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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Part 2 최상위권 의대 지원, 옳은 선택일까? 빛 좋은 개살구 ‘사’字의 함정, 15년 뒤를 내다보라

풍월 사선암 2013. 10. 4. 00:41

Special Part 2 최상위권 의대 지원, 옳은 선택일까?

빛 좋은 개살구 의 함정, 15년 뒤를 내다보라

 

왜 전교 1등은 대부분 의대를 지망할까요?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학생들도 있지만 경제적 만족과 직업적 안정성, 의대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서울대 의대 몇 명, 의치한(의대·치대·한의대) 몇 명 등 플래카드를 붙이고 광고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의대 광풍에 한몫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학부모들도 의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로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하고, 의대 합격생을 선망의 눈으로 보는 게 사실이죠. 일부에서는 우수하고 잠재성이 무한한 자연계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현상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의대는 공부를 얼마나 잘해야 갈 수 있을까요. 의사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뭘까요. 또 의사의 좋은 점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직업적·경제적 안정성이 미래에도 유효할까요. <미즈내일>이 짚어봤습니다.

 

 

 

변호사 검사 회계사에는 붙지 않지만, 의사를 부를 때 꼭 뒤에 붙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다. 의사(醫師)라는 말에 '병을 고치는 선생님'이라는 뜻이 포함되었으니 '병을 고치는 선생님 선생님'이 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인 만큼 선비()가 아니라 스승()으로 불린 것.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상위 1% 학생들이 더 넓은 세계에 대한 도전과 탐색 없이 맹목적으로 의대에 진학하는 일이 다반사다. 더욱 심각한 건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신망을 기대하기엔 오늘날 대한민국 의사의 위상이 위태롭다는 사실. 더 이상 '모든 의사=고소득 전문 직종'이라 말하기 힘든 시대, 대한민국 의사의 현실과 미래상을 짚어본다.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사 돼라?

 

의과대학(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상위 1% 성적을 유지한 공신들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입각한 사명감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의대를 선택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부모나 교사에게 등 떠밀려 혹은 사회가 빚어낸 커다란 오해와 착각에 빠져 별 고민 없이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정보 공시 자료에 따르면 의대 중도 탈락률은 약 7%로 나타났다. 의대에 진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한 학기 만에 생물학과로 과를 옮긴 김지선(가명, 45·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아직도 의대 진학을 우리 사회의 VIP 자격증 취득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내과를 개업한 의대 동기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걸 보면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의대에 어렵게 들어갔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우리 사회가 만든 직업 서열로 인해 별 고민 없이 의대에 진학하는 풍토가 문제"라고 꼬집는다. 서울대 공대와 지방대 의대를 놓고 저울질하는 자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자녀의 적성과 자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방대 의대 진학을 바라는 부모들이 많다. 조 대표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자본주의 논리만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인적자원의 엄청난 낭비"라고 지적했다. 본인의 적성을 살려 학과를 선택하고 공부한 뒤, 그 분야에서 원하는 직업을 찾아 활약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영양가 있는 일이다.

 

어렵게 의사 됐지만

'밥값' 제대로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대한민국에서 '밥값'을 제대로 하는 의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우선 6년제 의대를 나오고 국가고시를 쳐야 한다. 인턴 1, 레지던트 4년 동안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는 이가 대부분. 모두 합하면 11년이다. 남자라면 군대에 다녀와야 하고, 봉직의로 취직을 잘하기 위해선 전임의 생활 1~3년은 필수다. 스무 살에 의대에 들어가 제대로 돈벌이를 하기까지 최소 11, 최대 16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요즘 많이 알려진 의학전문대학원 출신이라면 여기에 2년을 더해야 한다.

 

힘들게 의사가 되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까지 의사가 고소득 전문 직종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다른 직업군과 소득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상급 진료 기관인 대형 병원은 사정이 다르지만, 동네 의원인 개원가의 경영난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서울 도봉구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A 원장은 간호사 없이 12역을 하고 있다. 하루 30여 명을 진료하는 A 원장의 한 달 평균 수입은 1천만 원 정도. 건물 임대료와 관리비, 인건비까지 감당하다 보니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A 원장은 "간호사를 내보내고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병원 운영을 계속하느니 문을 닫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떨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개원의 4명 중 3, 돈 빌려 병원 차린다

 

의사가 돈을 잘 번다는 것도 옛말이다. 최소한 동네 환자를 책임지는 1차 의료 기관인 의원급 원장은 그렇다. 동네 의원이 몰락하면서 '의사=고소득 전문 직종'이라는 절대 진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의원 경영 실태 조사'에 따르면 개원의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4%가 야간과 공휴일에도 진료를 한다고 답했다. 개원의 네 명 중 세 명은 개원 과정에서 돈을 빌렸고, 금융기관을 통해 개원 자금을 댄 의사들은 평균 37천만 원을 빚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도 의사들의 신용 대출 한도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의사 면허증이 금융권에서 신용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신용 등급 관리가 최우선. 우리은행은 2010년부터 의사 대출 한도를 3억 원에서 2억 원으로 줄였다. 다른 은행들도 개업의 대출 한도를 줄이거나 가산 금리를 적용해 대출금리를 높이는 분위기다.

 

시중 A은행 여신 담당자는 "표면상 최고 한도는 변함없이 3억 원이지만 실제 대출은 1~2억 원 선에서 집행된다""대출 대상을 봉직의, 개원의, 개원 예정의로 세분화하고 개원 예정의를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집단으로 인식해 대출 조건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병원의 영업 환경이나 경영 안정성이 예전보다 불확실해진 만큼 시중 은행들은 다양한 리스크 관리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의사들도 영업력 매출액 시장점유율 등을 고려해 대출을 심사하고, 진료 과목별로 차등을 둬 관리하는 식이다.

 

의사도 경영 마인드 갖춰야 살아남는 시대

 

작은 병원의 의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대형 병원들의 '싹쓸이' 심화와 동네 의원들 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 기관별 현황을 보면 2011년 폐업한 의원이 1662곳인 데 반해 같은 기간 문을 연 동네 의원도 230곳이나 됐다.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쏠리면서 나눠 가질 수 있는 파이는 줄어든 반면, 의원들의 수는 늘어났다. 2007~20115년간 의원급 의원의 평균 폐업률은 6.3%에 달한다. 아라컨설팅의 윤성민 대표는 "강남 기준 평균 개원 비용이 5억 원을 넘다 보니 가진 돈이 없으면 일단 빚으로 시작하는 게 보통"이라며 "개원을 전제로 대출 받았기 때문에 빚을 갚기 전에는 병원 문을 닫을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보험 수가 시스템 역시 개원의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진료가 많으면 의료 기관이 벌어들이는 금액도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형 병원과 동네 의원의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기도 한다. 엘리오앤컴퍼니 성만석 상무(공인회계사)"의료 시장의 출혈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의사도 인사 재무 물류 유통 등 병원 전반에 관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철한 경영 마인드를 갖고 마케팅 능력을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성 상무는 "시설, 직원, 진료 환경 등 병원 전반에 대해 환자들이 만족해야 선택받는 만큼 1년 뒤, 3년 뒤의 미래를 설계하는 안목과 비전이 필요하다""경영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의료 정책 변화 등 시류를 놓치지 않으면서 재무 전문가와도 긴밀히 소통하는 등 노력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의사 되겠다는 아이, 말리고 싶다?

 

1 아들의 의대 진학을 고려 중인 이수진(가명, 43·서울 성북구 성북동)씨는 요즘 고민이 깊다. 어릴 때부터 아픈 사람 고쳐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자연스럽게 아들의 꿈이 되긴 했지만, 부모 입장에서 아들의 진로를 적극 찬성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 이씨는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전문 진료 영역을 버리고 성형외과나 피부과 진료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어렵게 공부해 의사가 되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처럼 환자 진료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씨의 하소연처럼 전문의를 따고 전임의 생활을 마쳤다 해도 번듯한 병·의원에 취직하기란 쉽지 않다. 한 해 3천 명씩 배출되는 전문의를 소화하기엔 병·의원의 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 극히 일부가 대학 병원 교수로 남고, 10% 정도는 제약사나 보건소 등 유관 기관 업체에서 일한다. 종합병원의 봉직의는 10% 안팎, 나머지 40% 정도는 일반 병·의원의 월급 의사로 생활한다. 나머지 40%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엄친아'거나 '열쇠 세 개'를 받은 데릴사위가 아닌 한 돈을 빌려 개원할 수밖에 없다.

 

시중 B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는 임진웅(가명, 44·경기 성남시 정자동)씨는 "아들이 의사가 되겠다고 하면 일단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고객으로 만난 의사들 중에는 의사로서 사명감 없이 고소득을 원해 직업을 선택했다가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임씨는 "못 배우고 가난한 시절에 가졌던 의사에 대한 존경심과 권위마저 사라진 마당에 굳이 힘든 의사의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이공계 상위권이라면 의사가 되는 것 말고도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매력 있는 직업들이 얼마든지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마마보이형' '독불장군형' 의대 가면 실패한다

 

인간에 대한 박애와 사명감이 투철하다고 의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료계와 관련 업계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개척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깊다.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정기택 교수는 "의대 나와 병원만 차리면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면서 "의대에서 의료 마케팅 등의 학문을 채택, 강화해 학생들이 다변화된 의료 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의사들이 말하는 의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답답하며 폐쇄적인 직업적 특성이 있다. 의학 지식에 관한 전문성과 자신이 속한 전문 집단이 정한 지침에 따르는 윤리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기본. 그렇다면 과연 어떤 학생들이 의대를 포기하고, 어떤 학생들의 살아남을까. 피와 주삿바늘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성격? 하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은 얼마든지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서울대 의대 건강사회정책실 권용진 교수(서울특별시북부병원장)의 설명. 피를 보면 기절하는 정도의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

 

권 교수가 말하는 '의대에 오면 절대 안 될 학생 유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는 '마마보이형',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할 줄 모르는 '독불장군형'이다.

 

의사는 환자 치료에 중대한 사안을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고독하고 외로운 직업이다. 권 교수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부모의 권유와 결정으로 의대에 온 학생이라면 버텨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의 동료 의사, 간호사들과 팀플레이는 필수.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대화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모르는 아이라면 의대 진학은 꿈꾸지 않는 편이 낫다. 특히 환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 권 교수는 "현재 의대 입시의 평가 방법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등의 도움으로 좋은 스펙을 갖춘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왜곡된 구조"라며 "의대에서 이런 아이들을 걸려내기 위한 다양한 평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만큼 부모의 입김과 훈련으로 만들어진 스펙으로는 의대 진학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도움말 권용진 교수(서울대 의대 건강사회정책실 겸임교수, 서울특별시북부병원장성만석 상무(엘리오앤컴퍼니, 공인회계사) 윤성민 대표(아라컨설팅정기택 교수(경희대 의료경영학과조진표 대표(와이즈멘토) 자료제공 건강보험심사평가원·대한의사협회 참고도서 <병원이 경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