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역사,인물

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42):정조(中)

풍월 사선암 2014. 11. 27. 23:44

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42):정조()

 

할아버지 83, 어머니 81, 정조는 49...이것 때문?

 

조선의 임금 중에 열심히 학문을 닦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진력을 다한 분으로 세종대왕과 함께 정조대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정조는 억울하게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한을 풀고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기에 학문의 경지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만 하면서 국정을 치밀하게 살피느라 운동을 싫어하여 몸이 허약했던 것은 아니었고, 문무를 겸비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를 닮은 활쏘기의 대가였으니 매번 1순에 다섯 발씩 10순까지 50발의 화살을 쏘는데, 9순까지는 모두 과녁의 한가운데 명중시키고 10순에서는 네 발까지만 명중시키고는 마지막 한 발을 일부러 남겨둘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25세에 왕위에 올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까요?

 

정조의 어진.

 

정조의 학문은 어느 정도였나?

 

정조는 어릴 때부터 세종대왕에 필적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어린 세손(世孫) 시절에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이었는데, 일부러 한두 자를 틀리게 외워서 세손시강원 교수관들이 이를 눈치 채지 못해 지적하지 않으면 거꾸로 나무랐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세종의 집현전과 비슷한 규장각을 설치하여 운영하면서 젊은 관원 중에 우수한 인재를 뽑아 초계문신(抄啓文臣)’이라고 하여 직접 공부를 가르치고 시험을 보아 상벌을 내리면서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이미 과거에 급제한 수재들을 가르쳤으니 얼마나 피나는 공부를 했는지는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대학자 수준이었죠.

 

젊을 때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나?

 

정조는 10세 때 두창, 즉 천연두를 앓았고, 14세 때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15세와 23세 때도 병세가 심해 혼미한 증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43세 때에는 머리에 부스럼, 즉 종기가 생겼고 한동안 불면증이 있었으며 두통과 이질로 고생했습니다. 46세 때는 가슴에 불편한 증상이 있었고, 47세 때는 화성의 행궁에 갔다가 건강이 좋지 못했는데 매년 그 행사 때마다 무병(無病)하게 왕래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건강을 해친 원인 첫째, 심한 과로

 

세손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무리들에 시달리고 할아버지 영조대왕의 엄격한 교육 속에 열심히 학문을 닦느라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심신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뒤에도 과감한 정치개혁으로 탕평책을 쓰고 많은 정책들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물론 그 바람에 정조는 크나큰 업적을 남겨놓았습니다. 문물제도가 정비되었고 새로운 활자가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문헌들이 편찬되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도시 화성이 건설되었으며, 문예 부흥기라고 할 정도로 문화의 황금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조 사후에는 조선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지속적인 과로를 피하고 연암 박지원 선생처럼 가끔 게으르게 생활하는 것도 좋습니다.

 

조선의 문종 임금도 과로로 인해 병을 얻어 39세로 별세했고, 5천년 중국 역사에서 진짜 일하다 지쳐 죽었다고 생각되는 유일한 황제인 청나라의 옹정제도 황제가 된지 13년 만에 5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건강을 해친 원인 둘째, 심한 흡연

 

정조는 일득록이라는 문헌에 담배 예찬론을 남겼을 정도로 애연가였습니다. 내용을 보면 담배는 맛이 제호탕(醍醐湯)’보다 좋고 향기는 난초나 지초보다 뛰어나며 유익한 점이 많으니 더위를 씻어주고 추위를 막아주며 식사 뒤에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변을 볼 때는 악취를 쫓고 잠이 오지 않을 때 피우면 잠이 오게 한다고 하였죠. 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나 남과 대화할 때나 사색할 때나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정조는 요즘으로 치면 골초라고 할 정도였죠.

 

정조대왕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에다 할아버지인 영조의 호령에 놀라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지냈고 심지어 끊임없이 목숨을 노리는 무리들 때문에 임금 자리에 오를 때까지 사연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왕이 되고서도 과감한 정치개혁으로 탕평책을 쓰고 많은 정책들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노심초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래서 복잡한 생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담배를 가까이 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담배 예찬론처럼 실제로 담배가 좋은 점도 있나?

 

담배는 음양으로 볼 때 순전히 ()’의 성질로서 잘 유통되어 두루 퍼지므로 입에 들어가면 잠깐 사이에 온 몸을 순환합니다. 그래서 약효를 행기 행경락 통달삼초(行氣 行經絡 通達三焦)’라고 합니다. 삼초는 오장육부중에 육부의 하나로서 기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자율신경계와 유사하므로 서양의학에서 담배가 자율신경계에 작용하여 진정, 각성효과가 있다는 것과 일치하지요. , 긴장을 풀고 쾌감을 주며 정신집중에도 도움을 주는 등 정신적인 피로를 풀어줄 수 있으므로 술이나 차의 대용이 된 겁니다. 또한 담배는 남령토(南靈草)라는 이름도 있었듯이 뭔가 신령스러운 힘을 가진 풀로 인식되었죠.

 

서양에서도 담배는 처음에 약초로 재배되었는데, 종기나 상처를 담뱃잎으로 싸서 치료했고 프랑스의 카트린느 왕후는 담뱃가루를 두통약으로 애용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기도 하였으며, 어린 학생들에게 급식하듯이 담배를 나누어주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횟배 앓을 때 피우게 하였고, 음식을 먹고 체한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담배가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지속적으로 피우면 치명적인 장애를 야기한다는데 있습니다.

 

담배연기에 들어 있는 유독물질

 

담배연기에는 니코틴과 일산화탄소, 타르, 청산가리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과 발암물질이 들어 있기에 흡연으로 인해 수명이 단축된다는 보고도 나와 있습니다. 담배가 유발하는 질병도 무척이나 많은데, 만성 기관지염과 천식, 폐기종 등을 비롯하여 후두, 구강, 폐 등의 암 발생을 쉽게 합니다. 그리고 혈압을 오르게 하며 동맥경화를 촉진시켜 심근경색증을 일으키기 쉽고, 위장과 창자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궤양을 일으키며, 입속을 잘 헐게 하고 치아 질환을 유발시킵니다.

 

그밖에도 담배는 뇌로 가는 혈류량을 줄여 뇌기능을 저하시키고, 성기능 감퇴를 유발합니다. 중년이후 발기부전의 주범이 바로 담배인데, 실제로 하루에 한 갑씩 20년간 담배를 피운 사람의 72%에서 음경동맥의 폐쇄가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담배의 매운 맛이 피부와 모발을 상하게 합니다. 피부의 물기를 말려버려 건성으로 만들기에 부드럽고 촉촉한 피부를 원하는 여성이라면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겠죠. 그밖에도 기가 허약해서 기운이 가라앉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기가 더욱 약해지므로 주의해야 됩니다.

 

등소평과 처칠.

 

혹시 담배가 맞는 체질도 있을까?

 

수척하고 마르거나 열이 많은 사람에는 해롭지만, 살이 쪄서 물기가 많고 몸이 찬 체질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 담배를 즐겼던 정조대왕이나 영국의 처칠 수상은 분명 퉁퉁했을 겁니다. 그러나 정조는 지나친 독서로 인한 안질로 고생했고, 종기가 온몸에 번져 피고름을 짜 내다가 49세에 돌아가셨는데,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더 오래 살아 조선이 부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