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어느 神父의 연말 정산

풍월 사선암 2015. 2. 12. 10:27

어느 神父의 연말 정산

 

만사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用處로 사람 평가할 수 있어

돈에 正直한 이가 매사 정직해 함께 살면 다른 사람이 편안

宗敎人, 구원·진리 말씀 앞서 '돈 앞에 투명함' 먼저 새겨야

 

"신부님! 교구청에서 연말 정산 서류 보내 달래요." 성당 사무장이 어느 날 나에게 얘기했다. ", 무슨 서류인데?" "카드 쓴 것이나 의료비 낸 자료 같은 거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거 국세청 간소화 서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 알 수 있어요." "국세청? 어떻게 하는데? 나 그런 것 몰라." "그럼 제가 해 드릴까요?" "그래, 사무장이 알아서 보내줘." "안 돼요. 신부님 컴퓨터로 해야 돼요."

 

그래서 사무장을 데리고 내 방으로 올라와 개인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금방 접속이 됐다. 사무장이 물었다.

 

"신부님 비밀번호가 뭐예요?" ", 0000이야."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공인 인증 번호는요?" "인증 번호? 그게 뭔데?" "신부님 인터넷 뱅킹 하실 때 공인 인증 비밀번호 있잖아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 그것까지 알려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 친구 맘만 먹으면 내 통장 다 조회할 수 있잖아. 그렇다고 안 가르쳐 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순간 참 난감했다. 하지만 바로 결단을 내렸다. '에이! 알려면 알라지 뭐. 내가 들키면 안 될 거라도 있나?' 결단을 내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 그거 0000이야" 톡톡톡 금방 입력이 끝났다. "!"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세상에.'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몇 날 몇 시에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얼마를 썼는지 모두 조회되었다. 귀신같이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 무섭다 무서워." 그동안 그렇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작년 한 해 내가 쓴 돈은 모두 16354325원이었다. 그중 병원비로 나간 돈이 575만원이었다.

 

', 병원비로 너무 많이 나갔구나! 맞을 거야! () 선고를 두 번이나 받았으니.'

 

받은 돈과 쓴 돈을 같이 생각하니 대충, 아니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허허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국세청에서 나 같은 사람 가계부까지 기록해 두다니. 완전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는 과연 누구일까? 어떤 인격의 소유자일까? 정직한 사람일까? 성실한 사람일까?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썩은 송장이 그득한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은 아닐까? 사제(司祭)라는 거룩한 가면 속에 신자들 등골이나 빼먹는 악덕 사기꾼,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존재는 아닐까?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서 하느님 팔아서 밥 먹고 사는 땡땡이 신부는 아닐까?'

 

 

숱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안다. 그 정답은 지난 일 년 나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에 있음을.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도 돈으로 환산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그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답은 그가 낸 돈과 그가 쓴 돈의 행방을 살펴보면 대강, 아니 거의 정확히 맞힐 수 있다. 그가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쓰는 사람인지를 알면 ', 그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구나' 하는 답이 나온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돈에 정직한 만큼 다른 면도 정직하다. 돈에 부정직하면 그만큼 다른 면도 부정직하다. 그리하여 돈에 정직한 사람과 함께 살면 매사가 참 편안하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과 사는 삶은 너무나 피곤하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삶이 이토록 고단한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온전히 서로 믿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롭고 행복할까.

 

요즘 들어 종교인 과세(課稅)에 대해 많은 말이 오간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 세금 내고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신부든 목사든 스님이든 이맘이든 성직자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국민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무슨 돈으로 나라를 지키고 교육하고 복지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면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종교인과 종교 법인, 종교 단체는 어떤 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고 그 돈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를 솔직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그들이 세금을 내야 되는지 내지 않아도 되는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일반 기업이나 장사하는 사람이야 이윤을 추구하고자 존재하는 만큼 어느 만큼 변칙을 쓸 수 있다 하더라도 종교인은 하느님 말씀, 부처님 가르침, 진리(眞理)를 위해 존재하는 만큼 그럴 필요도 없고 그리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종교인들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돈 앞에 투명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이 선행되지 않는 한 우리 또한 세상 이런저런 장사꾼 중 하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목숨 걸고 외치는 구원(救援)과 진리의 말씀은 그저 돈벌이를 위한 홍보 문구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입력 : 2015.02.11 / 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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