면 알파의 양쪽 끝, 즉 입구와 출구 쪽만 봉쇄하면 침입한 배는 독 안에 든 쥐처럼 갇힌다는 것이다. 전투에도 유리한 형태라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은 항상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붐빈다.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대동맥 운하가 S자 또는 알파 형태라고 한다면, 이 대동맥 운하와 연결된 실핏줄 운하가 또 있다. 이 실핏줄 운하만 해도 135개라고 한다. 베네치아는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약 450개나 되니까, 그 다리 사이를 실핏줄 운하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마치 신경세포처럼 복잡하다. 외부인은 이 미로처럼 얽힌 운하의 구조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어디로 들어가면 어디가 나오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지 토착인들만 파악이 가능하다.
이것도 전쟁 시에는 외부 침입자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는 충분한 장치였다.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고 허둥지둥하게 세세한 운하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지금도 이 운하 사이를 다니는 수상택시는 운전 면허증이 있어야만 운행이 가능하다. 베네치아의 대동맥 운하 형태와 실핏줄 운하 모습은 동양의 풍수적 원리에도 부합될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전략적 방어와 공격에도 유리한 구조라고 여겨졌다.
베네치아의 땅값을 물어보니 대동맥 운하의 주변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평당 2억 원 정도. 그렇지만 팔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설령 매물이 나오더라도 베네치아 시에서 거의 구입한다고 한다. 시 전체가 문화유적이기 때문이다. 건축물의 건축연대를 물어보니까 주로 700년 전에 대대적으로 건축했고, 거기에 500년 전쯤에 낡은 부분을 추가 건축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300년 전쯤 건축이 증축된 형태이다. 현재 남아 있는 베네치아 건축물들은 700년, 500년, 300년 전의 건축이 중층적으로 섞여 있다. 건물 하나에도 이 3개 세대의 건물들이 덧대어 있다.
운하 흐름이 동양 풍수와 그대로 일치
동양 풍수에서는 물길이 다르면 마음도 달라진다고 본다. 무슨 말인가? 삼 수(氵)에 같을 동(同)자가 합해져 동(洞)이 되었다. 같은 물을 먹는 사람이 같은 동네라는 뜻이다. 물길이 다르면 다른 동네가 된다. 대체적으로 물길이 다르면 교류가 적다. 이를 베네치아에 적용해 보면 운하의 물길이 이렇게 거미줄처럼 다르면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로 뭉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물길이 다르면 독립적인 생활이 된다. 베네치아는 내 집과 네 집 사이에 작은 운하 물길로 갈라져 있지 않은가. 이런 수상 도시에서 단합이 어려울 수 있다. 단합이 어려우면 공동체에 문제가 된다.
◀베네치아의 운송수단인 배들이 일제히 정박해 있다. 육상으로 치면 일종의 주차장 개념이다.
이 단합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베네치아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하나는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시민들이 추려서 밖으로 추방하는 제도를 사용했다. 너무 똑똑하면 독재를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똑똑한 인물은 주변 사람들과 잘 화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베네치아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을 외부로 추방하는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피렌체는 인재를 양성하는 정책을 썼다고 하는데,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내륙도시인 피렌체와 수상도시인 베네치아는 정반대 정책을 썼던 것이다. 베네치아가 시민들의 단합을 위해 취했던 또 하나의 정책은 조정경기였다. 조정은 여러 명이 합심해서 노를 저어야만 빨리 속도를 낼 수 있는 구조다. 마음이 일치되지 않으면 경기에서 패한다.
베네치아시는 조정경기를 정책적으로 장려했다. 이건 무엇인가. 서로 단합하고 합심해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이치를 몸으로 체득하고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조정경기가 초창기부터 가장 유행한 지역이 베네치아다. 노를 젓다 보면 구성원 간의 같은 호흡과 다른 호흡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끼고 실감한다.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연습을 하기에 조정 경기만 한 게 없다. 같은 배에 타고, 같이 노를 저어야만 해전에서도 승리한다. 스피드가 나와야만 무역에서도 기선을 잡을 수 있다. 전투력과 무역의 경쟁력은 배에서 나왔고, 이 배를 젓는 노꾼들의 파워는 곧 일치단결하는 멤버십이었던 것이다. 베네치아는 잘난 사람 추방제도와 조정경기를 통해서 단합을 이뤄냈다. 단합은 곧 정치력이다. 정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다재는 다처’ 원리, 베네치아가 보여 줘
베네치아가 이처럼 해상무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자 나타난 문화 가운데 하나가 바람기였다. 돈이 많으니까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왔고, 성도덕이 문란해졌다. 남자가 돈 있으면 하는 일이 여자 만나는 일이다. 베네치아는 바람기의 부작용을 커버하기 위해서 가면무도회가 발전했다고 한다. 남녀가 만날 때 서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가면을 쓰고 공식장소에서 만나는 것이다. 가면과 가면무도회가 발전한 지역이 베네치아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산마르코 광장 주변에 가면 파는 가게가 많다. 울긋불긋하고 갖가지 재미있는 모양의 가면들은 수백 년 전부터 베네치아 특산품이었다. 500년 전에도 유럽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베네치아에 들르면 사가는 것이 가면이었다. 사주명리학에서 ‘다재(多財)는 다처(多妻)’다. 돈이 많으면 여자도 많게 되는 이치를 베네치아가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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