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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인 허리가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 같구나

풍월 사선암 2014. 9. 7. 09:37

숙인 허리가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 같구나

 

전남 완도군 청산면 당리 황토밭에서 한 할머니가 허리를 숙인 채 마늘을 심고 있다.(20099)

 

꼬부랑 사모곡

 

작가이자 기자인 그는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구타를 당할 때마다 오직 어머니만을 떠올렸다. 제대하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엔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리며 또 다른 전국의 어머니들을 찾아나섰다. 2009년 청산도에서 시작한 꼬부랑 할머니들과의 만남은 최근 <꼬부랑 사모곡(寫母曲)>(92~14, 갤러리 류가헌, 02-720-2010)으로 열매를 맺었다. 사진을 본 고은 시인은 이렇게 평했다. “처절하다! 가혹하다! 한국 여성의 오랜 풍상이 묻어나는 처연한 사진작업이다.”

   

20099월에 약 2주간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온 나라에 닥친 경제불황으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전 직원이 한달씩 순환 무급휴직을 해야 함에 따라 예정에 없이 생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도 유명한 청산도 당리의 황톳길을 따라 걷다가 마늘 모종을 심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굽은 허리에 두른 압박밴드가 아니면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그나마 제대로 한 번 펴지도 못한 채 한 고랑 한 고랑 마늘을 심고 있었다. 코가 땅에 닿을 듯 숙인 허리는 산보다 더 높은 산이 되는 뾰족 봉우리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논두렁 끝, 밭두렁 끝, 들녘에 홀로 서서 고향을 지키는 허리 휜 검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가슴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의 소원은 오직 자식들이 잘되고 잘사는 것 말고는 다른 게 없는 것 같았다. 한평생 살아오신 회한을 여쭈고 나면 꼭 이런 대화가 오갔다. “더 살면 뭐해, 이제 그만 살고 어서 죽어야지. 오래 살아 봐야 자식들 고생만 시키는걸.” “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직도 정정하시고 건강하시니 오래오래 사시면서 자식들 잘되는 것도 보시고 손주들 시집 장가 드는 것도 보셔야죠.” “아이고 아녜요, 더 살면 추해! 사지가 비틀어지고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무슨~~.”

   

전남 순천시 승주읍 고산마을에서 한 할머니가 집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다.(20112)

 

이게 낙지 구멍이고 이게 숨구멍이야

 

그럼에도 새봄이 오면 볕이 아깝다며 호미를 들고 땅을 일구고 손바닥만한 땅도 놀리질 못하고 모종을 내고 씨를 뿌린다. 가진 게 없어서 자식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것이 평생 한이 된다는 어머니들은 농사일로 손에 성한 데가 없었다. 하루 종일 비탈밭에서 휜 허리 한 번 펴볼 새 없이 일을 하면서도 수확하면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재미로 일을 한다고 했다.

 

201011월에 찾은 서해 대부도 학난골 고랫부리말 갯벌. 발목까지 빠지던 발걸음은 이제 한 발짝도 더 옮기기 힘들 정도로 깊어가는데, 앞서 가는 정추자(73) 할머니의 발걸음은 평지에서처럼 일상적으로 나아간다. 카메라를 메고 따라간다고는 하지만 발걸음을 떼면 뗄수록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절매는 나를 보고 저만치 앞서가던 할머니가 돌아보며 말한다. “길 따라 와야지, 거기는 발이 빠져서 못 와요.” 도대체 이 갯벌에 길이 어디 있다는 말인지 눈앞에 보이는 검은 뻘에서 내게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뒤쫓아가는 나를 향해 할머니가 낙지 구멍을 찾았다며 소리친다. “어디요, 어디?” 하지만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조개껍질에 베였는지 발뒤꿈치에서는 피가 나고 한 발 한 발 뻘에 빠진 다리를 손으로 잡아 빼 가며 가까이 가 보니 어느새 배가 뻘에 닿을 만큼 엎드린 자세로 뻘흙을 퍼내던 할머니가 일러준다. “이게 낙지 구멍이고, 이게 숨구멍이야.” 사진을 찍으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갯벌을 마주하고 산 게 반평생이니 기쁨도 원망도 갯벌 위에 쏟아내며 살아온 세월이 또 하나의 산처럼 보인다. “이렇게 잡은 낙지는 어떻게 하세요?” 하고 물었다. “뭐 하긴 뭐 해요, 자식들 오면 같이 먹어야지. 오늘 저녁에 서울 사는 딸과 사위가 온다고 했거든. 손주들도 온다는데 우리 외손자가 낙지를 귀신같이 좋아해.”

   

전남 완도군 청산면 부흥리에서 한 할머니가 허리를 숙인 채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20099)

   

20112월에 찾은 전남 순천시 승주읍 고산마을, 얼핏 보아도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집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부엌을 들여다보니 허정남(78) 할머니가 검은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서 저녁밥을 짓고 있다. 슬며시 들어가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장작불 온기가 엄동설한 나그네의 추위를 녹여준다. “이 집이 100년이 넘었을 것이여, 내가 시집왔을 때도 100년이라는 말이 있었으니께.” 아궁이 위에 걸린 검은 가마솥은 윤기가 날 정도로 지난 세월이 묻어난다. 그 부뚜막 위에 여느 시골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정화수틀이 눈에 띈다. 둥근 소나무를 잘라 만든 받침 위에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눈치로 어머니, 저게 뭔가요?” 하고 물으니 정안수지, 첫새벽에 우물에서 받아 올린 거야하신다. 다시 정안수요? 정안수가 뭐예요?” 하고 물으니 아니, 정안수도 몰라? 아침에 일어나 쌀 씻기 전에 정안수 먼저 한 그릇 받아 부뚜막에 올리고 아궁이에 불을 넣어야 집안에 우환이 없고 자식들이 모두 잘된다니까. 저 받침이 내가 시집왔을 때부터 있던 건데 작년에 다 삭아서 저 양반(할아버지)이 다시 만들어줬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가마솥에서는 밥 익는 냄새와 함께 김이 새어나오고, 그 하얀 김이 정화수가 담긴 하얀 사기그릇을 감싸안듯 휘돌아 형체 없이 사라진다. 이 세상 모든 나쁜 기운이 붉은 장작불에 타서 사라지고 저 맑은 정화수에 걸러져 하늘로 오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마음 깊이와 저 정화수의 맑음과 정갈함이 결국 고향과 가족을 지켜내고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20099월 완도군 청산도에서 / 만난 모종 심는 할머니들

자식 잘되는 거 말고는 / 바라는 것이 없다던 그들을 / 한 분 한 분 카메라에 담았다.

 

2011년 순천 고산마을 고택의 / 부뚜막 위에 있던 정화수틀

새벽 우물에서 받은 그 물처럼 / 이땅 어머니들의 깊은 마음이 / 고향과 가족을 지켜내는지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학난골 고랫부리말 갯벌에서 만난 정추자 할머니가 낙지를 잡기 위해 뻘 흙을 걷어내고 있다.(201011)

 

107살 노모 모시던 79살 김정자 할머니

 

도대체 이 세상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며칠 뒤로 다가온 한가위를 앞두고 1982년 추석날 저녁을 되새겨본다. 경기도 포천의 중부전선 모 부대 대공초소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떠올랐다. 그 보름달빛 아래 이제 입대한 지 다섯달 되는 이병이 고참병 3명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다. 고참들은 이병의 뺨을 후려치고 온몸을 발로 걷어찬다. 역기로 쓰는 쇠파이프를 뽑아서 때린다. 이유 없이 맞으면서도 맞을 때마다 자신의 관등성명을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한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고 뼈가 부서지는 것 같다. 왜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라 더더욱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 하늘에 뜬 보름달이 애처롭게 바라봐주는 것 말고는 어디에도 구조를 요청할 수 없는 공간. 맞는 내내 머릿속에서 이병을 충동질하는 생각 하나-저 총으로 이것들을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만인데-가 끈질기게 유혹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밀어내는 또 하나의 생각. ‘어머니, 막내아들 군에 보내 놓고 매일 아침밥을 지으면 꼭 그 막내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사용하던 밥주발에 따뜻한 밥을 퍼서 정화수 옆에 하루 종일 놓아 두셨다가 저녁식사로 그 밥을 드시고 계실 어머니.’ 그래 너희들이 나를 얼마든지 때려봐라, 나는 결코 꺾이지도 죽지도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는다. 그 생각으로 폭력을 견뎌냈다. 그 이후에도 맞을 때마다 어머니만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총 방아쇠를 당길지 몰랐다. 고참들을 향해 수류탄 안전핀을 뽑을지도 몰랐다. 이병은 전역해 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사의 사진기자가 되었다. 사진 취재 이외에도 자신만의 사진 꿈을 놓지 못한 채 휴가나 휴일을 이용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201010월 경상북도 청송의 한 산골마을에서 107살 된 노모를 모시고 사는 79살 딸 김정자 할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란 딸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다시 자신도 할머니라 불리는 나이에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노모를 수발하며 살고 있었다. 매일 지게를 지고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아궁이 불을 때서 밥을 짓고 그 밥을 으깨어 어머니의 입에 넣어 드린다. 지극한 효심과 애틋함이 묻어나는 모습에 사진기를 내려놓고 생각해 본다. 어머니들의 마음은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같구나. 그 깊은 정을, 그 깊은 한을, 사진으로 작업해 보겠다. 스스로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고향 어머니들을 찾아 나섰다.

   

등록 : 2014.09.04 20:39 / ·사진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