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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이어온 동양 최고 돌다리 진천 농다리

풍월 사선암 2014. 9. 19. 08:26

 

천년을 이어온 농다리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굴티마을 앞에 있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교각을 세우고 반듯하게 돌을 깎아 만든 다리가 아니라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쌓아 투박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듬성듬성 구멍도 뚫리고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큰 돌을 쌓고 그 사이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년 세월을 이겨낸 다리다. ‘농다리자는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혹은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자가 와전되어 이 됐다고도 한다.

 

생김새 다른 돌이 어우러진 천년 세월

 

◀또 다른 이름 '지네다리'

구불구불한 모양이 마치 지네를 닮았다 하여 동네사람들은 지네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줄기를 따라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선 모양이 수압을 견디기 좋게 설계됐기 때문에 많은 비가 내려도 다리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리를 구성한 돌들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모두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사용했는데 깎거나 다듬지 않았다. 얼기설기 얹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강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과학적 원리와 함께 철학적 뜻까지 담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環與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자석배음양, 즉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을 이용해 고려 때 축조했다고 한다. 28개의 교각은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宿)을 응용했고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든 수월교(水越橋)형태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생긴 다리는 빠른 물살에 견디기 위한 구조다.

 

◀다른 모양의 돌이 모여

생김새가 제각각인 돌들을 모아 다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아래는 크고 넓적한 돌을 대서 교각을 만들었고 사이엔 작은 돌을 괴어 넣었다. 교각 사이를 잇는 장대석 역시 넓고 평평한 돌로 만들었다. 발로 밟으면 흔들거리지만 튼튼한 다리다.

 

또한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은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물살을 피하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어눌하게 생긴 돌다리가 천년을 이어온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농다리는 지난 1976년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24간이 남아있던 것을 고증을 통해 최근 28간으로 복원했다.

 

세월만큼 오래된 이야기들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구곡리에서 농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미호천변은 1982년 댐 확장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농다리를 통해 구곡리와 왕래하던 마을이 있던 곳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동냥을 온 도사에게 밥은커녕 소여물을 줘 보낸 후 큰 물난리가 났다는 것. 베풀지 않고 살았던 부잣집은 마을이 수몰된 지금도 저수지 바닥에서 금방아를 찧고 있다고 한다.

 

또 저수지와 구곡리를 잇는 길을 뚫었는데 이것이 용의 허리를 자른 격이라 비가 많이 오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까지도 마을 노인들을 통해 구전되는 얘기들은 대부분 물에 대한 얘기다. 농다리가 생겨난 이유도 고려시대 부친상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여인이 물을 건너지 못하자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것에서 비롯되니 물과 마을에 얽힌 이야기가 농다리와 함께 천년을 전해온 것이다.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상산 임씨의 집성촌이다. 고려 때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지역을 가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천년을 이어온 다리라고 하지만 폭우가 내리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일부 유실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농다리보존회, 농다리지킴이회, 구산동향우회 등 농다리 관련 단체가 복구에 앞장섰다. 최근까지 유실로 인해 24간만 남았던 다리가 고증을 통해 28간으로 복원된 것도 지역단체의 역할이 컸다.

 

또한 동양 최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자치단체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2000년부터 해마다 농다리 축제도 열린다. 농다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전시관도 만들었고 다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만들어졌다. 살아서 농사를 짓기 위해 건너고 죽어서는 꽃상여에 실려 건너는 사람과 공존하는 다리, 바로 진천 농다리다.

 

지역정보 /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진천 IC에서 좌회전, 21번 국도를 타고 성석사거리에서 34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지석마을 지나 우회전하면 농다리 입구가 나온다. 고속도로부터 표지판이 되어 있어 찾기 쉽다. 버스로는 진천읍내에서 문백방면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 9회 운행한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다.

 

글이다일 | 자동차 전문기자디지털미디어를 전공하고 글과 영상, 사진을 아우르는 멀티미디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등 다수의 기획연재에 참여했다. 네이버와 함께 '아름다운 한국'2년간 연재했으며 지금은 자동차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관광객에 몸살 앓는 진천 농다리

 

금 가고 허물어진 돌 물길 막아

 

 

청주 팔백리 회원들이 차와 도보로 통합청주시의 중심 물줄기가 될 미호천의 물줄기를 답사했다.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진천. 충북 진천은 충남·충북·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기름진 넓은 들에 물이 마르지 않아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렸다. 살기 좋은 곳이라 역사유적과 자연관광지도 많다. 그중 하나가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에서 천년 세월의 물살을 이겨낸 농다리(충북유형문화재 제28).

 

살아서는 농사를 짓기 위해 건너고 죽어서는 꽃상여에 실려 건넌다는 다리가 바로 농다리다.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00m의 돌다리로 진천농교(鎭川籠橋)로 불린다. 교각을 세우고 돌을 반듯하게 깎아 만든 다리가 아니라 멀리서 보면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쌓아 축조한 다리로서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농다리'라고 불렀을까?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쌓아 지네다리와 활처럼 생긴 농다리 '()'자의 해석이 분분한데 대바구니 농()자로 다리의 물이 잘 빠져나가는 것을 뜻한다고도 하고,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자가 와전되어 ''이 됐다고도 한다.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얼기설기 얹어 놓은 것처럼 허술해 보이는 이 돌다리가 강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천년 세월을 이겨낸데 과학과 철학이 담겨 있다.

 

하늘의 기본 별자리를 응용해 28개의 교각을 만들었다. 모양이 제각각인 사력암질 자석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고, 상단의 폭과 두께가 좁아지게 하여 물살의 영향을 덜 받도록 만들었다. 잠수교처럼 장마 때는 큰물이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하고, 물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구불구불 지네가 기어가는 형태로 만들었다.

 

농다리는 상판석 양쪽으로 교각이 튀어나오게 하고 교각의 양끝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천년 세월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물 바닥이 깊어졌고,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니 조금씩 허물어지고 변형이 되어 교각과 상판의 길이나 간격 등이 일정하지 않고 다리의 방향도 중간에 조금 휘어 있다.

 

소중한 것은 그 모습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잘 관리하여야 한다. 그런데 주말이면 3~4천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천년의 향기를 간직한 농다리가 몸살을 앓는다. 교각에 금이 가고 허물어진 돌이 물길을 막는 모습이 위태롭다. 농다리 주변이 유원지화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쯤에서 '농다리를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농다리에 찾아오는 것을 막자는 게 아니다. 농다리 아래 50~60m 지점에 다리 위에서 농다리와 인공폭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출렁다리나 나무다리를 놓아 농다리를 잘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천년의 향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

 

20140527일 / 중부매일 글·사진 변종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