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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막아야 한다

풍월 사선암 2013. 4. 17. 21:35

[시론]전쟁은 막아야 한다[LA중앙일보]

 

김용현/한민족평화연구소장

발행: 04/12/13 미주판 25면 기사입력: 04/11/13 18:29

 

그날 아침에 배는 615 분에 닿았다. 눈바람을 무릅쓰고 얼음판 위에서 밤을 새운 군중들은 배가 부두에 와 닿는 것을 보자 갑자기 이성을 잃은 것처럼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곤두박질을 하듯 부두위로 쏟아져 나갔다. 부두 위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됐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깨어지고 해서 일단 혼란이 멎었으나 ---’

 

김동리의 단편소설 흥남 철수가운데 나오는 내용이다. 19506, 한국전쟁이 발발해 남으로 밀리다가 9.28 수복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국군과 UN군은 파죽지세로 북진을 계속해 11월에는 압록강까지 다다른다. 그러나 곧이어 중공군의 기습 공격으로 다시 남하하게 되는데 육로 철수가 어렵다고 판단한 UN군 측이 흥남에서 선박을 통한 철수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이른바 흥남 철수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19501212일부터 24일까지 열이틀 동안 LST 81척 등 모두 200여척의 배를 이용해 군인과 민간인 등 각각 10여 만 명씩을 서둘러 남쪽으로 실어 나른 작전이었다. 그야말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 에서이리저리 흩어져 피붙이들과 생이별을 하며 목을 놓아 불러 보고 찾아들 보았던되돌아보기도 싫은 민족의 참상이었다.

 

우리는 그 며칠 뒤인 19511, 1.4후퇴로 서울이 다시 함락 될 무렵 외가가 있는 충청북도 황간으로 가기 위해 서울을 떠난다. 다리가 끊어진 한강을 나룻배로 건넌 다음 영등포 역전에 집결한다. 거기서 어느 기차가 떠날지 몰라 밤새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철길을 따라 다니다 마침내 곳간차 지붕에 올라탔던 그 춥고 배고팠던 겨울날의 추억--, 내게 있어 그날의 영등포역전은 흥남 부두와 같았다.

 

전쟁을 겪은 사람은 안다. 전쟁이 얼마나 큰 비극인 것을-----,한국전쟁은 31개월 계속되는 동안 쌍방에서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를 내면서 한반도 전체를 초토화시킨 대참사였는데 그 상처는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가 동원 되는 전쟁에서 그 피해는 그때의 한국전쟁에 비교가 되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전면전은 안 되지만 국지전은 괜찮다고? 북한은 살고 남한은 망할 거라거나 남한만 살고 북한은 없어질 거라고?-어림없는 소리다. 전쟁은 모두의 종말이다. 북한은 어서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을 멈추고. 개성공단을 하루 빨리 정상화시키기 바란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은 초기의 과잉대응이 화를 더 키웠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제라도 자제하며 대화와 외교적인 해결책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이런 때 박근혜대통령이 북에 대화를 제의한 것은 잘한 일이다. 때마침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했고 이어서 다음 달 초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한반도평화는 동북아시아 문제 이전에 우리 한민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미국과 중국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히 요청하되 우리 스스로도 남북 간 대화 복구에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아무 일 없습니다. 그쪽에서 생각하시는 것 보다 그렇게 위험한 걸 느끼지 못합니다.” 서울에 사는 동생이 보내온 메일이다. 안심이 된다. 그러나 우리도 그랬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서울에서 걱정하는 전화가 오면 여기하고는 멀리 떨어진 데라 아무 일 없어. 걱정하지 마그러나 동생의 메일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나올는지, 불안한 마음 때문에 밤낮으로 TV를 켜 놓고 지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평화는 전쟁이 아니라 오직 평화의 방법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