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손주보기와 치매예방

풍월 사선암 2014. 12. 2. 22:21

 

손주보기와 치매예방

 

요즘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앞두고 시부모와 '손자병법' 담판을 짓는다는 우스개가 있다. 시부모가 아이를 키워주실 거라면 아이를 낳고, 안 키우시겠다면 낳지 않는다는 식으로 빅딜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506만 맞벌이 가구 중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 육아를 맡는 가구가 250만에 이른다. 부부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황혼 육아'가 당연한 것처럼 됐다.

 

어느 할머니가 손녀 딸을 키우다가 탈이 났다. 허리가 아파서 끙끙대는 시어머니를 보고 며느리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요즘 예순은 예전 같으면 40대래요. '피곤하다' '아프다' 같은 말 자꾸 하지 마세요. 정신력으로 버티셔야죠." 사회복지학자인 호남대 한혜경 교수가 쓴 글에 나오는 얘기다.

 

 

노년에 손주를 보는 기쁨과 재미는 자식을 키울 때와는 또 다를 것이다. 부모 입장에선 팍팍한 살림에 맞벌이로 한 푼이라도 더 모으겠다는 자식들 요청을 내치기 힘들다. 딸이나 며느리가 하고 싶은 일을 육아 때문에 그만두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황혼 육아'는 손주의 재롱만 보는 것은 아니다. 말이 안 통하는 어린애를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하루 종일 돌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들은 일주일 47.2시간 이런 중노동을 한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일주일에 9시간 이상 손주를 본 할머니들의 건강을 조사한 일이 있다. 이들의 심장병 발병률이 보통 할머니들보다 55% 높게 나왔다. 국내 한 병원에선 허리 통증 환자의 25%가 육아 때문에 병을 얻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트레스, 식욕 저하, 불면증을 호소하는 할머니도 많다. 그런데 엊그제 좀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전혜정 교수가 45~74세 여성 2341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일주일 10시간 이상 손주를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지능력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손주를 본 쪽 인지능력이 손주를 안 본 쪽보다 높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치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황혼 육아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얘기만 듣던 터라 일단 반갑기는 하다. 한편으론 안 그래도 손주 보기 힘든 할머니들에게 이 소식이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전 교수는 "육아를 어쩔 수 없이 떠맡기보다 자발적으로 해야 할머니들 인지능력 향상 효과도 커진다"고 했다. 이제 황혼 육아 문제는 국가가 관심 가질 때가 됐다. 할머니의 손길로 운영되는 것처럼 어린이집을 개선하든가, 시간제 가사 도우미를 확대해 할머니들의 육체적 고달픔을 풀어 드리는 방법 같은 걸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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