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7)ㅣ터키 에페스 아프로디시아스]
실크로드 시·종점이자 동서양 문명 접점지, 터키 역시 볼만했다!
조용헌 박사와 9박10일 중서부 일주… 그리스신화 내용 그대로 나와
역사와 신화(神話)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 시리즈를 시작한 뒤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를 두루 돌아보면서 받은 느낌은 소설가 이병주의 아포리즘(aphorism) 그대로였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褪於日光則爲歷史, 染於月色則爲神話)” 그의 소설 <산하>에 나오는, 그가 가장 자주 쓰던 격언 중의 하나였다. 일광의 역사와 월색의 신화. 추상적으로 구분하면 그렇다. 구체적으로는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이 사실적, 고고학적으로 검증이 되면 역사가 되고, 그냥 묻혀 있으면 신화적 상상력만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다. 즉, 밝혀진 사실을 역사학자들이 역사적으로 팩트(fact)로 확인한 것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다르게 표현해서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되고, 패자의 기록은 신화가 된다는 말도 된다. 좋고 나쁘고의 가치판단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고대도시 에페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의 매일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로 붐빈다.
동양학은 다소 신화적 요소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팩트)과 보이지 않은 것(픽션)을 연결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를 믿는다. 물론 역사적으로 검증된 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동양학으로 고대문명을 보면 역사학자들이 보지 못한 팩트와 픽션으로 하나의 새로운 문명적 해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것도 한국의 대표적인 동양학자인 조용헌 박사의 시각을 통해서.
20여 명의 참가자와 조 박사와 함께 고대문명 발상지인 터키로 향했다. 흔히들 여행을 다닐 때 최종적으로 터키를 다녀오라고 한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고, 터키를 보고 나면 다른 지역은 시시해서 못 간다고 할 정도다.
터키는 지중해와 페르시아만을 두루 아우르는 고대문명 발상지이자 그리스문화권이었다. 아니 그리스와 터키는 동일문화권이었다. 그리스문화권이라는 의미는 터키를 지칭하는 ‘아나톨리아(Anatolia)’라는 개념이 이를 반증한다.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로 ‘태양이 솟는 곳’이란 뜻인 아나톨(Anatole)에서 유래했다. 아나톨리아는 태양이 솟는 곳에 있는 땅이란 뜻이다. 그래서 지중해 너머 유럽에 있는 그리스에서 아나톨리아를 소아시아라고 부르며, 터키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그 역사는 무려 1만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의 단군신화보다 더 오래된 역사다. 지중해와 육상으로 서로 맞대고 있는 그리스와 터키는 둘도 없는 앙숙이다. 피도 섞이고 지명도 섞이고 생활양식도 섞이고 문화도 섞인 두 국가가 앙숙이라니…. 아마 수천 년에 걸쳐 서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반복되면서 쌓인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자세히 설명할 부분이기도 하다.
◀고대 3대 도서관에 속했던 에페스의 셀수스 도서관의 웅장한 모습. 입구를 떠받치는 기둥 사이마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한 명씩 동상으로 조각해 놓았다.
터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고, 고대 샤머니즘과 기독교·이슬람이 공존하며, 유럽과 아시아가 동시에 있으며,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로서 문명사적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지역이다. 특히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은 성서에 언급된 최초의 강이기도 하며, 두 강 사이에 인간의 첫 거주지인 에덴동산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도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란 뜻이다. 여기에도 그리스신화가 전한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메소포타미아에게는 티그리스(Tigris)와 유프라테스(Euphrates)라는 이름의 언니들이 있었다. 그녀는 3자매 중에 가장 추했으나 아프로디테의 축복을 받아 자라면서 미의 여인으로 변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아름다움에 반한 세 명의 젊은이가 동시에 청혼을 하자 고민 끝에 그녀는 공정한 심판자로 보코로스(Bochorus)에게 선택을 맡겼다. 보코로스는 메소포타미아를 선택했다. 하지만 다른 두 자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다투다 결국 모두 죽어버렸다는 신화다.
◀에페스에 있는 아드리안 황제의 궁전은 지금 복원 중이다.
고대 4대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일원
실제로 터키에서는 그리스신화와 유사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 똑같은 지명도 수두룩하다. 특히 신전들은 마치 그리스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첫 목적지인 에페스(Efes)도 마찬가지다. 에페스는 아테네의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세운 고대도시다. 안드로클로스는 아테네에서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델피 신전에 신탁(神託)을 한다.
예언자는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면 번성할 것”이라는 신탁을 전한다. 그는 바다(지중해)를 건너 어느 곳에 도착, 물고기를 잡아 구워먹고 있었다. 마침 그때 숲에서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죽이게 된다.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안도로클로스는 바로 그곳에 도시를 세운다. 그때가 BC 7세기경이고, 그 도시가 바로 에페스다. 라틴어로는 에페수스(Ephesus). 성경에서 에페수스로 나오는 그곳이다.
BC 6세기경이 에페스의 예술과 과학의 황금기였다. 그 즈음 건축된 아르테미스 신전은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문헌상으로 당시까지 대표적인 세계 7대 불가사의 건물로 전한다.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에페스인들에게는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 받던 대상이었다. 또한 순결과 자애의 처녀신으로도 통했다. 이후 태양신 아폴론에 대비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로 거듭났다.
고대도시 에페스로 들어서자 완전한 고대도시 하나가 폐허가 된 채로 보존돼 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하다. 상수도와 하수도, 목욕탕과 공중화장실, 아궁이 등 형체를 그대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앉아서 볼 일 보면서 그 밑으로는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이 씻어 내려가는 구조로 만들었다. 고대 계획도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졌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도시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과 물, 그리고 방어진지였다. 에페스는 방어진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 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은 진지 같았다. 단지 앞쪽으로만 길이 나 있어 출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한 멘데레스(Menderes)라는 강은 항구까지 불과 500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강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시 전체에 따뜻한 물과 난방을 공급한 아궁이에 땐 나무들의 누적물과 토사 등이 강을 덮어버렸다고 한다. 물이 없어지자 도시는 서서히 기능을 잃었고 결국 망했다고 한다.
에페스엔 유곽과 도서관이 마주보고 있어
에페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다. 물론 아르테미스 신전과 그 앞에서 복구하고 있는 아드리안 황제의 궁전도 볼만 했지만 셀수스(Celsus)도서관과 도서관 앞 지하통로로 통하는 유곽(遊廓·사창가)이다. 유곽 광고도 버젓이 길에서 하고 있다. 광고 표시도 희한하다. 방향을 가리키는 듯한 왼쪽발 모양과 나란히 오른쪽에 여자 얼굴, 그 위에 ‘+’, 그리고 거기서 45도 왼쪽 위로 하트표시와 구멍을 나란히 새기고 있다.
◀에페스에 있는 유곽을 찾아가는 표시이자 유곽 광고
그게 바로 유곽 광고다. 설명을 듣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당신의 상처 난 영혼을 치료해줄 아름다운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도서관과 사창가.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왜 이런 구조를 만들었을까? 그리스 고린도에서도 고대 여성 성직자가 매춘을 통해 교회 운영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것과 혹시 관련 있을까? 당시까지는 성직자와 매춘부가 구분이 없었을까. 지금의 기준으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주변 지형만 살피고 있던 조용헌 박사가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당시까지 성(聖)과 성(性)이 구분이 별로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성성불이(聖性不二)’라고나 할까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스트레스 쌓이면 바로 앞에 가서 스트레스도 좀 풀고 했지 않았나 여겨지네요. 고대 서양에서는 성(性), 즉 섹스를 꼭 나쁘다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는 너무 지나쳐서 결국 화(禍)를 자초한 측면이 있지마는요.”
◀아프로디시아스 입구에 있는 대리석에 나오는 인물 조각들의 모양과 표정이 전부 제각각이다.
정말 그랬다. 서양에서는 남녀가 나체로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체촌도 있고, 나체해수욕장도 있듯이. 다 그런 풍습이 지금까지 전승되지 않나 여겨진다.
또한 BC 6세기경 건축됐다는 셀수스 도서관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에 1만 권의 장서를 자랑했다고 전한다. 당시 세계 3대 도서관에 속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파피루스를 수출하던 이집트에서 셀수스 도서관이 너무 커지자 견제하기 위해 아예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했다고 할 정도다. 에페스는 파피루스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양피질로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양피산업과 양 관련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셀수스 도서관의 책들과 건물은 250년쯤 고트족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조금 더 가면 원형극장이 나온다. 피온산 기슭에 있는 에페스 대극장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건축물이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2만4,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극장이다. 정면 3층의 무대 건물은 무려 18m에 달했으나 1층만 남아 있다. 아직도 활용 가능한 건물로 보인다. 그 옛날 에페스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시 아프로디시아스
이어 아름답고 온화한 고대도시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로 이동한다. 아프로디시아스는 ‘미의 여신(女神)’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사는 도시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흔히 알려진 비너스가 바로 아프로디테다. 이 아프로디테의 원형은 수메르 지방의 이난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난나는 그리스신화 이전의 민간신앙에서 숭배되던 신이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미의 여신만이 아니었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빛나는 여신 파시파에, 신전에서 봉사하는 매춘부도 이난나가 가지고 있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 이난나가 훗날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로 거듭나게 된다. 마치 우리나라 신화의 한 부분인 지리산의 천왕 할미가 노고 할미로 거듭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당시 1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가 큰 에페스 원형극장 앞으로 항구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가 연결돼 있다.
미의 여신이 살았던 도시라서 그런지 도시가 조용하고 아늑하다. 고대 도시가 형성된 주요 요건 중의 하나는 고도였다. 아프로디시아스도 마찬가지. 적당한 고도가 있어서 그런지 정말 온화한 공기 감촉과 적당한 높이에서 주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고도계를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600여 m쯤 나온다. 그리스 신들의 본산이자 신탁이 이뤄졌던 델피의 고도가 650m쯤 됐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맞닿는, 사람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바로 그 고도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깥 면에 다양한 인물의 조각상이 새겨진 수많은 석관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역시 그리스문명과 마찬가지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또한 그 얼굴들만 따로 모아서 새긴 벽면도 있다. 하나하나 살펴봐도 전혀 표정이 똑같지가 않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새길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그 표정과 얼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에페스 도시 구조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웅장한 건물이 셀수스도서관이고 그 앞에 미로로 된 건물이 유곽이고, 그 옆은 목욕탕이다.
시 중심부에는 BC 3세기쯤 건립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도시 인구의 10분의 1을 수용할 수 있는 1만 명 규모의 하드리아누스 원형극장, 2만5,000여 명을 수용 가능한 원형경기장, 지금의 시장과 같은 아고라(Agora) 등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도시가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외침이나 지진 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훨씬 덜 받은 듯하다. 특히 원형극장은 로마제국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재위(161~180년) 기간 중 1만 명의 관중을 수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형경기장도 고대의 것 중에 가장 보존이 잘 됐다고 한다.
조용헌 박사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아프로디시아스의 터가 온화합니다. 여신을 섬길 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안정적입니다. 저는 터키를 가만히 보니 한국의 부산이 생각납니다. 융합도시와 융합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터키는 지도자만 잘 만나면 뭔가 폭발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오스만 투르크라는 거대 제국을 건립했지 않습니까.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신전마다 원형경기장·원형극장 갖추고 있어
실제로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 각지의 사람이 다 모여 있었고, 지금도 항구도시로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또한 한반도 불교의 메카이면서 영화와 역술계의 메카라는 평가를 받는다. 터키도 기독교와 이슬람, 다민족 공동체, 유럽과 아시아 등이 공존하는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로디테 신전은 뒤로는 주산이 하얀 봉우리를 드러내놓고 있다. 민둥산이지만 아름답게 보인다. 바바다으(Babadagi)산이다. ‘아버지의 산’이라는 의미다. 여신과 아버지, 뭔가 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이다. 정말 고대문명은 이렇게 짜 맞춘 듯 균형과 안정을 이루고 있다.
신전을 중심으로 왼쪽엔 원형극장, 오른쪽엔 원형경기장. 이것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고대도시 어디를 가든지 원형극장과 원형경기장이 나온다. 왜 그럴까?
“고대는 정신과 육체, 성과 속, 모두 중요시한 듯합니다. 원형극장에서 정신적 안정을 취하는 노래와 춤 등 각종 예술활동을 합니다. 원형경기장에서는 직접 즐기면서 육체를 단련합니다. 정말 굉장히 균형 잡힌 도시구조입니다. 동양은 정신세계만 강조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 서양은 정신과 육체 모두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놀랍습니다.”
아프로디시아스는 내륙이지만 기운이 매우 맑다. 미의 여신이 살기 딱 좋은 곳이다. 현대 세상과 문명은 과학화되면서 과거의 눈에 보이지 않은 자연의 기운을 받는 형식과 내용과 센서를 모두 망가뜨려 과거만큼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을 수 없게 됐다고 조 박사는 안타까워했다.
4개의 기둥이 4개씩 각각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테트라필욘신전도 아프로디테 신전 뒤에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신전 기둥 중에 가장 보존이 잘된 것이라고 한다. 주산 바바다으가 뒤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미의 여신이 사는 도시를 아버지의 산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아프로디시아스의 발굴은 터키 출신의 미국 뉴욕대 교수였던 고 캐난 에림(Kenan Erim·1929~1990)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평생을 바쳐 아프로디시아스 고대도시를 퍼즐 맞추듯 하나씩 발굴하고 난 뒤 “내가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겨 지금 테트라필욘신전 옆에 주산인 바바다으를 바라보며 묻혀 있다. 그도 주산의 개념을 알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관의 방향은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당시 2만5,000명까지 수용했다는 아프로디시아스의 원형극장
터키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어떤 것이 있을까?
파묵칼레·카파도키아 등 13건 등재… 앞으로 늘어날 듯
터키는 총 13건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11건의 문화유산과 2건의 복합유산이다. 알려진 것보다는 의외로 적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이탈리아로 총 50건이다. 그 뒤를 중국이 47건으로 잇고 있다. 이어 스페인 44건, 독일 40건, 멕시코와 인도 각 32건씩, 영국 28건, 러시아 26건, 미국 22건 등이다. 고대 문명국가인 그리스는 17건이다.
◀에페스에 있는 그리스 마을의 모습.
터키의 세계유산 중 가장 먼저 등재한 유산은 궤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Goreme National Park and the Rock Sites of Cappadocia)이다. 1983년 지정된 카파도키아 유적은 암각 성소들이 이룬 멋진 자연지형으로 독특한 예술성뿐만 아니라 성상 파괴운동 이후(post-Iconoclastic period) 시대의 비잔틴 미술의 전무후무한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4세기에 만들어진 전통 거주지의 흔적인 가옥과 혈거(穴居)마을, 지하도시, 마을 수도원, 교회 등은 비잔틴 제국에 속했던 이 지방의 4~12세기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비잔틴 미술의 독특한 예술 성과이기도 하다. 또한 사라져 버린 문명의 중요한 흔적이다. 최근에는 관광산업으로 자연 침식현상과 전통 거주지의 우수한 사례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유네스코는 “이곳은 지질학적·인류학적 관점에서 재미있는 자연 암각 유적지이지만 전무후무한 기독교 성소들의 장식적인 아름다움으로 더욱 훌륭한 유산이다”라고 평가했다.
◀아프로디시아스 박물관에 있는 각종 대리석 조각들. 히포크라테스부터 소크라테스 등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이 대부분 등장한다.
1985년에는 디브리이의 대 모스크와 병원(Great Mosque and Hospital of Divrigi)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228~1229년에 아나톨리아 지역을 통치한 터키 아흐메트 샤(Ahmet Shah)는 디브리이에 병원이 딸린 모스크를 건축했다. 이 모스크는 1개의 예배실과 2개의 큐폴라(cupola, 둥근 지붕)가 얹혀 있다. 매우 세련된 아치형 천장 건축구조 기술과 창의적이고 활기 넘치는 형태의 장식적인 조각, 아무런 내벽 장식이 없는 벽과 대비되는 3개의 문은 이슬람 건축의 독보적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스탄불 역사지구(Historic Areas of Istanbul)도 1985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보스포루스 반도의 전략적 위치에 있는 이스탄불은 2,000년 넘게 정치·종교·예술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 안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대 전차경기장, 6세기에 건축된 성 소피아 성당, 16세기에 건축된 쉴레이나마예 모스크가 있다. 이들은 통째로 역사지구로 지정해서 도시화로 위협받고 있는 유적들을 보호하고 있다.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Hattusha: the Hittite Capital)는 1986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옛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샤 고고유적지는 정돈된 도시 구조, 사원·왕궁거처·요새 등의 건축형태가 잘 보존돼 있다. 풍부한 장식이 있는 ‘사자의 문(Lion’s Gate)’과 ‘왕의 문(Royal Gate)’, 그리고 야지리카야의 바위 신전에 새겨진 부조와 같은 예술 유적으로 유명하다. 히타이트 전투판 문서는 세계사적인 주요한 유적이다.
◀에페스 공중화장실의 당시 모습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남녀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넴루트산(Nemrut Dag)은 1987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남동 타우르스 산맥 가운데 해발 2000m가 넘는 넴루트산 정상에 특이한 능묘가 있다. 기원전 작은 나라 콤마게네의 왕인 안티오코스 1세의 유골이 이곳에 묻혀 있고, 5개의 거대한 석상이 묘 앞을 지키고 있다. 헬레니즘 문화의 가장 야심찬 건축물 중의 하나다.
1988년에는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Hierapolis-Pamukkale)가 복합유산으로 등재됐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다. 일반적으로 사진으로 많이 본 계단층 모양의 온천수 지형이다. 평원 위로 솟은 높이 200m의 절벽의 샘들에서 나오는 칼슘을 함유한 물을 지칭해서 광물의 숲, 석화 폭포, 계단 형태의 분지들 등으로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로마시대에 온천도시로 유명했던 히에라폴리스 도시 유적도 이곳에 있다. 환상적인 자연과 문화가 온전히 보존된 구역이다.
트로이 고고유적(Archaeological Site of Troy)도 1998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4,000년 역사를 간직한 트로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며, 슐리만이 극적으로 발굴했다. 고대 그리스 시인인 호메로스가 저술한 일리아드 트로이전쟁을 증명한 유적지다. 세계의 4,000년이 넘는 유적지 중에 가장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곳 중의 하나다.
그 외에도 크산토스-레툰(Xanthos-Letoon), 샤프란볼루 도시(City of Safranbolu), 셀리미예 사원 복합유적(Selimiye Mosque and its Social Complex), 차탈회위크 신석기유적지(Neolithic Site of Catalhoyuk) 등이 있으며, 올해(2014년) 추가로 부르사와 주말르크즉: 오트만 제국의 탄생, 페르가몬과 다층 문화경관 등이 등재됐다.
'즐거운 생활 > 등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9) | 터키 카파도키아] (0) | 2015.03.26 |
---|---|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8) | 터키 파묵칼레·올림포스 등] (0) | 2015.03.26 |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6) | 이탈리아 로마] (0) | 2015.03.26 |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5) | 이탈리아 피렌체·나폴리·폼페이·아말피] (0) | 2015.03.26 |
[동양학으로 본 서양문명(4) | 이탈리아] (0) | 2015.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