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23):모택동(上)
술 즐긴 주은래 79세, 담배 즐긴 모택동 84세, 술-담배 모두 즐긴 등소평은?
냉수욕과 수영, 산보, 서예를 즐긴 모택동
지난 1949년에 장개석 총통의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을 통일한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꽤 장수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맞아 싸우고 국민당 군대와 싸우는 과정에서 그 힘든 옌안 장정을 거치는 등 힘든 격변기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비결이 있었던 것이죠.
재미난 얘기가 있습니다. '주은래'는 술을 즐기고 담배를 멀리 했는데도 79세까지 살았고, '모택동'은 술은 멀리하고 담배를 즐겼는데 84세까지 살았죠. 그런데 '등소평'은 술과 담배를 모두 즐겼는데도 무려 94세까지 살았다는 것이죠. 먼저 모택동(毛澤東, 1893-1976) 주석의 장수비결을 알려드리겠는데, 모주석은 걸출한 정치가이자 군사가일뿐 아니라 건강전문가였습니다.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어 하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새벽 1교시, 냉수욕
모주석은 냉수욕을 꾸준히 했습니다. 호남제일사범대학에서 공부할 때 욕실 옆에 맑은 우물이 있었는데 매일 거기에 들어가서 냉수욕을 하며 ‘새벽 1교시’라고 불렀답니다. 새벽 1교시는 1년 사계절 계속되었으니, 겨울에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어도 멈추지 않았던 것이죠. 모주석은 “수목과 풍설의 투쟁을 배우는 것이지, 화초가 풍설에 굴복하는 것을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고 했는데, 봄바람이 불어오면 정면으로 바람을 맞는 ‘풍욕(風浴)’을 했고, 여름에 찌는 듯한 무더위가 오면 알몸을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내놓는 ‘일광욕(日光浴)’을 했으며, 큰비가 내리면 탈의하고 몸을 적시는 ‘우욕(雨浴)’을 했습니다.
모주석은 “냉수욕의 이점으로 첫째, 신체를 단련할 수 있고, 혈액순환과 피부저항력을 높일 수 있으며, 근골의 건강을 돕는다. 둘째, 용맹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연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냉수욕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택동의 냉수욕 습관은 오래도록 유지되었다가 늙어서 할 수 없게 되자 매일 미온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냉수욕은 함부로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빈혈이 있는 분과 연세 많은 분은 냉수욕, 냉탕욕을 피해야 하고, 냉온교대욕도 피해야 합니다.
늙어서도 수영을 즐기다
◀수영을 즐기는 모택동.
모택동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 중 하나가 수영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청년, 중년을 거쳐 늙을 때까지 계속하여 수영을 하였습니다. 모택동의 첫 수영은 할아버지집 앞의 못 안이었고, 그 후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못에서 수영하였죠. 모택동의 수영에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수영하지 작게 하지 않고, 길게 수영하지 짧게 하지 않고, 멀리 수영하지 가깝게 하지 않고, 느리게 수영하지 급하게 하지 않으며, 험하게 수영하지 쉽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큰 저수지, 큰 강, 큰 하천, 큰 바다에서 수영했는데, 63세 때 양쯔강을 건넜고, 65세에 광서성의 남녕에서 회의가 있었을 때 두 차례 옹강을 건넜으며, 73세에 다시 양쯔강을 횡단하는 등 양쯔강에서의 수영이 17차례가 넘는다니 정말 대단하죠. 모주석은 70년대 몸이 편치 않았을 때도 나가서 수영을 하였는데, 1974년 어느 날 81세의 모택동은 병이 있는 상태였지만 깊은 물에서 3바퀴나 수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건강을 과시하려는 속셈도 있었겠죠. 어쨌건 수영은 심폐기능을 촉진시키는 좋은 운동입니다.
한겨울에도 산책을 즐기다
모택동이 좋아하는 신체단련 방법에 산보가 있었습니다. 원내산보, 야외산보를 가리지 않고 산보할 때는 광활한 하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항심(恒心)을 유지했습니다. 외출하여 순시할 때는 교외의 논밭이나 차밭으로 나가 산보하며 농작물을 보고 농민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모택동 산보의 특징은 빠르게 걷는 것을 좋아했고,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 겨울에도 산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주석은 “산보는 신체단련이 될 뿐 아니라 두뇌와 근육을 개통시켜주고, 취미를 연마할 수 있다. 산보할 때면 영감이 떠올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작품을 남긴 걸출한 서예가
매일 냉수욕과 산보를 하고 수시로 수영을 하는 등 주로 밖으로 다니기만 하고 가만히 있지를 않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택동은 청년부터 만년까지 쭉 서예를 즐겼습니다. 그는 걸출한 서예가로서 연안(延安)에 있을 때는 일이 바빠 글씨를 쓰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서첩을 열람했습니다. 통일 후 서첩을 더욱 많이 열독하였으며, 1955년부터 주변사람들에게 탁본을 떠오게 했는데 20년간 남아있는 탁본만 600여종이고 보고 넘긴 것이 400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행군하는 길에 비석의 좋은 글을 보게 되면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고 세심하게 매만지고, 오래된 건물에 갈 때마다 좋은 글을 보면 더욱 그랬다고 합니다. 모주석은 1915년부터 1966년까지 반세기가 넘게 450여종의 서예작품을 발표하였는데,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의 서체가 모두 있었습니다. 그의 서예작품은 흡사 역사적인 감동의 장면 같아서 현대인들 앞에 전시하면 하나의 예술세계가 펼쳐지는 듯하다고 합니다.
◀모택동의 글씨.
서예를 취미로 하는 것도 건강장수에 도움이 됩니다. 옛 선비들은 사군자를 즐겼기에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스트레스 해소에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모택동의 서예에는 3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창조정신, 둘째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셋째 호걸 같은 기운입니다. 이 세 가지 특징은 그의 인생의 계획과 책략을 드러냄과 동시에 서예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 보여준 것이죠. 모택동의 장수의 중요원인 중 하나는 서예를 매우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모택동이 냉수욕, 수영, 산보를 즐기는 한편으로 서예를 매우 좋아했던 것을 보면 청나라 건륭황제의 장수비결이 떠오를 겁니다. 동정(動靜)의 조화가 이루어졌으니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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