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는 슬픈 이야기다. 1960년대부터 급격히 진행된 공업화가 만들어낸 그림자 같은 이야기가 바로 성북동 비둘기다. '비둘기'를 의인화하여 공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사랑과 평화를 상실한 인간을 비판한다. 인간이 처한 비정한 현실, 사랑과 평화를 저버리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슬픈 감정을 담아낸 시가 바로 성북동 비둘기라는 말.
어쩐지 진심으로 슬퍼졌다. 성북동은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 같은 동네지만 한쪽에서는 가난한 이들 비둘기처럼 다닥다닥 터를 잡고 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궁궐같이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한쪽은 까치발만 들면 옆집 철수네가 저녁 반찬으로 뭘 먹는지 보이지만, 다른 한쪽은 담이 너무 높아서 저 건물이 집인지, 도서관인지, 빈 건물인지 알 수도 없다. ------------------------------------------------------------------------- 김광섭(金光燮 , 1905~1977) 시인, 호는 이산(怡山),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 해외문학』과『 문예월간 』동인으로 활동 시작.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 성찰의 초기시와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비평적인 의식이 다분한 후기시를 통해 구체적 표현의 아름다움과 세련된 시어, 자유롭고 다채로우며 광범한 소재로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을 발표함. 시집에『동경<'37>』『마음<'48>』『해바라기<'58>』『성북동비둘기<'69>』등이 있으며. 대표작으로 <성북동비둘기><고독><산><해바라기><마음><저녁에> 등이 있음. |
김광섭 시인에게 - 김유선
60년대 초 당신이 살던 성북동에서는 비둘기들이 채석장으로 쫓겨 돌부리를 쪼았다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성북동에 비둘기는 없는 걸요. 채석장도 없어요. 요즈음은 비둘기를 보려면 도심으로 들어와 시청광장쯤에서 팝콘을 뿌리지요. 순식간에 몰려드는 비둘기 떼 겁 없이 손등까지 올라와 만져도 도망가지 않고 소리쳐도 그냥 얌전히 팝콘을 먹지만 나머지 부스러기 하나마저 먹으면 올 때처럼 어디론지 사라져버리는 비둘기를 만날 수 있어요, 그 때에는 눈으로 손으로 애원해도 다시 오지 않아요.
-김유선 ‘별이라고 했니 운명이라고 했니’(1995)-
이 시는 제목에 나타나듯이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와 관련이 있다. 이 두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 가는 자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숲에서 평화롭게 살아야 할 비둘기가 채석장의 포성에 가슴이 멍들고, 시청 광장에서 사람들이 뿌리는 팝콘에 연명해야 하는 것이 도시가 자연에게 던져 준 운명이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에서 비둘기는 근대화, 도시화에 밀려나게 된 자연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이 시에서 비둘기는 제법 사람과 친해진 것처럼 '만져도 도망가지 않고 / 소리쳐도 그냥 얌전히 팝콘을 먹지만' 여전히 사랑과 평화의 새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비둘기들은 '눈으로 손으로 애원해도 / 다시 오지 않아요.' 라는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비둘기는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다. 여기서 비둘기는 단순히 인간에게서 멀어진 자연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를 암시해 주기도 한다. 황폐화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온정을 잃고 인간관계 또한 삭막해져 가고 있다. 비둘기란 바로 이런 우리의 모습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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