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사랑하는 당신에게 - 조기영

풍월 사선암 2014. 2. 9. 15:15

 

사랑하는 당신에게

 

가을입니다.

사내들에게 가을은 외로움 아니면 즐거움일 것입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알기 전 나의 생활은

외로움으로 점철된 날들이었지만,

당신과 함께한 이후의 나의 삶은

즐거움과 기쁨과 감동의 날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시인을 좋아하였으되

가난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인과 가난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들의 눈빛이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가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른 즈음까지도 나는

나의 영혼을 그러안고

인간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알아볼 줄 아는 한 사람을 찾아 방황하였습니다.

그 시간은 길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내 앞에

홀연히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허공을 날던 민들레 홀씨가

내가 써놓은 원고지 위 사랑이라는 글씨에

사뿐히 앉는 것과 같은 확률이었을 것입니다.

 

태양은 나를 향해서만 비추었고

바람은 나를 향해 불었으며

사계절도 나의 희망대로 도는 날들이었습니다.

그 나날들 속에서

당신은 오직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지만,

당신은 때로

나의 여동생이었으며

당신은 때로

나의 누나였으며

당신은 때로

나의 스승이었고

당신은 때로

나의 동지였으며

당신은 때로

나의 어머니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모든 모습을 녹여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되어 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물이 될 수는 없겠지만

물처럼 살아보기로 약속했었지요.

돌아보면 물처럼 살겠다는 우리의 약속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물처럼 살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도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라 했던가요

많은 이들이 명품 갖기를 소망하는 이 시대에

명품하나 없는 당신이

이미 명품임을 알고 있는지요.

이미지라는 헛된 구름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돈이 사람을 포장하는 세태 속에서도

안과 밖이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를 소망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썼던 한 마디로 이 짧은 편지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먼 훗날 당신이 이룩한 풍경이 있다면

나는 그 풍경 속에

한 포기의 풀이라도

하나의 돌로라도 그려져

당신의 풍경이 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7년 10월 9일

 

우리의 결혼 2주년을 기념하며

                           당신의 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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